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요즘 중고딩들, 맨날 학원 다니면서 공부한다고 하는데 대체 미적분도 안배우고 경제학과에 들어온다는 게 말이나 되냐? ② 신문에도 나오잖아, 요즘 애들 학력수준이 예전보다 오히려 더 떨어졌다고. 아니 우리 땐 1~2년만 바짝 하면 대학갔었었는데, 요즘 애들은 그것마저 하기 싫다구 하니 참... " --- 저와 제 친구가 실제로, 1년 전 쯤 술자리에서 나누었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어느덧 고딩이 되어있는 종원군의 '삶'으로부터, --- 이 아빠가 그 나이 땐 그냥 시험 전 일주일 정도만 '바짝' 공부하면 되었었던거고, 심지어 대학이란 것마저 재수 1년동안 '죽어라 바짝' 했더니 내 손에 합격증이란 게 쥐어져있었었거늘, 내 아들은 중딩시절부터 '매일' 학원엘 갔었었야 했으며, 고딩이 된 지금, 그 강도는 점점 더 쎄져가고 있다란 게, 무심한 이 아빠의 눈엔 이제서야 보여진 겁니다. (요즘 아이들이 예전 제가 그 나이 때보다 더 반항적인 되어있는건지, 대체 맨날 총으로 사람 쏴죽이는 핸드폰 게임이 뭐 재밌다고 저렇게 코박고 있는건지 도무지, '이해 못하겠어!'란 한 마디로 대변되는 힐난만 했었지) 세상 가장 소중한 존재인 제 아들의 일상조차 진지하게 바라볼 생각해보지 않았었다라는, 이 커다란 잘못을 대체 왜, 이제서야 깨닫게 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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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왕조가 평화적으로 무너졌고, 국지전이 발발하지 않았고,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지 않았고, 중국 군대가 북한에 주둔하거나 북한 일부가 중국에 편입되지도 않았다. (p11)
위와 같은, "북한 전문가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여겼뎐 시나리오"(pp10~11)대로 한반도 남쪽의 대한민국과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통일이 된 이후의 상황이라는, 미래에 대한 가상 소설입니다. 기본적으로 '재미있게 읽힌다'라는, 잘 팔릴수 있는 소설의 기본 조건을 충분히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 제가 가장 좋아하는 두 개의 소설관(觀) 중 하나인, "제대로 된 관찰자라도 되어야겠다, 생각해"로서의 작가의 역할을 멋지게 수행해주고 있는 소설이네요.
【 통일의 목적 】
기업이 뭔가 새로운 계획을 세울 때, 예를 들어 신제품을 내놓는다든가 혹은 제품의 유통채널을 변경해보려 한다든가 할 때면 simulation이란 걸 수도 없이 충분히 해보며, 그 결과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을 때를 대비한 contingency plan 역시 참 많이 세워놓기도 합니다. 물론! --- (최저임금제 등과 같이) 일 국가의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의 시행에서도 위와 같은 과정은 더더욱이 세밀하게 행하여질 것이라 예상하는 것이 당연하겠거늘,
일 국가의 체제가 바뀌어질 수도 있는 상황에 대한 준비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세밀하고 치밀하여야하겠죠. 그런 점에서 보자면 --- "일본은 … 특히 남한 정부가 핵개발에 참여한 북한 과학자를 은밀히 관리하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pp43~44)와 같은 상상(?)은 (단지 소설가의 '소설적 상상력'이라 치부해버릴 수만은 없을) 그야말로 얼마든지 해볼 수 있겠는 합리적인 추측인 겁니다. 더 나아가...
