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래로서의 외교 】
나는 거래 자체를 위해서 거래를 한다. 거래는 나에게 일종의 예술이다. … 나는 뭔가 거래를 하는 것이 좋다. 그것도 큰 거래일수록 좋다. 나는 거래를 통해서 인생의 재미를 느낀다. 거래는 내게 하나의 예술이다. (p17)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그 한 쪽 당사자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 책, 「거래의 기술」을 읽고 싶어졌다라는, 지극히 단순하고도 자연스러운 생각, 여기에 더해진, 이 책의 제목처럼 뭔가 '거래에서의 기술'이랄까 등을 배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란 부수적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바람(願)에 맞게, 트럼프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그간 부동산 사업가로서 쌓아온 (이렇게 불러도 된다면) '거래의 기술'들을 (슬쩍슬쩍) 보여주고 있지요. 저의 시선이 그러해서였을까요? (아주아주 단순하게 생각해) 그러한 '거래의 기술'들은 예의 --- 김정은과의 만남을 앞두고 그가 보여주었던 행동들의 단초를 제시해주고 있다 느껴졌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란 가끔 거칠게 나갈 필요가 있을 때는 그렇게 해야 한다.(p22)
위 문장은, 지난 5월 24일 "나는 김 위원장과의 대화를 고대했으나 슬프게도 북한의 최근 성명에서 나타난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인 적대감에 근거할 때 지금 시점에 오랫동안 준비했던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느낀다"라는 발표의 배경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무리없이 짐작하게 해줍니다. (데니스 로드먼이 이 책을 김정은에게 선물했었다 하니, 김정은 또한 이런 짐작을 했었었겠지요.) 하지만 이제 더 중요한 건 --- 여전히 무언가 눈으로 보이는 성과는 없이, 그저 '약속'의 나열로만 그친 6·12 회담의 결과보다는,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앞으로 어떻게 협상할 것인가이겠지요. 그런 점에서 보자면,
만약 당신이 무엇인가를 사기를 원한다면, 상대방에게 그가 현재 갖고 있는 물건이 가치로 볼 때 별로 대단치 않음을 확신시켜주는 것이 대단히 유리하다.(p138)
위와 같은 확신을 김정은에게 준다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현 상황에서, 트럼프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아마도 "거래는 쌍방이 이익을 볼 때 잘 이루어진다"(p404)라는 것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보게도 됩니다. 문제는!!! --- 이 때의 '쌍방'에 대한민국이 거의/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점이지요. 게다가,
"북한에 체제 안정을 제공하기로 약속"한 현 상황이 의미하는 바는 결국 --- 북한 민중들의 삶에 미국은 전혀 관심이 없다라는, 즉 이제까지 북한을 공격할 때의 주요 무기(?)였었던 '인권' 문제를 자신(미국)의 안전 확보를 위해 미련 없이, 상대의 이익으로 주어버렸다라는, 다시 말해 "거래는 쌍방이 이익을 볼 때 잘 이루어진다"(p404)란 말을 이런 식으로 현실화시켰다라는 점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지요. 트럼프가 밝히고 있는 다음과 같이 단순명료한 판단 기준은, 이러한 저의 생각을 충분히 뒷받침해준다라 생각합니다.
