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지몬 승리하는 기업 - 위기에도 탄탄한 히든 챔피언식 속성해법 33가지
헤르만 지몬 지음, 김현정 옮김, 유필화 감수 / 흐름출판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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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번1 금융위기는 원가의 위기가 아니라 판매의 위기다. …… 한마디로 이 책은 실행을 위한 지침서와도 같다. …… '속성해법'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속성해법'이란 단기간에 신속하게 실행할 수 있고 그 결과도 단기간에 나타나는 해결책을 뜻한다. (pp 4~6)


건강을 지키려거든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하되, 의사의 행동은 따라하지 말라'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들었습니다. 특정 개인에 대한 견해가 아닌, 제 경험의 전반적/대체적인 결론 역시 딱히 위 말에 이의를 제기할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 비슷한, 말하자면 일종의 한계같은 것을 미리 예상하고 펼쳐든 책이었습니다만, 다 읽고 나니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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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와 관련된 해법은 신속하게 실행할 수 있어야 하고 단기간에 효과가 있어야 한다. 가격과 관련된 해법을 활용할 경우 대개는 신속하고 실행하고 단기간에 효과를 얻을 수 있다. (p131)


알지 못하고 있던 내용을 배운다라는 건 언제가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 알고는 있으나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해법'이라 조언 받는다면 참으로 답답하고, 스스로가 한심스럽게 느껴지는 자괴감만을 안게 되기도 하지요. 시작을 그렇게 해버렸다는 핑계로, '의사'와 관련된 지극히 단순화시킨 예를 들어보기로 하죠. (의사라는 직업에 무슨 악감정이 있는 건 절대 아닙니다.)


【 병에 대한 진단 】 

간 검사를 받으러 대학 병원엘 갔다 하죠. 잠깐의 문진을 통해 의사는 제가 일주일에 몇 병의 소주와 맥주, 그 밖의 독주들을 마시는지 알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펼쳐 본 저의 간 수치에 대해 그/그녀는 '술 때문에 간이 안좋은 겁니다. 당장 술을 줄이셔야 하겠네요'라는 처방을 내려줄 수도 있을 겁니다. 제가 아주 무식한 사람이어, 왜 술을 마시는 게 간을 손상시키는지 모른다 하여도, '의사'라는 권위에 눌려 '술은 간에 좋지 않다'라는 믿음(!)을 갖게 되겠죠.


2007년에 시작되어 이후 악화일로를 걸어온 이번 위기는 원가의 위기가 아니라 판매나 매출과 관련된 위기다. 위기가 발생한 후 판매량과 매출이 충격적으로 폭락했다.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구매 자체를 거부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구매력이 갑자기 사라져버렸거나 가격이 터무니 없이 높아서 구매를 꺼리는 것이 아니다. … 일반 소비자와 기업 모두 구매를 꺼리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 이전의 불황과는 달리 이번 불황에는 소비자의 저축률이 높아지고 있다. 소비자가 과거에 비해 낮아진 소득을 저축으로 보충하려는 것이 아니라 투자 포트폴리오의 손실을 저축으로 메우고 있는 것도 한 가지 원인이다. (p19)


이 책이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의 경제 상황을 다루고 있다라는 시차의 문제도 무시할 순 없겠지만, 2018년 연말에 읽어보는 2017년에 출간되었던 <2018년 트렌드 예측>과 같은 류의 책을 읽어보면서 알게 되는 정오(正誤)의 시각으로 보자면, 위의 진단은 (물론 그 당시에도 충분히 추론가능한 사안이었지만 어쨌든) 옳은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 다시 생각해볼 수록 정말 대단한 소설이었던 에드윈 르페브르의 「금의 홍수」가 정확히 지적했었듯,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을 가장 두렵게 만드는 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입니다. 불확실성이라 해도 모두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겠죠. 아무 것도 잃지 않으면서 내 수중에 천만 원이 주어지느냐, 일억 원이 주어지느냐와 같은 불확실성은 (천만 원이 주어지면 어떡하나,와 같은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두려움의 대상은 아니니까요. 허나! 그와 같은 행복한 불확실성은 현실에선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불확실성은 내게 천만 원이 주어지느냐, 아니면 일억 원을 빼앗겨야 하느냐 같은 맥락이지요. 어쨌든!


자고로 '진단'이라는 것은 '처방'을 위한 사전 단계이어야 하지, 그 자체만으로도 환자의 심리 상태를 박살내버리는 진단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 생각합니다. 물론, 


자동차 백미러의 수요는 자동차 수요와 직결된다. 소비자가 자동차를 사지 않으면 백미러를 팔 수 없다. 이런 수요는 본질적인 수요가 아니라 파생수요다. … 자동차 주문이 줄어들면 백미러 제조업체는 백미러를 팔 방법이 없다. … 사실 파생수요상품을 제조하는 업체로서는 판매 부진을 해결할 방법이 거의 없다. (pp 34~35)


세상 그 어떤 의사가 와도 동일한 비관적 진단을 내릴 수 밖에 없는 상황도 분명 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 병에 대한 처방 】 


사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위기 자체가 아니라 위기를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방식이다. (p48)


의사의 진단 결과, 환자가 간암 초기 상태이다라는 결과가 나왔을 때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그 암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처방이지 진단의 정확성에 대한 의사의 자부심이라든가, 진단 결과로 인한 환자의 낙담 등이 아니겠지요. 


-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오히려 제품의 안전성이 중시되고 우수한 품질이 중요해진다. … 원가압력에 굴복하여 제품의 품질을 낮추어서는 안 된다. (p100)

- 위기로 신규제품 시장이 무너지고 있다면 거기서 줄어든 매출을 일부나마 상쇄하기 위해 애프터 시장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 좋다. (p207) … 그동안의 누적판매량이 

   많은 업체라면 신제품 사업에 비해 서비스 사업이나 부품 사업이 위기나 불황의 영향을 적게 받는다. (p197)

- 기업들은 다양한 서비스를 제품가격에 포함시키고 고객이 서비스를 요구할 경우 따로 요금을 청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존의 패키지 요금에서 이런 서비스를 분리하고 세부

   서비스에 독립적으로 요금을 부과하면 매출과 수익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p199) 

묶음상품을 구매하는 고객은 각각의 상품을 따로 구매할 때보다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 묶음판매로 늘어난 판매량이 할인으로 줄어든 수익을 상쇄해주기 때문에 상품을 

  개별적으로 판매했을 때보다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pp 176~178) 


그렇지 않아도 마침 지금 --- 저희 회사에서 시행하려 계획하고 있는 내용들도 여럿 보이더군요. 저희 스스로도 꽤 적절한 자가진단과 처방을 준비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반면에...


위기 시에 경영진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각각의 이익창출변수가 매출과 수익에 미치는 효과를 정확히 이해하고 수치화함으로써 과도한 가격인하 같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다. (p67)


아쉽게도, 제가 속해 있는 조직에는 위와 같은 계량화를 해낼 수 있는 데이터라든가 인적 자원이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간암 초기 상태라는 진단은 얻어내었거늘, 암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까지는 없다라는 것이죠.  


"5월 9일, '이 상품의 작업에는 장갑 8개, 수건 13개를 사용했다'라고 기록했을 때 비로소 상품별 원가를 계산할 수 있다. 어느 상품의 작업에 사용했는지 일일이 기록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이것을 습관화하지 않으면 상품별 원가를 계산할 수 없다. 도요타 공장의 원가 관리는 반드시 '상품별, 부품별, 조별'로, 무엇을 얼마나 사용했는지 일일이 기록하고 분류하고 있다."     


- 호리키리 도시오, 「도요타의 원가」 p52, 한국경제신문 한경BP​. 2017. 


위와 같은, 일견 간단해 보이는 데이터 수집도 제가 속해 있는 조직에서는 당장은 현실화되기 힘들다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자괴감이 이 책이 제게 준 선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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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제안하는 33개의 속성해법이 당신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고 위기와 싸우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p225)


각 챕터의 말미에 친절히 요약을 달아놓았다는 점이, 이 책을 추후에도 자주 펼쳐볼 확률을 크게 높여주었다라 생각합니다. 어쨌든 저자 스스로 밝히고 있듯, 이 책은 단지 '속성해법'의 제시를 목적으로 지니고 있기에 내용의 한계 또한 명확하기도 하지요. 이 책으로부터 얻은 '생각할 거리'들에 대해 앞으로 더 많은 공부를 해야하겠다라는 정도의 배움, --- 어렸을 적 길거리 약장수 아저씨로부터 들었던 기생충의 위협이 여전히 제게 남아 있듯, 문제의 심각성과 그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 내어야 한다라는 지적의 강렬함이, 제가 얻은 이 독서로부터의 배움이었었네요.


