"'가격 결정(pricing)'은 기업의 수익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의사 결정이다. 그런데 … 가격 결정 방법론은 여전히 ①'생산 비용 더하기 이익 기준 가격 결정(mark-up pricing)'과 ②'경쟁사 가격을 고려한 가격 결정(competitive pricing)', ③'고객이 인지한 가치에 기준을 두는 가격 결정(customer perceived value based pricing)'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 '푼돈 보다 더 큰 수익 올리는 스마트 프라이싱' , DBR 67호, 2010.10.
①번과 ②번의 과정을 통해 제품 가격을 설정한 후, 이후 시장의 반응에 따른 조정을 거치는 ③번의 과정을 밟고 있는,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란 위 인용글 속 범주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단계/수준의 기업에 속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제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 역시 기본적으로, "가격 결정이 외부, 즉 고객이 아니라 내부"의 요인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라는 것이죠. 그렇기에/그리하여, --- "가격 결정의 노하우를 집대성한 책"(p38)이라 저자 스스로가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을 통해, '대체 우리 회사가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잘못하고 있는가'에 대한 어렴풋하나마의 힌트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란 나름 큰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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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가격 … '제품 1개당 얼마'라는 단순한 가격 설정에 지나지 않는다. 경영자 대부분은 이 표면가격만 보고 원가 계산이나 가격을 결정하고 있다. 표면가격을 정하기 위해서는 그 뒤에 잠재해 있는 각종 원칙을 미리 결정할 필요가 있다. … 나는 표면가격 뒤에 있어 보이지 않지만 제품가에 영향을 미치는 가격을 이면가격이라 부른다. (p66)
뭐, wording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니, 저자가 제시한 표면가격 / 이면가격의 구분을 그대로 옮겨보자면, --- "① 스펙, ②서비스, ③수량, ④시간, ⑤가격 인하, ⑥현물"(p67) 등이 이면가격을 구성하고 있는 6가지 항목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① "제품이나 서비스의 내용이 바뀌면 당연히 원가가 달라진다. 원가가 오르거나 내려가면 이익의 구조도 바뀌게 되니 거기에 맞춰 판매가격도 바꿔야 한다. 즉, 스펙이 바뀌면 원가가 바뀌니 당연히 판매가격도 바뀌어야 한다."(p75)
② "작업과정에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은 최종 제품가격과 분리해서 '이 이상의 작업이 발생하면 별도요금을 받는다'라는 방침을 정한 다음, 실행으로 옮기기 위한 방법을 내부에서 신중하게 검토한다.'(p101)
이처럼, 책 속에는 위 6가지의 이면가격 구성 요소들에 대한 설명들이, 그러니까 뭐 대단히 새로운 내용이 담겨 있는 건 아닙니다. 적어도 제조업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분이라면 일단 다 '알고는' 있는 이야기들이니까요.
이익 방정식 : 이익 = (①판매가격 - ②원가) × ③판매수량 --- 이 식은 다음 3가지에 의해 이익이 향상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① 판매가격을 높게 설정한다, ②원가를 되도록 낮춘다, ③판매수량을 높인다. … 당신의 회사에서는 이익 방정식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가? 당연한 말이지만 이해와 실천은 다른 문제다. 회사 대부분이 이익 방정식은 알고 있어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pp 53~54)
네! '알고는' 있으나, 그것을 실행에 옮겨내지 못하는, 그리하여 결국 '알고만' 있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란 저자의 지적엔 고개 숙여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 책이 진짜 '가격 결정(pricing)'에 관한 책인가란 물음에 전,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겠습니다. 이 책은 단지 --- 그간 가격 결정 과정에서 반영되지 못했던 원가 구성 요소들에 대한 제대로 된 반영을 다시금 환기시켜주고 있는, 딱 그 정도의 내용만을 담고 있다라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이 책엔 담겨 있지 않는) 진정한 '가격 결정(pricing)'의 메커니즘은 어떠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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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을 결정할 때는 제품 원가와 목표 이익만 고려하기보다 소비자가 원하는 자사 제품의 가치와 경쟁 제품의 가치 및 가격 수준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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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가 지각하는 제품의 총 경제가치 = 준거가치(reference value) + 차별가치(differentiation value)
여기서 준거가치는 제품의 최적 대체재의 가격으로 측정한다. 차별가치는 대체재와 비교한 그 제품의 차별점에 대해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를 뜻한다. … 이 두 가치의 합이 바로 소비자가 느끼는 해당 제품에 대한 총 경제가치가 되며, 이는 동시에 합리적인 소비자가 최대로 지불할 용의가 있는 가격이기도 하다."