이쪽저쪽을 따질 게 아니라 이긴 쪽에 붙어 그 쪽에 충실한 사람이 되라. (p20)
【 솔직함 그리고 일관성 】
나는 이번 달에만 벌써 두 차례의 만찬을 주재했다. … 사람들은 왜 나에게 자선 만찬을 주재해달라거나, 자선 모임에 나와 연설을 해달라고 부탁할까? 나는 솔직해지고 싶다. 그것은 내가 위대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은 내가 부자 친구들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만찬회에 나가면 부자 친구들이 몰려와 테이블을 사고 물건을 사기 때문이다. 나는 그 게임을 이해한다. (pp34~35)
적어도 어쨌든, 트럼프는 솔직합니다. 이런 그의 솔직함이 때로는 경박함 / 신중하지 못함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으나, 자신이 지켜내지 못한 말들을 교양 있어 보이게 자서전에 써놓은 누군가보다는 훨씬 낫다고 전 생각합니다. 이같은 그의 솔직함에,
좋은 평판은 나쁜 평판보다 낫다. 그러나 나쁜 평판은 때때로 평판이 전혀 없는 것보다 낫다. 간략히 말해서 논란은 장사가 된다는 것이다. (p217)
이러한 가치관을 더해 본다면, 대통령 후보 시절, 트럼프가 야기(?)했었던 온갖 구설수들이 일견 (적어도 사후적으로는) 이해되기도 합니다... 만,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을 오랫동안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잠깐 동안은 흥분시킬 수도 있고, 그럴듯한 선전을 할 수도 있고, 온갖 언론을 이용할 수도 있다. 또 좀 떠벌릴 수도 있다. 그러나 좋은 상품을 내놓지 않으면 사람들은 끝내 허실을 알아차리기 마련이다. (p85)
또 달리 생각해보면, 그러한 구설수들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어내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나는 고용을 증대하는 것이 어떠한 복지 정책보다 더욱 유효한 실업 문제의 해결 방안이라고 생각해왔다"(p415)란 가치관은 놀라우리만치 변하지 않고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겁니다. 그러하기에, "혹여 막말에 가려 그의 진짜 모습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p8)란 역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도 되지요.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의 모습을, 자신 스스로 실천해나가는 사람이랄까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스스로 어떤 방침을 정하고 그것을 고수해나가는 사람이다. (p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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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은 없다'는 것은 '무엇이든 다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무엇인가 꼭 해야 하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아내 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 김성호, 「일본전산 이야기」중 p72, 쌤앤파커스, 2009.
트럼프의 이 책 속 '거래의 기술'이란 게, 어쩌면 위의 의미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즉 --- 별 거 없다라는 것이죠. 이 '별 거 없다'라는 말은 다음의 두 가지를 뜻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첫째, 성공의 비결이란 게 뭐 거창하고 대단한 게 아니라 무척 단순한 곳에 있다라는 점입니다.
"성공이란 거창하고 멀기만 한 미래의 그림이 아니며 바로 지금 우리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차근차근 해나갈 때 비로소 한 걸음 다가오는 것임을 우리는 일본전산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깨달을 수 있다."
- 김성호, 위의 책 p273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담에서 사회적인, 역사적인 운(運)은 대개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고, 그들의 인간 승리만이 비춰진다. … (그러하기에) 사업이든 뭐든 간에 성공한 남의 이야기에서 배울 건 그다지 많지 않다."
- 이건범, 「파산」중 p13, 피어나, 2014.
"이러한 성공은 내가 육감을 믿고 과감하게 투자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p300)란 트럼프의 자평을 읽자라면, (미국 뉴욕을 근거지로 하고 있는 부동산 업자의 사업 이야기가 안겨주는 낯설음 뿐만 아니라) 예의 '병 나음 받은 자의 간증'과도 같은, 만인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닌, 자신에게만 주어진 (일종의) 행운을 보편화시키는 오류라는 의미로서의 '별 거 없다'란 쪽에, 손을 들게 됩니다. 트럼프의 육감을 지니지 못한 이들, 그래서/그리고 성공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결국 --- 트럼프가 제시하는 '거래의 기술'이란 것이 별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란, 일종의 허탈감이랄까요? 뭐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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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낼 필요가 없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당신의 자리에서 당당히 일을 하면 된다"(p118)
제 카톡의 프로필 사진에 달려 있는 문구인 "Vara Modig! (Be Brave!)"과 동일한 의미의 위 두 문장이, 병 나음을 받는지의 여부와 상관 없이 병이 나아지도록 환자 스스로도 용기를 잃지말고 노력해야 한다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다라는, --- 딱히 '거래의 기술'과는 관계는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근한 잔향을, 제게 남겨 주었네요. 참... 책 읽을 시간 내는 것조차 힘든, 바쁜 2018년이네요.
※ 「대통령의 시간」 : 대통령을 해본 자의 자만
「파산」 : 성공해본 자의 실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