 참고할 만한 책 : 「도요타의 원가」, 「이익의 90%는 가격 결정이 좌우한다 




  1. "이 책은 서브프라임 거품이 꺼진 2007년 여름부터 서서히 진행되다가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가 붕괴하면서 본격화된 위기에 기업들이 어떻게 대처할지를 주로 다루고 있다"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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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에 지다 - 상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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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어냄에 있어, 스페인 내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라는/아닐 수도 있겠다라는, 다시 말해 ---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할 일면(aspect)이란 게 어쩌면, 1930년대 초반의 스페인에서 일어났었던, "공산주의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 사이의 갈등"(p194)으로부터 기인된 '혁명의 실패'와 같은 과로서의 일 현상(phenomenon)이 아닌, (그것이 반드시 '아나키즘'과 같은 특정의 것이 아닐 지라도) '이념', '사상' 혹 넓게는 '신념'으로도 표현되어질 수 있겠는 정신적 가치에 대한 일 개인/집단의 확신(이 지니는 숭고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을/까지를 해보기도 합/됩니다. 


조지 오웰의 작품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고 썼던 감상문 속 위 구절처럼, 이 소설 「칼에 지다」를 읽기/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일본의 당시 역사를 알아야 한다,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역자 양윤옥이 밝힌 대로, 이 작품을 (메이지 유선 전후 시대의 일본 역사와는 그나마 비교적 무관할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힘을 읽어가는 남성성, 참된 부성을 지닌 가장에 대한 천착"(p454)으로 이해하는 것도 이 작품을 받아들이는 (저는 절대 동의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시선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



- 자오팅양 · 레지 드브레, 「상실의 시대 : 동양과 서양이 편지를 쓰다」 p231, 메디치, 2016.


마오쩌둥의 힘 있는 위 한 마디가 건네어 주는 무게감은 이내 --- 메이지 유신 근방의 일본사에 대한, 더 나아가 일본 '무사도'란 것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이 이 작품에 대한 이해와 감정 이입의 폭(뿐만 아니라, 어쩌면 비판의 폭)을 훨씬 더 넓혀줄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에 힘을 실어줍니다. 물론, 이 작품에 대한 위 두 가지 방식의 이해 사이에 우열 같은 건 당연히 존재하지 않겠지요. 제가 읽은 건,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한 편의 문학 작품이지 문학적 감수성이 곁들여져 있는 역사서가 아니었으니까요. 선택은 그저 개인의 취향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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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부 체제의 유지, 그리고 몰락 1 

막부 체제의 우두머리, 지금으로 말하자면 대략 국방부 장관쯤이지 않을까 싶은 '쇼군'이 실질적인 권력을 쥔2 1600년부터 1868년 (메이지 유신) 간의 시대는 혹자의 서술에 따르면 '일본 역사상 유례없는 태평한3 시기'였다고 합니다.  이 때 쇼군이 에도(지금의 도쿄)에 머물고 있었기에, 이 때를 '에도 시대'라고도 하지요. 어쨌든, 


이 때를 가리켜 '태평한 시기'라 칭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지금 방식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지방자치제의 실현 때문이었다라고 합니다. 전국을 대략 250여 개의 '번'(자치제의 단위)으로 나누어, 쇼군에게 일정의 공납을 하는 한 각 '번'들의 자치를 최대한 보장해주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근데 이 '번'이라는 것이 그저 지리적인 이유만으로 각자의 자리에 위치했던 것이 아니라, --- 쇼군이 자신에게 한껏 충성하는 다이묘(번의 수장, 영주)에게는 에도와 가까운 곳의 '번'을 맡겼고, 그저 그런 충성도의 다이묘들에게는 에도에서 아주 먼 곳의 '번'을 맡겼었다라는 데에서 문제의 불씨가 시작됩니다. 절대 권력과의 거리가 곧 자신이 지닌 힘의 크기와 동치되는 군사 정권의 속성 상, (그렇지 않아도 그저 그런 충성도 때문에) 에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번'을 맡게 된 다이묘들의 불만이 높아지게 되는/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겠죠.  


"언제 어디에 사는지가 어떻게 사는가를 결정한다."


- 버지니아 울프, 「런던을 걷는 게 좋아,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중, 2017. 정은문고


1840년 아편전쟁에서 중국의 참패는 일본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었었거늘, 그 충격의 극복을 위한 충분한 준비를 하기도 전인 1853년 드디어 일본에도 서양의 함선이 출현하게 됩니다. 당연히 일본도 그들의 무력 앞에서 어쩔 수 없는 개방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인 각종 불평등 조약으로 인해 예의 민중들의 삶은 나날이 피폐해지게 되었죠. 봉건제의 특징인 (서열과 그에 따른 고정된 수입, 그리고 대물림 되는 직업으로 대표되는) 신분사회였던4 당시의 일본에서 그와 같은 신분제는, 주어진 혼란을 극복하는 것이 아닌, 그저 하염 없이 당할 수 밖에 없게 하는 커다란 '억압'으로 작용하게 됩니다.5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란 마오쩌둥의 힘찬 한 마디는 이제 일본 사회에서도 작동하게 되었으며, 그 저항은 예의 --- 에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번'의 (그저 그런 충성도를 지녔던) 다이묘들로부터 시작되었죠.  


제 아무리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 해도, 그 저항에는 반드시 명분이 필요한 겁니다. 그저 '배고파서 못살겠다, 이 세상 갈아엎자'란 구호는 파급력이나 생명력의 관점에서 그리 유익하지는 못하겠죠. 그리하여 그 저항 세력이 내세운 명분이란 게 바로 '존왕양이' 즉, 일본이 힘을 모으려면 막부 체제를 종식시키고 천황 중심의 나라를 세워야 한다라는 것이었었으며, 이 와중에 발생된 반 막부파6와 막부파간의 대립이 바로 --- 이 소설 「칼에 지다」의 주요한 역사적 배경이자 동시에 아이러니를 자아내는 기제가 됩니다. 



【 삶의 이유, 그리고 삶의 명분 


이자는 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가누구를 위해 사람 죽이는 짓을 하는가. (상권, p98)


지금으로부터 약 150여년 전 일본에서 살았던 한 인물의 한 생이7 보여주고 있는 삶의 이유와 죽음의 이유를 통해, 작가 아사다 지로는 위 두 가지 물음에 대한 답을 독자에게 건네주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이미 읽은 독자라면 아마도 대부분, 


  "짐승의 발톱과 뿔은 누군가를 사냥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 구병모, 「파과」 p51, 자음과모음, 2013.


제가 너무도 좋아하는 작가 구병모가 적어놓은 위 구절이 가장 완벽한 정답임을, 그리고 그 정답의 의미란 게 결국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에 대한 걱정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은 것입니다. 그들은 오직 사랑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거예요.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p65, 더클래식, 2012.


처음 접했던 5년 전 그 당시, 뭔가 모르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었던, 이건 마치 주일날 듣게 되는 목사님의 설교스럽잖아란 느낌만을 받았던 위 구절, 누구나 다 알고 있을 작가 톨스토이가 직설적으로 적어놓은 구절에 적확하게 표현되어 있다라는 걸 알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1. 명분에의 구속


"전쟁이 구경거리인 한은 좋다. 그러나 우리를 선수로 끌어들이려고 할 때, 특히 우리가 아무런 준비나 경험이 없을 때 문제가 시작된다."


- 주제 사라마구, 「코끼리의 여행」 p155, 해냄, 2016.


이 소설의 배경이 되고 있는 막부 말기 시절은 대기근이 지속되었던 시기였습니다.8 "어떤 타자에게 충실하려면 다른 타자를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9이라는 (국가 우선의) 논리가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 '국가 우선'은 '가족 우선'이 되었다"10라는 현실 논리 앞에서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거죠. 문제는 현실 논리로의 전환을 변호해줄 수 있는 명분을 가지고 있느냐입니다.   


사무라이라는 건 체면에 살고 체면에 죽는 족속이에요. … 아무리 하잘것 없는 사무라이라도 일단 우국의 지사라는 걸 코끝에 걸지 않으면 안 되지요. (상권, p345) 


소설의 주인공인 요시무라 간이치로에게도 예의, 가족 특히 자식들의 안위에 대해 스스로 약속한 것을11 지키기 위한 삶의 방편 마련을 정당화시켜줄 수 있는 '명분'이 필요했더랬습니다. "소멸의 한 지점을 항해 부지런히 허물어지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되는 서글픔"12을 이겨내기 위한 요시무라 간이치로의 선택은 그리하여


돈을 구걸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처자식은 먹여 살려야 한다. 그러니 존왕양이의 뜻을 이루고자 탈번했다는 것 말고는 생각나는 방도가 없었다. (하권, p193)



2. 명분의 실상


"'야스쿠니의 논리'를 창출해낸 국가의 의도, 그리고 '야스쿠니의 논리'를 '활용하는' 측에서는 '새로운 전쟁 속으로 국민을 동원하기 위하여 전쟁터에서 죽는 것이 행복하다고 유족들과 그 유족을 바라보는 국민 모두가 느끼도록 만드는' 의도가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핵심이다. … 이렇게 생각할 때 '희생의 논리'는 전쟁에 국민을 동원할 것이며, 또 그 전사자들과 유족들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 것인가 하는 물음에 직면했던 국가가 창출해낸 하나의 프로세스(장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13


- 다카하시 데쓰야, 「국가와 희생」 p111, 책과함께, 2008.