- '가격 기준은 절대 가치 아닌 상대 가치', DBR 44호, 2009.11.
경제학을 공부한 이에겐 단숨에 이해되지는 않는, 그러나 경영학 또는 현실의 기업을 운영/관리하고 있는 입장에서 보자면 전적으로 동의하게 되는 '가격 결정(pricing)'의 메커니즘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이, 위 인용문과 같이 큰 그림을 그리고 있지는 않습니다. "제대로 가격 결정을 하지 못하는 회사라면 아무리 원가를 절감하고 판매수량을 늘려도 이익을 낼 수 없다"(p60)라는 이 책 속 저자의 주장(의 핵심)은 여전히, --- 가격의 결정이 내부적 요인에 의해 이루어진다,라는 관점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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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근본적으로 제품·서비스 가치의 반영이다. … 기업은 고객의 지불 의사가 높다면 과감히 가격을 올릴 수 있어야 한다."
- '효과적 가격 경쟁을 위한 4가지 열쇠', DBR 44호, 2009.11.
기업이, 자신이 판매하고 있는 제품의 가격을 높이기 위해선 결국 고객의 지불 의사를 높여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제품의 외면적·내면적 가치를 상승시켜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이는 결국 "시장 가격은 도요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즉 고객이 결정하는 것이다. … 기업은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원가 절감을 한다"라는 관점, 즉 <판매가격 ≡ 원가 + 이익>의 정의(definition)이 아닌, <이익 ≡ 판매가격 - 원가>라는 정의를 채택하여야 한다라는 것이죠.
이 책의 주된 관심사가 (고객의 가치를 반영한 판매가격의 결정이 아닌) '원가'의 절감에 있다라는, 그리하여 --- 엄밀하게 보아, 이 책을 가리켜 '가격 결정(pricing)'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 할 수는 없다라 저는 판단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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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지속적 성장, 그리고 이론적 가정인 '영속 기업'이란 것이 이토록 쉽지 않은 것인지, 그건 최저 임금이 올라서라든가, 정부의 반기업적 시책들 때문이라든가, 물론 그같은 현실적 문제들이 일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사실이겠으나, 그보다는 기본적으로 --- 아직도 <이익 ≡ 판매가격 - 원가>라는 정의를 정확하게 실행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원가를 절감한다라는 것도 분명 그 한계가 있을 터, 따라서 기업은 결국 고객이 자사의 제품에 대해 부여하는 가치의 증대를 위해 노력해야 하겠거늘, 제가 몸담고 있는 기업이 / 제가 보게되는 수많은 관련 기업들이 추구하는 주안점이 과연 어느 곳에 포커스를 두고 있느냐를 고민해 보면 정말,
기업을 운영/관리한다라는 것에 "인간을 이해하는 일 자체가 중요해진 것"이란 문장이 보여주듯, 얼마나 광범위한 통찰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며, 그러하기에 --- 전, 이 책 「이익의 90%는 가격 결정이 좌우한다」가 보여주고 있는 관점에 동의할 수가 없네요. 다시 말하지만, 기업이 창출해 내는 이익의 몸통은 결코 원가의 절감에 있는 것이 아닌, 고객이 판단하는 제품의 가치로부터 창출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성공한 기업들은 본질적으로 그들이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 자체가 고객들과 가치 있는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성공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의 상품과 서비스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뭔가 계속 잘 안 되고 있다면, 거의 대부분의 이유는 아주 심플합니다. 바로 그만큼의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 강민호,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중 p45, 와이비, 2017.
※ 함께 읽어보길 권해드리는 책들 :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도요타의 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