김씨 왕조가 무너지기 몇 년 전부터 이미 장마당의 공식 통화는 중국 인민폐였다. … 미덥지 않기로는 남한 돈도 북한돈과 다를 바 없었다. 남한과 북한 화폐를 통합할 거라는 소문이 끈질기게 나돌았다. 어떤 비율로 통합하든 북한 원과 합치게 되면 남한 원도 가치가 크게 떨어질 거라는 게 북조선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p35)
'통일'이라는 작용(action)에 상응하여 발생 가능한, 수많은 사회 시스템과 관련된 위와 같은 반작용(reaction)에 대한 고민엔 분명 지나침이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나무를 심어놓으면 북한 주민들이 밤에 몰래 뽑아가거나 주변세 소금을 뿌려 말려 죽이죠. … 나무가 잘 자라면 그 지역에는 산림녹화사업을 하지 않을 거라고 사람들이 우려하거든요. 그러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가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pp154~155)
북한 민중들이 '대한민국'이라는 남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란 게 기본적으로, 일종의 ATM과도 같을 수 있다라는 작가의 위 지적은,
남조선 사람들에게 필요하지만 피하고 싶은 시설들을 공화국에 짓자는 거예요. 그러면서 북조선에 돈을 주겠다는 거죠. … 화력발전소, 쓰레기매립지, 화장장, 납골당,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정신병원 … 그런 걸 공화국에 짓자는 거죠. (p220)
통일 이후의 북한을 바라보는 이같은 남한 자본주의의 시각과 결부되어, --- 과연 통일을 하고자 했던 목적이 무엇때문이었던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그것이 이루어진 후에 할 것이 아니라 되기 이전부터 미리 준비되어있어야 한다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을 뿐 아니라 또한, '통일은 대박'이란 천박한 발상의 본질 역시 정확하게 꿰뚫고 있어 보입니다.
남한과 북한이 합쳐지면 내수 시장이 커지고 북한의 싼 임금 덕분에 남한 기업들이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얘기. 그건 남한 자본이 북한 사람들을 노동자로, 소비자로도 이용해먹겠다는 얘기죠. (pp333~334)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세뇌 역시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장치라고까지는 생각지 않습니다만, 통일의 명확한 목적에 대한 설명과 그 목적에의 공감 등이 전제되지 않는 통일이란 건, 남한과 북한의 권력자들이 아닌 일반 민중들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겠거늘, 어느덧 '통일'이란 다분히 정치적인 개념이 --- (작가 이청준이 아래의 문장에서 지적했었던) '과정을 속이는 무소불위의 명분'이 되어 있지는 않나,하는 생각까지를 버려내지는 못하겠네요.
"명분은 믿을 것이 못 되었다. … 문제는 명분이 아니라 그것을 갖게 되는 과정이었다. 명분이 과정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명분이 제물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천국이 무엇인가. 천국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마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 그 천국을 위한 봉사를 후회하지 말아야 진짜 천국을 얻을 수 있었다.
-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중 p180, 문학과지성사, 2012.
【 통일의 과정 】
"주정수 시대에도 명분이나 동기에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 문제는 오히려 그 명분의 지나친 완벽성, 명분이 너무도 훌륭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 명분엔 입을 열어 말을 할 수 없었던 명분의 독점성이었다. 게다가 명분이란 건 언제나 힘있는 자의 차지였다. 주정수는 최고최선의 명분을 그 혼자 독차지해버리고 있었따. 그 주정수의 명분 앞에서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자신을 주장할 자신의 명분을 따로 지닐 수가 없었다.
- 이청준, 위의 책 p175.
통일이란 게 '우리의 소원'이 되어버린 이상, 그 통일이라는 명분에 반(反)하는 그 어떤 것들도 그야말로 반동(反動)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박정희의 반공과 경제개발이, 그 자체로는 비난받을 수 없으나, '힘있는 자'가 그 명분을 독차지하여 이행해가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가혹한 탄압과 부작용 등이 예의, --- '통일'이란 것이, 그 누구도 반대해서는 안 되는 지고지선의 목적이 되어버린 순간, 그것을 이루어내기 위한 과정 속에서 발생되는 '목적의 달성을 위한 강요된 희생'이 또한 당연한 것이 되는 모순이 발생되지 않을 거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 외치는 자들은 과연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주정수는 공원 시설을 훼손할 염려가 있다 하여 원생들 마음대로 공원 지역을 출입하는 것을 금지했다. 공원을 언제나 깨끗이 단장시켜놓고, 섬을 찾아오는 손님만 있으면 어김없이 그곳으로 데리고 가서 이 섬에 건설한 그 자랑스런 원생들의 낙원을 증거해 보였다. … 공원은 원생들을 위해 원생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정수와 섬을 다녀간 엉뚱한 구경꾼들의 것이었다.
- 이청준, 위의 책 p179.