"군사적 기능으로 지배계급에 봉사하는 직능집단"14으로서의 사무라이의 사회적 책무를 빌어 요시무라 간이치로는 '존왕양이'라는 대의 명분을 탈번15의 이유로 내세우게 된 겁니다. 이것이 과연 요시무라 간이치만의 선택이었느냐? 탈번 이후 요시무라 간이치로가 속하게 된 '신센구미'16라는 조직 역시, 같은 이유로 탈번한 무사들이 대부분었었을 만큼17 --- 천왕을 모시고 서양 세력을 배격한다라는 명분은 이제 더 이상 순수한 일 '명분'으로서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된 것이지요. 이제 그들은, 



3. 명분의 실종


전투는 죽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으니까 전투를 하는 것이다. 죽고 싶지 않아 남을 베는 것이다. (상권, p236) … 남의 칼에 죽지 않기 위한 방법은 단 한 가지, 내가 죽기 전에 죽이는 것뿐이다. 이제는 그 길 밖에 없다. (상권, p312)


인의 생존, 더 나아가 그 개인이 책임지고 있는 가족의 생존을 위해 전투에 참가할 뿐인 겁니다. "백성이 안심하게 살게 해주는 기구야말로 국가"18라 믿었었기에 "우리의 목숨, 이 나라에 바치지 않겠나"19라 다짐했던 사무라이들의 오랜 믿음이 깨어져 버리고 만 것이지요. --- 나를 죽이려는 자를 먼저 죽여야만 내가 살 수 있고, 내가 살 수 있어야 나의 가족이 살아갈 수 있다라는20 생존의 절박한 이유 앞에서, 더 이상 '국가를 위하여'란 명분은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관군이고 역적군이고 없어요. 그저 내 눈앞에 들이닥친 굶주림과 추위가 있을 뿐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막부 말기란 그런 시대였습니다. (상권, p203) 



4. 진정한 삶의 명분


 

타 이인부치의 말단 무사에게 제 목숨 바칠 주군은 바로 제 식솔이었어. 그건 모든 말단 무사들의 본심, 아니, 입에 풀칠도 못하던 가난한 백성들의 본심이었을 거요. …  사내라는 건 제가 먹여 살려야 하는 자들을 위해 죽는 거요. 여자에게 반했다면 그 여자를 위해, 자식이 생겼다면 그 자식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거요. (하권, p262) 


"이념, 사상 혹 넓게는 신념으로도 표현되어질 수 있겠는 정신적 가치에 대한 일 개인/집단의 확신(이 지니는 숭고함)에 대한 이야기"라 적었던 「카탈로니아 찬가」에 대한 소감의 구절을, 이 작품 「칼에 지다」에도 동일하게 적게 됩니다. '무사도'라는 이름의 당시 일본 사회의 지배적 가치관이 지닌 '주군에 대한 충성',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죽음에 대한 성별(聖別)21이 감추고 있는 이데올로기22에 반하는 행동을 했던 요시무라 간이치로의 삶과 죽음의 과정을 통해 '아나키즘'(이라는 이념)에 대한 확신이 보여주었던 숭고함과는 또 다른 --- "시대의 진흙탕에 빠진 채 옴짝달싹을 못하는"(상권, p126) 상황을 기어이 이겨내고자 하는 (톨스토이가 말했던) '사랑의 힘'이 지닌 숭고함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간에게는 각각 주어진 환경이 있고 그 속에서 웬만큼 노력을 하다 보면 이제 이만하면 됐다 하고 멈추는 지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물여 예전의 무가사회란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이 있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 요시무라 선생은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보답이 있을 거라고 믿으셨던 것일까요. 자신의 노력으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신분의 벽을 깨고 요시무라 가문을 꽁꽁 묶은 숙명을 초월할 수 있다고 믿으셨던 것일까요. (하권, p142)


과연 나는, 나의 이제까의 삶은 '이제 이만하면 됐다 하고 멈추는 지점'에 이르기까지의 노력을 해보았던 적이 있었던가라는 자문에, 세상의 불의에 맞서겠다는 결의 따위는 애초부터 내 삶의 영역 이외였었다라 하더라도, 


아비는 인간의 길을 걷고자 하였을 뿐 부귀를 탐하였던 것은 아니다. 빈과 천을 부당하게 벗어나려 했던 것도 아니다. 호의호식까지는 못 시켜주더라도 너희가 비참한 마음이 들지 않게 해줄 수만 있었다면 아비가 그토록 어긋난 짓을 할 까닭이 없었다. 평생을 이타 이인부치의 말단 무사여도 좋았어. (하권, p100)


나의 아이에게 아버지로서의 제 삶을 설명할 수 있는 구절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하는 자문에도 기어이 답해낼 수 없음이, 사뭇 창피하기까지 합니다. 자존심 때문에 회피했었던, 뭐 그렇게까지 해서 굳이,라는 변명성 접두어를 앞세워 나의 삶을, 그리고 내 가족의 삶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라는 의미에서의) 소홀하지는 않았던가 하는 (약간의) 반성까지도 해보게 되고 말이죠. 



【 그러나 한 편으론... 


사내라면 사내답게 살아야지. 지조 있게 죽자는 게 아뇨. 지조 있게 살자는 거야. 지조 있게 산다는 건 제 몫을 다한다는 거요. 내가 꼭 해야 할 일, 내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하는 일,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을 칼같이 해내면서 살아야지. …그거 어려울 거 아나도 없어. 처자식이나 수하의 고생을 사내라면 제 등판으로 짊어지면 되는 거야. (하권, p231) 


「82년생 김지영」으로 대변될 수 있겠는, '남 탓' 내지는 '사회 탓'에 몰입되어 있는 일부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당연하겠으나, 그들의 생각에 동조할 수 없는 저에게도 또한 --- "현대 사회에서 점점 힘을 읽어가는 남성성, 참된 부성을 지닌 가장에 대한 천착"(p454)이란 시선으로 이 작품을 바라볼 독자가 있을 수 있다라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라는 점은 좀 아쉽기도 합니다. 남편/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내가 꼭 해야 할 일, 내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하는 일,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로 이해하는 건 요즘의 시대에선 아무래도 적합하진 않을 테니 말이죠. 더 나아가, 


아버님은 도련님께 피에 더렵혀지지 않은 칼을 남겨주시려고 칼끝마저 부러진 다 닳아빠진 칼로 배를 가르셨다오." (하권, p279)


기어코 저의 눈에서 눈물을 핑 돌게 해주었던 위 구절 역시,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포장하는 것'에 오용될 수 있다라는 점에서 '과연 이 소설을 나의 고딩 아들에게 권해주어도 되겠느냐'란 의구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 "진공상태이던 우주를 불법들이 가득 채워버렸다면 사소한 불법 하나를 이 세계에 보태봐야 불법의 총량에는 거의 변화가 없을 것이다"23란 작가 손아람의 견해가, 추가적 불법의 부당함을 지워낼 수 있다라는 점에서 비판 받아야 마땅하듯, '너를 위해 내가 사람을 죽였다'란 요시무라 간이치로의 행동 역시 감성이 부여하는 정당성을 득할 염려/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이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로구나. (하권, p190) … 이제 더 이상 고개 숙일 염치도 없으나 나는 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고만. 아무리 몸부림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정도 뿐이었네. (하권, p197)


가난을 이겨내고자 했던 요시무라 간이치로의 삶을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행동이 바로 근대적 의미에서의 혁명"24이라 표현하는 것에는 이성적 동의를, 그의 죽음에 대한 "가난한 사람이 마지막까지 어떻게든 그 가난을 뚫어내려고 했던 처절한 죽음의 모습"(하권, p267)25라는 표현은, 동료들의 수근거림을 이겨내었던 그의 삶을 떠올리게 하며 오랫만에 저로 하여금 "좋아도 한숨은 터진다는 것"26을 일깨워 주었습니다만.... 그 한숨은 이내, 


"최선의 선택은 패배를 받아들이고 승자에게 무릎을 꿇는 것 … 최선의 선택은 이제 투쟁을 포기하는 것 … 최선의 선택은 내가 따랐던 용감하고 위대한 사람을 가슴 속 깊은 곳에 묻는 것 … 최선의 선택은 그 시절을 지우는 것."


안토니오 아타리바 · 킴,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pp123-124, 길찾기, 2013.


아버지의 삶을 접어둘 수 밖에 없다란, 결국엔 그 시절을 지우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수 밖에 없다라 말하는 요시무라 간이치로의 막내 아들의 강요된 체념을27 보며 다른 의미의 한숨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하여/그렇게 당시 일본 역사에 대한 평가는, 


"메이지 체제는 지금까지의 명예문화의 구성에서 세습적 요소를 제거함으로서 보다 순수한 능력사회를 향한 길을 개척했다. 도쿠가와 시대 평민의 아들들에게는 명예공동체에 참가하는 형태로 진정한 사회적 신분상승을 이룰 가능성이 거의 없었던 것을 생각해 보라. … 새로운 유행 이데올로기 즉, 평민의 아들이라도 근면하게 일해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면 세상에 '이름'을 떨칠 수 있다는 확신은 이 명예지향 사회의 기업가적 활동에 엄청난 탄력을 주었다. 즉, 메이지 유신은 일본 민중의 잠자고 있는 능력주의적이고 실적본위적인 욕구를 불러일으켰고 이런 야심은 시장에서의 성공과 명예를 목표로 하는 새로운 정렬로 나타났다."


- 이케가미 에이코, 「사무라이의 나라」 pp528-530, 지식노마드, 2008.


위와 같은 승자의 소회로 이루어지게 되는 겁니다. 이러한 승자의 평가가 틀렸다라 말할 지식은 제게 없습니다만, ---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에서처럼) '막부파'와 '반막부파'를 선악의 기준만으로 보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저의 선택은


"인류가 공존하는 사회의 구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 사상28은 결코 서양의 이념과 대립하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경애해 마지않는 메이지라는 시대에서 역사상의 커다란 실책을 찾아낸다면 나는 일본과 서양의 정신, 새것과 옛것의 이념을 철저히 대립함으로만 취급했다는 점을 들겠다. …… 근대 일본의 비극은 근대 일본인의 교만 그 자체였다. 


- 아사다 지로, 「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 p249, 문학동네, 2013.


아사다 지로의 평가에 손을 들어주게 됩니다. 현재 우리의 삶이란 게 "기나긴 시대의 지혜와 인내가 축적된 것"(상권, p118)임을 부인할 수 없다면, 옛 시절의 불합리한 점들 역시 그러한 불합리가 있었었기에 그것들의 극복을 통해 현재의 합리를 얻어내었다라는 것, 현재의 합리 또한 미래엔 불합리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자각이야말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지녀야 할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겸손이 아닐까 싶기 때문이지요. 


이보쇼, 손님. 한 가지 우리하고 당신네들이 다른 점이 있는데, 일러드릴까? 잘 들으쇼. 윗사람에게 딱 한 마디 "모가지다"라는 소리가 떨어지면, 우리는 정말 모가지가 몸통에서 뚝 떨어져나갔소. (상권, p110) 


세르반테스 작품 속 '돈키호테' 이후,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아~ 이제 이 주인공과도 이별이구나'란 아쉬움을 처음으로 느껴본 주인공이었었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 「칼에 지다」 속 '지다'라는 동사의 의미가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바람에 꽃잎이 지다'라는 의미의 '지다'일 꺼라 믿습니다. 요시무라 간이치로의 삶이란 걸 결코, '패배'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잘 가요, 간이치로...



 읽어본, 아사다 지로의 작품 : 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 

 위대한 개인의 신념 :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카탈로니아 찬가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반드시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지금 이 블로그에 와있는 당신에게마저 여하한 구실로라도 '나를 아는' 이란 형용사를 붙여 --- 꼭 한번 읽어보시라 말하고 싶은 책들의 제목 앞에 ★표시를 붙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표시이겠지만 가끔은, 타인의 주관을 한번쯤 믿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더군요.



  1. 역사에 대한, 특히나 일본 근대사에 대한 얇디 얇은 저의 지식을 바탕으로 한 정리입니다. 오류가 있다면 언제든지 지적해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2. 당시에 이미 사실상의 힘은 에도에 있는 쇼군이 가지고 있었고, 교툐에 살고 있던 천황은 현재와 비슷한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했었다 합니다.
  3. 물론, 이 때의 '태평'이라는 단어가 모든 이가 행복해하는 시기였었다는 뜻은 아닐 수도 있을 겁니다. 거시적으로 보아 국가의 태평성대가 이어졌었다라는 정도가 아닐까 싶네요.
  4. "옛 시대에 엄연히 존재했던 사농공상의 구분, 무사와 평민의 격차에 대해서는 다들 잘 아시지만, 실은 그 무가사회 속에도 영원히 타파되지 않는 계급이 있었다는 건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디다."(상권 p162)
  5. 이같은 사회구조는 동서양의 역사를 막론하고 모두 공통된 것이었을 뿐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죠. --- "나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장애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점차 알게 됐다. 그들에게는 그걸 마음대로 들었다 놨다할 수 있는 힘이 있으므로. …… (반면) 우리의 가난함은 나눠봤자 더 가난해질 뿐이었고." 안토니오 아타리바 · 킴,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pp23-24, 길찾기, 2013.
  6. 약간의 무리를 감안하고 표현한다면 일종의 '개화파'쯤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7. "시모자와 칸의 「신센구미 시말기」에 단 몇 줄로 등장하는 요시무라 간이치로" (하권, p451)
  8. "전쟁이라는 건 항상 그 나름의 대의가 있겠습니다만, 그 배경에는 반드시 대의 따위와는 상관없는 굶주림과 가난이 있어요." (상권 p214)
  9. 다카하시 데쓰야, 「국가와 희생」 p258, 책과함께, 2008.
  10. 안토니오 아타리바 · 킴,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p144, 길찾기, 2013.
  11. "어머님, 간이치로는 문무에 정진하고 입신 출세하여, 내 자식의 눈에 눈물 나게는 하지 않으리다. 설령 병이 들더라도, 전장에 나가더라도, 어린 자식을 남기고 죽는 일은 없으리다." (상권 p405)
  12. 구병모, 위의 책 p202.
  13. "희생논리의 편재성(omnipresence)"(p255)을 내세워,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일본만의 행위가 아닌 것으로 교묘하게 둘러 세우는 다카하시 데쓰야의 논조는 분명 비판 받아야 하겠습니다만, 어쨌든 위와 같은 논리의 주입이 일본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것 자체는 사실이며 다카하시 데쓰야 역시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기에 인용하였습니다.
  14. "사무라이란 원래 전문가 즉,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군사적 기능으로 지배계급에 봉사하는 직능집단이었다. … 그들은 군사전문가로서 명확한 자기정체성을 갖는 일본 최초의 사회 집단이었다." - 이케가이 에이코, 「사무라이의 나라」 p89, 지식노마드, 2008.
  15. "다이묘들이 다스리는 '번'(현재 일본의 현과 유사한 지방단위)'은 하나의 국가로 존재하다보니 이 지역에서 거주하는 사무라이, 백성은 모두 번을 벗어나 살 수가 없었다. 다이묘들은 자신만의 강력한 지방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번을 벗어나는 행위, 이른바 '탈번'을 엄하게 처벌했다. 특히 번 방위의 최고 병력인 사무라이들이 탈번을 할 경우 토벌대를 보내 끝까지 추격해 잡아들이거나 여의치 않을 경우 살해하는 등 내부단속에 철저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탈번은 나라를 버리는 매국노 정도로 취급받을 정도였다." - 뉴스웍스, '탈번, 목숨을 건 도박' 중, 2017.3.21.
  16. "신센구미는, 이백육십여 년 동안 대대로 세습되던 도쿠가와 막부의 무가사회가 무너지고 새롭게 천왕을 옹립한 세력에 의해 메이지유신이 일어난 격변의 시대에, 도쿠가와 막부에서 마지막으로 조직한 교토 경호대였다. 교토에는 나라의 근분인 천왕이 있었고 불온한 세력이 호시탐탐 그 천왕을 들쳐업고 정권을 쥐려 할 때, 이를 막기 위해 막부에서 교토에 특파한 특수부대인 셈이다." - <역자 해설> pp448~449
  17. "대부분은 고향 영지에서 탈번해 온 낭사들이야. 서양 오랑캐를 몰아내고 천왕을 받든다, 세상을 위하고 백성을 위한 일이다, 하고 겉으로는 대단히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물론(47) 실상은 그렇지를 못했어. 그저 다 먹고살자는 짓이었지." (상권, pp47~48)
  18. 아사다 지로, 「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 p112, 문학동네, 2013.
  19. 아사다 지로, 「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 p77, 문학동네, 2013.
  20. "나는 전쟁이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 … 언제고 그저 내가 죽을 수 없어서 상대를 죽였지. 그저 그것뿐이에요."(상권, p323)
  21. "신성한 일에 쓰기 위하여 보통의 것과 구별하는 일" - 네이버 국어사전
  22. "국가가 국민을 전쟁에 동원하여 대량의 전사자를 낼 경우, 국가는 그 전사자를 위한 - 국가를 수호하기 위한, 그리고 국가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 숭고한 희생이었다는 식으로 성별하고 이들을 성스러운 존재로 추모하며 찬미하는 논리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깊은 정신적 타격을 입은 유족들을 위로하고 감사하고, 위무한다. 유족이 가슴에 품은 전사의 비애와 공허감, 애절한 심정을 국가는 그 같은 '국가의 이야기'로 메워주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국민들이 유족이나 전사자들에게 공감함으로써 그들을 모범으로 삼아 '우리 역시 그들을 계승해야만 한다'는 '자기희생의 논리'를 만들어낸다. 그러면 전쟁을 거듭 반복할 수 있다는 전망이 선다." --- 다카하시 데쓰야, 위의 책 p117.
  23. 손아람, 「소수의견」 p68, 들녘, 2010.
  24. 자오팅양 · 레지 드브레, 「상실의 시대 : 동양과 서양이 편지를 쓰다」 p24, 메디치, 2016.
  25. "그 사람은 우리 가난한 사람들의 귀감이었어. 가난에 익숙해지는 건 옳지 않다며 거기에 끝까지 맞섰던 단 한 사람이었어. 적어도 선조 대대로 이어져온 가난이라는 것을 자기 대에서 어떻게든 끝내려고 애썼던, 세상 어느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가난한 사람이었단 말요. … 다들 생각만 하고 포기해버리는 것을 그 사람은 꾸역꾸역 착실하게 해낸 거야." (하권, pp254~257)
  26. 아사다 지로, 「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의 <옮긴이의 말> 중 p254, 문학동네, 2013.
  27. "아버지 얘기가 금기라니 그것도 이상합니다만, 시대라는 높은 벽 너머의 일이니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고 지냅니다. 이런 일은 어린 시절에 메이지유신을 겪은 우리 세대애서는 흔한 일입니다. 집안의 역사를 묻어두지 않으면 자손들이 살아갈 수 없다, 말하자면 그런 거죠." (하권, p404)
  28. 무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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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말'의 눈으로 인간 세상을 이야기했던 「걸리버 여행기」를 읽고, 그렇다면 '개'의 눈으로 본 인간 세상을 또 어떠할까라는 의문이 들어 이 얇은 소설을 펼쳤더랬습니다,라고 일견 말할 수 있겠으나 실은 --- 이래저래 심사가 복잡복잡한 요즈음이기에 두껍거나 어려운 책을 읽기가 너무 버거웠었다라는 게 좀 더 솔직하고 직접적인 이유였습니다. (그 누구도 저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책은 읽어야 한다라 강요하지 않았었거늘) 그같은 복잡복잡한 심사로 읽어낸 소설이어서일까요? 