'개인의 소원은 시대의 제약을 넘어설 수 없다'라 합니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자들은, '시대의 제약'이 기원하는 체제를 바꾸어버림으로 자신이 지닌 '개인의 소원'을 이루어내기도 하죠. '통일'이란 것이 특정 개인의 소원은 아니겠습니다만, 그것을 이루어가는 과정 속에서의 선택 중 일정 부분은 분명, 권력자 개인의 선호에 의존하게 되겠죠. ---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란 이 작품의 제목은, 그와 같은 권력의 선호에 따른 변질된 통일을 우려하는 것으로부터 기인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통일과도정부는 미국과 남조선의 승인이 필요했지. 그래서 김씨 왕조의 반인권범죄를 어느 정도 들춰내고 책임자에게 벌을 줘야 했다. 하지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할 수는 없었어. 통일과도정부 고위 인사들이 김씨 왕조 때에도 다들 한자리씩 하던 인간들이었으니까! 만만한 희생양이 필요했고 … (pp488~489)
일제로부터의 독립 이후, 우리의 역사를 보면 위와 같은 서술이 결코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전쟁이 구분지어줄 승자와 패자, 그 각각의 역할이 어중간한 화해가 초래할 혼란보다는 차라리 더 낫지 않겠냐란 작가의 생각이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란 제목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짚어봅니다.
전쟁을 했더라면 섬멸전이 벌어졌을 거 아닙니까. 그렇게 북한을 완전히 불지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나았을 것 같지 않습니까? 무력통일을 하든, 아니면 남한 입맛에 맞는 괴뢰정부를 세우든, 지금보다 나쁘지는 않았을 거에요. 통일과도정부 같은 괴상한 정부도 없고, 부패한 관료도 없고, …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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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어 생각한다」는 체제적 차원에서의 통일 논의를 담고 있기는 하나, 그 속의 주민들이 겪고있는/겪어야 할 불안이나 불행 등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라 전 생각합니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체제 보장'이라는 반대급부를 김정은에게 선사한다라는 것이, 과연 북한의 민중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그 책에는 담겨져 있지 않죠. 약간의 과장을 더해, 극도로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 책 속 주장은, 그 누구도 명백하게 표현하지는 않을, '미국의 안전이 담보된다면 북한 민중들의 삶은 관심 없다'란 입장으로도 읽혀질 수 있다란 겁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장사에 관한한 중요한 건 사람들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이 국가라는 집단이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분명히 말해주는 일이야. … 자네가 그 군복을 차려입고서 사람들에게 한다는 얘기가 안 그래도 비참한 사람들을 더 비참하게 하는 것들뿐이라면 문제는 곤란해. … 사람들이 속으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그들에게 떠들어대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겠나?"
- 김은국, 「순교자」중 p174, 문학동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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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생명을 낳을 때 그 생명이 복되기를 바라서이지 한뉘를 가시밭을 헤쳐야 할 생명임을 안다면 그런 생명을 낳을 어머니가 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 반디, 「고발」중 p40, 다산책방, 2017.
대한민국 교육정책의 한심함을 탓하기 이전에, 내 아이의 일상을 바라보는 것이 더 먼저임을 깨달았듯, --- 국제적 역학 관계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통일에 대한 논의도 분명 필요하겠으나, 대체 왜 통일이 필요한 것인가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세밀하고 올바른 이해 역시 그 이상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세뇌가 만들어 내는,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고 있고 나도 그들을 돌보고 있다고 믿게 해야"하는 헛된 믿음의 수준은 절대 안되는 거죠.
민족이라든가 통일이라는 개념은 어떨까. 북한 주민을 향해 책임감을 불러일으키는 데에는 유용하지 않을까. 이웃 사람이 굶거나 부당한 이유로 괴롭힘을 당할 때 내야할 용기를 발휘하는 심리적 도구로써 말이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역사를 공유하면서 훨씬 부유하게 사는 사람들이 바로 제 옆에 있는 못 사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은 창피한 일 아닌가. (p497)
(2018년의 통일 논의가 설마 그러하진 않겠으나) 이제까지 우리의 과거 속 '통일'에 대한 논의에는 분명, 민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어야 했던, 권력자들의 추한 욕망이 서려있었었기에 더더욱 --- '통일'이란 게, 누군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며, 무엇보다 반드시! 권력자가 아닌 민중들을 향한 것이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우리에게 필요할 겁니다. 그나저나...
지금같은 분위기라면, 몇십 년 후, 김정은이 통일된 한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될지 모른다란 가정이 그저 가정같지만은 않게 느껴지네요. 우린 과연...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 함께 읽어보길 권하여 보는 책들 : 「선을 넘어 생각한다」, 「고발」, 「순교자」, 「당신들의 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