……………………………………………………………………………… 


까닭 없이 짖는 개는 없다. (p110)  …… 내가 사람의 아름다움에 홀려 있을 때도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모르고 있었다. (p124)


이 작품 속 주인공인 개 '보리'가 바라보는 인간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 세상을 살아가고/내고 있는 인간들은 그 아름다움을 알아채지 못한다라는, 그러하기에 그 아름다움을 사람들이 깨우쳐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짖는다'라, 이 소설은 설정되어 있지요. 


나는 세상의 개들을 대신해서 짖기로 했다. 짖고 또 짖어서, 세상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눈부시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 … 인간이 인간의 아름다움을 알 때까지 나는 짖고 또 짖을 것이다. (p6) 


보리(개)가 보기에 인간 세상은 그토록 아름답거늘, 왜 그 구성원들인 인간들은 그 세상의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제 생각에 작가는 그 이유를 예의 '상대성에 대한 인식'의 결여에서 찾고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같은 인식의 결여가 반드시 고의적이거나 의도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지요. 개가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것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삶이 아름답다라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 예의 그러한 인식의 결여가 개의 고의는 아니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아름답지 못한 것으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일말의 반성...   


·

·

·


태어나보니, 나는 개였고 수놈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기는 소나 닭이나 물고기나 사람도 다 마찬가지다. 태어나보니 돼지이고, 태어나보니 사람이고, 태어나보니 암놈이거나 수놈인 것이다. (p10) …… 나는 수컷으로 태어났으므로 수컷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가 원해서 그렇게 된 일은 아니었다. (p150) 


아주 어렸을 적, 종원군이 그랬었죠. 하나님께 자기가 아빠랑 엄마의 아이로 태어나게 해달라 해서 태어났던 거라구. 그토록 좋았던, 그때엔 작았던 이 세상이, 고딩이 되어 있는 지금의 그에겐 너무도 버거워 보입니다. 세상의 변화란 게, 제 아무리 그 누구도 해보려 하지 않았던 작은 저항으로부터 시작된다 하여도 --- 현 교육 환경을 당장 개선해내라 교육부 장관에게 요청할 수도 없는 노릇이며,1 그렇다고 이제와서, 왜 한국에 살고 있는 부모의 아이로 태어나게 해주셨냐라 하나님께 항의할 수도 없을 것이며, 부모를 바꿔버리겠어!라 할 수도 없음이 나름 답답하기도 하겠죠. 이건 뭐... 50대에 접어든 저에게도 여지없이 가시지 않는 고민이기도 합니다. 


어제 낮, 오랫만에 만난 친구와 낮술을 하며 서로의 살이를 이야기했더랬습니다. 모든 것이 고민이고 딱히 즐거운 일이 생겨나지도 않는 이 살이가 --- 나에게만 그러한 것인가, 우리 나이의 남자들에게 그러한 것인가, 아님 대한민국에서 산다라는 게 이런 것인가 … 등등을 대입해보았으나, 그 어느 하나 정답이 될 수 없다라고, 왜 그런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우리의 살이라는 게 그냥 그러.하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엔 없었었지요. 물론,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저희를 향해 또 그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 하고 있다라거나, 그래도 너희는 행복한 거다란 일종의 비아냥을 건넬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배고파서 한 짓이 아니고, 맛있는 것이 먹고 싶어서 한 짓이 아니란 말이다. 이것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말해줄 수가 있었겠는가. 태어나보니 개이고, 태어나보니 사람인 것이다. (p22) …… 착하신 주인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 엄마를 마구 때려준 것도 다 눈치가 모자랐기 때문이야. 사람의 마음으로 개의 일을 판단했기 때문이지. (p29)


태어나보니 대한민국이었고2, 태어나보니 지금 부모님의 자식이었던 것이고 … 지금 제 모습, 지금 제가 살아가고/내고 있는 삶의 시작이었었지요. 사람의 삶이란 게,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태어나 보니 개이고, 태어나보니 사람인 것'과 같은 한계마지 뛰어넘을 수는 없는 겁니다. "개들은 개 갈 길이 있는 거야"(p217)이란 할머니의 말씀은, 작가 김훈 역시 숙명론에3 가까운 인생관을 피력하고 있어 보이죠. 제가 그렇듯 말입니다. 


……………………………………………………………………………… 


개는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어찌 견딜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견딜 수 없다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pp182~183)


줄거리가 무엇인지,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저의 능력과 지금의 마음 상태로는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만, 위 두 문장만큼은 제 가슴 속에 콱~하고 박혔네요. 더 이상 낼 수 없는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건네어지는 '힘 내~'란 타인의 위로란 게 무척이나 잔인한 것이라 늘 생각해왔거늘, '그렇다고 해서, 견딜 수 없다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란 작가의 물음은 --- 잔인하나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조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원군에게 '견딜 수 없다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지금의 현실을 그저 받아들이고 승복하라,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할 겁니다.  그 대신 '사람의 마음으로 개의 일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것, 그렇게 고딩의 마음으로 고딩의 살이를 이해해보려 계속 노력해야 하는 부모된 자로서의 마음가짐 ---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고 남자로 태어났으며, 그렇게 한 생명의 부모가 되어 있는 제가, 역시나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고 남자로 태어났으며, 그렇게 한 생명의 부모가 될 지도 모를 나의 아이를 위해 감내해야 하는 또 하나의 피할 수 없는 조건이겠죠. 


이 가을, 날씨는 참으로 좋거늘...



 읽어본 작가 김훈의 소설들 : 남한산성」, 「칼의 노래 

 



  1. 그럴 능력이 있는 교육부 장관도 아니겠으나.
  2. "아무런 인연도 없이 어쩌다가 내가 태어난 고향" (p59)
  3. "사람이 하늘이 정한 운명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믿는 것을 숙명론(宿命論)이라 한다면, 정성과 의지로써 타고난 운명조차 바꾸어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조명론(造命論)이라 할 수 있다." - 방민호, 「연인 심청」 p399, 다산북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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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 개정판
조나단 스위프트 지음, 신현철 옮김 / 문학수첩 / 199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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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뒷 표지에 '독설과 풍자로 감옥에 갇힐 것을 각오하고 펴낸 책'이란 무시무시한 구절을 떡하니 적어놓은 출판사의 (사뭇 패기어린) 문구로부터, 이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유럽사, 적어도 영국사의 개요 정도는 이미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니스런 무언의 압박을 살짝이 느꼈었기도, 거기에 더해 --- 이 작품이 '풍자'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면, "물어뜯고 비꼬고 우스갯감으로 만드는 것은 그 풍자가 생산되어 나온 당대 사회의 실존 인물, 사회환경과 제도, 이데올로기, 사건, 편견 같은 것들"1에 대한 사전적 지식을 가지고 그 풍자를 이해하는 것이 마땅히 옳지 않겠느냐는 나름의 자기 검열에 선뜻, 이 작품을 펼치지 못했었었거늘, 막상 다 읽고 나니...



"인간의 이야기는 딱 두세 가지밖에 없다. 그 이야기들이 마치 전에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인 양 강렬하게 계속 되풀이된다. 지난 수천 년 동안 다섯 가지 음조로 똑같이 노래해 왔던 시골의 종달새처럼 말이다"


- 미히르 데사이, 「금융의 모험」 p315, 부키, 2018.


1667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태어난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가 지은 이 작품을 (최소한의 한도 내에서라도) 이해해냄에 있어 유럽이나 영국의 사회상, 역사2까지 반드시 알아야 할 필요까지는 없다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들을 알고 있으면 이 작품에 대한 이해가 좀 더 정교해질 수는 있겠죠만,3 그럼에도 불구하고 --- '시대를 초월하여 늘 현재와 소통하는 문학'4이라 정의될 수 있겠는 '고전classic'이라 불리우는 작품들이 기본적으로 다루고 있는 주 대상은 넓게 보아 '인간의 본성'이며, 예의 인간(본성)의 진화란 게 (지난 수천 년간 종달새의 레퍼토리와도 같이) 대략 350여 년의 시간으로는 변모하기 어렵기에 , 굳이 어려운(!) 유럽의 역사까지 알지 않더라도, 조선 시대의 역사에 대한 약간의 지식,5 그마저 부담된다면 그냥 2018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라도 그것들을 충분히 대체해줄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점이 지엽적이 아닌, 뭐라 한계/특정지을 수 없겠는, 그냥...


'인간의 이야기'란 것이죠.


…………………………………………………………………… 


"어떤 사람이 왕인 것은 오직 다른 사람들이 그를 받들어 신하로서 복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반대로 그가 왕이기 때문에 자기들은 신하라고 생각한다." (p67) …… (이처럼)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p109) 


- 류동민,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중, 위즈덤하우스, 2012.


위와 같은 상대성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란 게 이 작품 속 스토리들을 이해하는 결정적 렌즈라 이해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소인국(릴리퍼트)과 거인국(브롭딩낵)의 이야기는 이러한 상대성에 대한 인식이 필요함을6(이 작품의 메인 스토리가 결코 아닌, 명백히!) 일종의 introduction 격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들일 뿐이죠.


작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존재로 나를 바라보았다. … (거인국에 있는 지금) 릴리퍼트의 작은 사람 하나가 영국에 온 것처럼, 이 나라에서 나는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처럼 보일지에 대해 생각하니 무척이나 억울했다. … 크거나 작다는 개념은 상대적인 것이라고 철학자들이 이야기한 것은 옳은 말이다. (p106)


동일한 인물이 한 곳에서는 '놀라운 존재'로, 다른 곳에선 '보잘것없는 존재'로 간주되는 이같은 상대성에 대한 인식의 착시는 "습관과 편견이 가질 수 있는 힘"(p190)에 의해 발생되고 또 강화되어 결국엔 사고(思考)의 범위까지도 한계지어버리게 된다라 작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나의 얼굴이 넓으면서도 코가 오뚝하고, 눈이 정면에 붙어 있어서 고개를 돌리지 않고는 옆쪽을 볼 수도 없다고 비판했다.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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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프트는 인류 혐오자라고도 불린다. 「걸리버 여행기」는 신랄한 인간 혐오를 드러낸다. … 그는 인간 자체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 천성적으로 착하다는 당시의 낙관적 견해에 대한 반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p380) 


제가 이해하는 바 (그리고 아마도 읽은 이들 모두가 동의할 것 같은) 이 작품의 핵심은 너무도 당연히! --- 제 4부인 <말들의 나라 : 휴이넘 기행>입니다. 이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렌즈인 상대성에 대한 명확한 인식 (더 좁게는 당시 영국 사회상에 대한 비판)을 위해 작가는, "공통된 유적(類的) 특성"7의 한계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인간도 아니며 당연히 영국인도 아닌,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옆쪽을 볼 수 있는) '말'이라는, 완전히 다른 종()의 입을 빌리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어린 톰은 그렇게 불행하지 않았다. 고생을 하면서도 그것이 고생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펄코트에 살고 있는 사내아이들이라면 예외 없이 누구나 그런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톰은 그런 생활이 자연스럽고 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 마크 트웨인, 「왕자와 거지」 p20, 민음사, 2010.


마크 트웨인도 지적했었듯, '예외 없이 누구나'라는 환경이 그 구성원에게 안겨주는 영향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구성원이 '예외 없이 누구나' 인간이라면 인류 전체의 하비투스(habitus),8 작게는 특정 국가나 민족의 하비투스를 뛰어넘는 사고를 한다라는 것이 참으로 지난한 일일 수도 있다라는9 것이 일례일 테고, 그러하기에 심지어 특정 문제점을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도 종종 발생되게 되겠죠. 행여 문제를 비판한다 하더라도, --- 「금융의 모험」의 저자 미히르 데사이 교수가 지적했었듯,10 문제의 근본을 파악하고 고치려기보다는 그 현상만을 비판하는, 한 때 유행했었던 구절인 '유체이탈식 화법'을 구사하기 일쑤이기도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350여년 전, 조너선 스위프트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 사회 문제의 핵심을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탐욕11으로 규정짓고 있었던 것이죠. 


주인은 우리를 아주 작은 분량의 이성을 부여받은 동물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성을 좋은 일에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정을 더욱 악화시키고, 자연이 우리에게 부여하지 않았던 새로운 잘못을 만드는 일에 이성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자연이 우리에게 부여한 좋은 능력을 잃어버리게 됨으로써 인간의 단점은 더욱 늘어나게 되었으며, 아무런 소용도 없는 발명품에 의해 자신의 단점을 메우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p330) 


물론 '화폐'라는 것이 작가가 적은 것처럼 '아무런 소용도 없는 발명품'이라고는 저도 생각지 않습니다. 허나 1667년 생 작가가 「걸리버 여행기」라는 작품을 통해 지적한, 인간이 지니고 있는 (아주 작은 분량의) 이성이 고안해 낸 ('화폐'를 비롯한) 각종 제도와 체제들에, 그 이성으로도 통제되지 못한 탐욕으로 인해,12 심지어는 그 이성을 이용도 하여13 애초의 목적과는 완전히 변질된/동떨어진 역할을 부여하게 되었다라는,14 그리하여 그 제도의 피해자들이 생겨나게 되었다라는 점15은, --- 얼마 전 읽었었던 '금융'에 관한 책들이 누누히 지적하였던 '수단과 목적의 전이'가 초래하는 부작용들과 완벽하게 동일하지요. 


만들었을 당시에는 아주 좋았을 제도들이 그대의 나라에서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하다가 이제는 부패되어 완전히 희미해지거나 제멋대로 변모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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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분명히 읽었었었던 <세계명작동화>의 리스트 중, 지금은 완벽하게 그 내용 모두를 잊어버린 작품들이 참 많습니다. 「소공자」와 「소공녀」가 대표적이죠. 당시 저의 이해력이 부족했었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이 없을 수도 있겠으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작품들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고자 했던 바라는 게 어린 나이의 한국 소년에게는 이해되기 싶지 않았었기 때문일 수도, 혹은 요약본식 동화로는 전달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성인이 되어 읽어 본 「왕자와 거지」라든가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 「톰 아저씨의 오두막」, 「프랑켄슈타인」, 「지킬박사와 하이드」, 「돈키호테」 등의 작품들은 위의 두 가지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내재되어 있거늘, 왜 여전히 어린이용 명작 동화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그들의 위대한 금언은, 이성을 기르며 이성에 의한 지배를 받으라는 것이다. (p340)


이 작품의 핵심주제를 표현하고 있는 위 구절에 대한 이해가, 깊은 바다를 걸어 상대국의 전함들을 끌어오고, 왕궁에 난 불을 오줌으로 끄는 거인 걸리버의 이야기만을 담고 있는 동화를 통해서 가능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런 이야기들만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딱히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당연하다 생각해 왔던 것들이, 더 이상은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라는 생각, 더 나아가 이전에 당연하다 여겼었던 것들이 기실은 당연한 것들이 아니었었음을 깨닫고 인정할 수 있는 유연함이, 적어도 현 세대 아이들이 교육에만큼은 발현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읽어 본, '세계명작동화'의 원역본 : 왕자와 거지」, 「로빈슨 크루소」, 「톰 아저씨의 오두막」, 「프랑켄슈타인」, 「지킬 박사와 하이드」, 「돈키호테 1」, 「돈키호테 2

 동물의 입을 빈 인간 사회에 대한 비판 : 동물농장



  1. 조지 오웰, 「동물농장」의 <역자 해설>, p147, 민음사, 2006.
  2. 「걸리버 여행기」는 스위프트 당대의 분쟁, 선입관, 정치, 논쟁, 신념과 심지어 자신의 신앙까지도 초월한다. 스위프트의 기독교 정신, 아일랜드 출신으로서의 입장, 왕당파의 정신, 지성적 보수주의 등 개개의 사실이 그의 풍자를 구성하는 요소다. - <역자 해설>중, p387.
  3. 17세기 유럽은 그야말로 '인간의 이성'에 대한 집중이 지배하던 시기였었었죠. 이 작품 또한 그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라 보아도 무방하기에 / 그러한 사조를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에 예의 해당 시기 및 지역적 특성까지를 고려한다면 보다 더 정교한 이해가 가능해지기는 하겠지요.
  4. 민음사 <모던클래식 시리즈> 소개말 중.
  5. "그는 나에게 한 나라가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는 원인이나 동기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 이유는 수없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들만 몇 가지 말하겠다고 했다. 결코 자기가 통치하는 땅이나 사람들로 만족하지 못하는 국왕의 야심이 원인이다. 그들의 사악한 실정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분노를 억누르거나,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전쟁을 일어키기도 한다. 대신들의 부패가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의견의 차이는 수백만 명의 생명을 쉽게 빼앗아 간다. 예를 들면 고기가 빵이냐 빵이 고기냐에 대한 논쟁, … 휘파람이 악행이냐 미덕이냐 하는 논쟁, … 외투가 길어야 하는가 짧아야 하는가, 좁아야 하는가 넓어야 하는가 … 에 대한 논쟁 …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한 의견의 대립으로 일어나는 전쟁만큼 무섭고 잔인하며 긴 전쟁은 없을 것이다." (p314) --- 이 구저을 통해, 조선시대의 예송논쟁 등, 현재의 정상적 기준으로 보자면 터무니 없었던 각종 다툼들은 조선만의 문제점이 아니었던 걸 알 수 있지요.
  6. 하지만 작가는 '자연'에 대해서만큼은 중립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건 아마도 '신'에게는 상대성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싶네요. --- "자연현상은 모든 면에서 그들의 신체와 같은 비율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브롭딩낵의 우박은 유럽의 우박보다 거의 1,800배가 컸다."(p146)
  7. "모든 인간은 같은 '류'로서 이른바 공통된 '유적類的' 특성을 가지나, 특정 사안에 대한 생각, 특정 사건에 대한 느낌, 특정 자극에 대한 반응은 민족에 따라, 시대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나타난다." - 진중권, 「호모 코레아니쿠스」 pp 11~12, 웅진지식하우스, 2007.
  8. "'하비투스(habitus)'라는 개념 … 우리말로 흔히 '습속'이라 번역되는데, 거칠게 말하면 특정 사회 성원들의 사고방식, 감정구조, 행동양식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 진중권, 위의 책 p11.
  9. "상식과 상식이 서로 견제할 때는 몰상식이 생겨나지 않는다. 하나의 상식만이 존재하는 사회가 비상식적인 사건을 낳을 뿐이다. … 지배적인 상식의 괴물에게 바쳐질 제물이 될 위험에 처하고 나서야, 순진한 믿음과는 달리 모든 상식이 정의가 아니었음을 우리는 깨닫는다." - 노명우, 「세상물정의 사회학」 p26, 사계절, 2013.
  10. "나쁜 것은 금융이 아니다. 나쁜 것은 금융이 끌어들이는 사람이 아니다. 단지 이기적 자아와 야망에 기름을 붓는 금융의 힘이 유별나게 강력할 뿐이라고 보는 것이다." - 미히르 데사이, 「금융의 모험」 p307, 부키, 2018.
  11. "이 나라의 들판에는 여러 색으로 빛나는 돌이 있었다. 야후들은 그 돌을 미친 듯이 좋아한다. 빛나는 돌이 땅 속에 묻혀 있는 것을 발견하면, 그들은 며칠 동안 발톱으로 땅을 파서 꺼내 가지고 자신들의 굴 안에 무더기로 숨겨 놓는다. 그런 뒤에는 그들의 동료들이 빛나는 돌을 훔쳐 갈까 봐 세심하게 살핀다. 주인은 이런 돌들이 야후들에게 무슨 쓸모가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무슨 이유 때문에 야후들이 빛나는 돌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주인은 그것이 탐욕 때문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는 시험 삼아 야후가 숨겨 놓은 곳에서 빛나는 돌을 옮겨 놓은 적이 있었다. 탐욕스러운 이 동물을 크게 울부짖으면서, 야후들을 모두 불러 그 장소로 데리고 간다. 그곳에서 그는 절망적으로 울부짖는다. 그 야후는 동족들을 물어뜯으면서 먹지도 않고 잠을 자지도 않았으며 일을 하지도 않았다. 주인은 하인을 시켜서 빛나는 돌을 원래의 구멍으로 옮겨놓도록 했다. 그러자 그 야후는 즉시 기운을 차리고는 매우 좋아했다. 조심스럽게 빛나는 돌을 다른 곳에 감춘 뒤, 그 야후는 아주 말을 잘 듣게 되었다. 주인은 빛나는 돌이 풍부한 들판에서는 다른 야후들의 끊임없는 기습 때문에 빈번하게 싸움이 일어난다고 했다. … 두 마리의 야후가 빛나는 돌을 들판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을 서로 갖기 위해 서로 다투고 있을 때, 다른 야후가 그것을 가져가 버리는 일은 흔히 있다고 그는 말했다. … 야후들은 그들이 서로 싸우게 되었던 빛나는 돌 이외에는 잃어버리는 것이 없다. 하지만 우리의 형편없는 법정은 어느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재산이 남아 있는 동안은 그 소송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pp332~333)
  12. 이같은 우리 인간의 욕망에 대한 아이러니는 대중가요의 가사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길을 걷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 집 앞 골목 위에도 권력이 있어요
    이어폰을 꽂고 멍하니 걷다가 / 쌩하니 달려오는 자동차를 봐요
    내가 다칠까 무섭기도 하고 / 흠집이 날까 두렵기도 하고
    누가 탔을까 부럽기도 하고 / 얼마짜릴까 궁금해질 때 즈음
    왼쪽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다가 / 빨간 라이타 속에 눈물이 있네요
    낡은 지갑을 열어 이리저리 뒤지다 / 오래 전에 찍은 가족사진을 봐요
    이게 언제였더라 웃기기도 하고 / 내가 이랬었나 놀라기도 하고
    그냥 갑자기 미안하기도 하고 / 지금 이 상황이 막 화가 날 때 즈음
    길을 걷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 집 앞 골목 위에도 권력이 있어요
    근데 더 웃기는 건 화가 나던 내가 / 저 까만 자동차를 갖고 싶단 거예요"
    - 스카웨이커스 <욕망>
  13. "영국의 야후들은 타고난 이성을 사용해 악덕을 더욱 향상시켰다." (p353)
  14. "화폐가 화폐인 것은 원래부터 화폐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너도 나도 상품을 그것과 바꾸려 욕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물신이 되어 버린 돈은 이제 사람들을 지배합니다. 필요로 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손에 얻기 위한 수단이었던 돈이 그 자체로써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 류동민, 위의 책 pp67-68.
  15. "부자는 가난한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서 만든 것으로 하루를 즐긴다. … 소수의 사람을 부자로 만들기 위해 대다수의 사람들은 적은 급료를 받으면서 노동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비참하지 않을 수 없다."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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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인문학 - 머니 게임의 시대, 부富의 근원을 되묻는다
김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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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본질은 '돈'이 아니라 '가치'다. (p264)


결국! --- 이 한 마디가 이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흔히 하거나 듣게 되는 말 중 하나인 '돈만 밝히는 사람'이란 표현이 비난/경멸의 의미로 사용되는 것 역시 '가치'를 배제하고 '돈'만을 밝히는 행위가 경제, 더 나아가 우리 삶의 본질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겠죠.


돈은 참으로 좋은 것이다. …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좋은 것이 되려면 '좋은 삶'이라는 지향과 맞물려야 한다. (p270) 


'보이지 않는 손'이란 표현을 통해 아담 스미스가 주창했던 '시장의 자유'란 엄연히 "시장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 그 자체는 될 수 없다"1란 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었거늘, 그 오래 전의 현인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수단의 양이 그 목적에 의해 제한되어야 함을 분명히 설파했었었거늘,2 --- 저자 김찬호 선생님3 현인들의 그 오래전 가르침과는 달리, 현대의 삶이란 게 수단과 목적이 완벽하게 전이된 모습을 띠고 있다고 지적해줍니다. 


돈이 교환의 수단이 아니라 궁극적인 가치요 최종적인 획득 대상이 된다. 거기에서 사람들은 '돈만 있는' 삶을 맹렬하게 추구한다. (p221)

경제학의 기본 모형을 빌어 설명해보자면 이는 --- '전제 조건'으로서의 역할로만 규정되어 있는4 소득, 즉 돈의 양이란 것이 거꾸로 목적이 되어 버리면서 우리의 삶이 변질되었고 급기야 수단과 목적의 전이되어 있다라는 인식 자체까지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리는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는 것이죠.  


"마르크스는 경쟁이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의식을 낳으며 결국 현실을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 경쟁은 좋은 성과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써 필요한 것인데, 거꾸로 경쟁을 거쳤으므로 성과 역시 틀림없이 좋을 것이라는 식의 뒤집어진 의식이 생겨나곤 하는 것이지요. 또는 성과가 좋지 않은 것은 경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현상 때문에 정작 내재되어 있는 현실의 문제를 왜곡하거나 은폐하기까지 합니다." 


- 류동민,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pp159-160, 위즈덤하우스, 2012


「돈의 인문학」이란 제목이 암시하듯, 이 책은 --- 현재와 같은 돈에 대한 '수단과 목적의 전이'가 어떠한 이유로 발생되었는가, 그리고 그 폐해는 무엇인가에 대한 비경제학적 설명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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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 본질은 각각의 개인들에 내재하는 추상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이다." 


- 류동민, 위의 책 p33


인간과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이 사회과학입니다. 따라서, 스스로를 '사회과학의 여왕'이라 칭하고 있는5 경제학이 바라보는 인간의 본질 역시, 사회적 관계라는 틀을 벗어날 수 없겠지요. 그러나 여러가지 전문용어들과 복잡한 수학으로 무장한 사회과학만 인간과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를 분석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소설가의 역할에 대한 설명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제대로 된 관찰자"6로서의 문학 또한 --- '지금의 나'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생물학적 유전자만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닌,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생성되고 성장해 온 존재라 표현하고 있지요.   


"인간은 DNA의 산물이 아닙니다. 인간은 기억의 총합입니다."


- 박주영, 「고요한 밤의 눈」 p36, 다산책방, 2016

 


제가 어렸을 적에는 흙바닥의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땅따먹기도 하고, 정글짐도 하고, 야구도 하며 놀았더랬습니다. 요즘의 아이들은 PC방 혹은 적어도 와이파이가 되는 곳, 그 중에서도 전기콘센트가 있는 곳 주변에서 주로 논다더군요. 바로 옆에 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서로를 온라인상에서만 상대하는 것이죠. 세상이 이상해졌다라거나 이전이 더 좋았다란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다만 --- 사회적 동물인 인간, 그러하기에 그 본질이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로까지 정의될 수 있는 인간이 타인과 맺는 관계의 성질이 변하였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것이죠. 저자 김찬호는 동네마다 있던 (외상이 가능했었던) '가게'가 (고객과 종업원 서로가 서로를 알지조차 못하는) '편의점'으로 대체되었다라는 현상을 그같은 변화의 일례로 들고 있습니다. 


생활양식이 다양해지고 인간관계가 단절되어 공통의 문화가 희박해지는 가운데 돈은 사람들을 연결하는 유일한 매체로 그 위상이 더욱 확고해진다. (p23) 


이같은 관계의 변화를 통해, 본래 '거래의 원활'이라는 필요에 의해 생겨났던 '돈'이라는 단순한 물질의7 역할을 탈피하여, 거래 당사자들간의 관계를 설정지어내는 지위로까지8 격상됩니다. 돈(화폐)의 본질을 그 어떠한 단어로 표현건 엄연히 '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임에 분명하고, 수단의 보유가 곧 (원하는) 결과의 획득과 동치가 아님을 잘 알고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  돈에게 "그 자체로써 가장 중요한 목적"9이라는 지위에, 심지어 얼마나 많은 돈을 보유하고 있는가를 곧 (나를 포함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판단하는 (거의 유일한) 기준의 지위까지 허하고10 있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결국, 


돈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표로 절대화되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실종되어버렸다. (p179)


삶의 목표가 '한 10억 쯤 버는 것'이라 말하면서도 그 10억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하지못하는/관심없는 세태, 즉 결과의 도출을 위한 삶이 아닌, 수단의 확보를 위한 삶이 되어 버린거죠. 허나 위와 같은 목적의 실종이란 현상이 각 개인의 욕망이 과도하다거나 무지해서가 아님 또한 자명합니다. 그럼 대체 어찌하여 이런 일이 벌어진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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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도라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 생각하는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에서 저자 홍기빈은 인간의 욕망이 무한하다는 경제학의 가정에 대해, 무한한 욕망은 오로지 '화폐(돈)'이라는 재화에만 한정된다라는 것을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있지요. 류동민의 간결한 표현을 빌자면, 


"화폐가 화폐인 것은 원래부터 화폐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너도 나도 상품을 그것과 바꾸려 욕망하기 때문입니다.11 그러나 물신이 되어 버린 돈은 이제 사람들을 지배합니다." 


- 류동민, 위의 책 p67


원활한 거래를 위한 '교환의 수단'이었던 화폐, 교환되는 물품의 상대적 가치를 측정하는 수단일 뿐이었던 화폐는 이제 --- 그 관계를 역전시켜 '가치'를 규정/생성하는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12 현대 사회에서의 절대 권력을 화폐에게 선사한 것이죠.13 


"권력을 갖는 자는 실상은 다른 사람들이 그의 권력을 인정해 주기 때문에 비로소 권력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나 권력의 인정이 일상화하면, 권력을 가진 자는 자신의 권력이 스스로의 내적 특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 반대로 권력에 지배당하는 이들은 스스로가 그 권력을 부여한 원천임을 깨닫지 못하고 일상적으로는 권력을 두려워하고 그에 기꺼이 복종합니다."


- 류동민, 위의 책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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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돈을 낳는 세상에서, 부가가치의 원천은 사람이 아니라 돈으로 여겨진다. 사람의 가치는 점점 희미해진다. (p268) … 사람은 믿지 않고 돈만 믿는다. 자기에 대한 믿음(자신감)이 상실될수록 돈에 매달린다. 그러나 그 간극이 커질수록 경제와 사회는 위태로워진다. 사회에 신뢰의 토대가 부실한 상황에서 돈을 향한 맹신과 질주는 무서운 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역사 속에서 간간히 터지는 금융위기는 근원적으로 그러한 불균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p51)


"인간과 관련된 근원적인 문제나 사상, 문화 등을 중심적으로 연구하는 학문"14이라 정의되고 있는 인문학이 진단한, 현 시대의 문제입니다. 뭐 별다른 게 있나요? --- 경제학이나 경영학, 또는 현대 첨단 과학이 지니고 있지 못한 특별한 통찰이나 가르침이 인문학에는 있을 것 같다는 뭐 그런, '인문학'이라는 단어에 대한 일종의 환상 혹은 경외와 같은 심리가 우리 사회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하여, 사회의 부분부분에 대한 '인문학으로 바라본~'의 접두어를 붙인 서적들이 한 때 유행했던 적도 있었었죠. 그렇게, 


특별히 새로운 지식이나 insight를 얻을 수 없는 독서였었습니다. '아! 이건 이전 어느 책에서 읽었었던 내용이고, 저건 그 때 그 책에서 읽었었던 건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부분이 나올 때마다, 나도 어느 정도 책 좀 읽었구나~라는 자뻑을 안겨주는 독서이기도 했네요. 허나 문제는 --- 이 감상문을 쓰며, '읽고 쓴다'라는 이전의 즐거움이, '읽었으니까 써야지'라는 의무감으로 변질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었다는 점입니다. 정말 억지로, 쥐어짜내듯 이 감상문을 써내가며 느꼈던 그런 감정들이 어쩌면... 이 책을 통해 제가 김찬호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또 하나의 가르침이 아닐까도 싶... --;;



 이전에 읽어본 저자의 책들 : 사회를 보는 논리」 · 「문화의 발견」 

 이 책의 내용을 담고 있는 더 멋있는 책 :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1. 조나단 B. 와이트,「애덤 스미스 구하기」중. 생각의 나무, 2010.
  2. "물자를 조달하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가족 성원들의 행복한 삶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한도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며, 결코 '획득의 기술'이 '가정의 행복'이라는 상위의 목적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 홍기빈,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중 p95, 책세상, 2001.
  3. 제가 대학 3학년 때 이 분께 '문화인류학' 수업을 들었었지요.
  4. 이에 대하여는 「죽은 경제학자들의 만찬」을 읽고 쓴 감상문의 초반부에 정리해 놓았습니다.
  5. "이렇게 불리게 된 것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사뮤엘슨(Samuelson)이 독일의 수학자 가우스(Gauss)가 수학을 ‘자연과학의 여왕’이라고 언급한 것을 참조하여 그렇게 칭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경제학이 여러 사회과학 학문 중에서 제일 먼저 과학적 방법론을 충실히 반영하였고 논리적 엄밀성이 가장 뛰어난 학문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 성병희,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제학의 반성"중, 대구일보, 2014.12.04.
  6. 박주영, 「고요한 밤의 눈」 p265, 다산책방, 2016.
  7. 이젠 '물질'로조차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죠. --- "How did we come to live in a world where most money is invisible, little more than numbers on a computer screen?",「The Ascent of Money」중 p1, The Penguin Press NY, 2008.
  8. "돈은 물질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미디어다. 개인과 세계를 묶어주는 사회 시스템이다. (p7) … 그것은 사회적인 차원에서 나와 타인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 중요한 기준과 토대가 된다." (pp28~29)
  9. 류동민, 위의 책 p68.
  10. "인간이 돈을 좋아하는 것은 그렇게 무엇인가 꼭 사고 싶어서만이 아니다. … 이제 소비는 사회적인 소통의 회로로서 작동하고 있다. 무엇을 얼마나 소비하는가에 따라 정체성이 규정된다"(pp248~249)
  11.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원하기 때문에 가치가 발생하는 것은 화폐의 핵심적인 속성" (p229)
  12. "화폐와 교환되었으므로, 즉 팔렸으므로 그것은 가치를 갖는 것으로 믿게 됩니다. 가치를 갖기 때문에 팔리는 것이 아니라 팔렸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 류동민, 위의 책 pp131-132.
  13. "화폐, 이는 곧 원하는 대상을 모조리 가져다주는 힘이었다." - 니얼 퍼거슨, 「금융의 지배」중 p25, 민음사, 2010.
  14.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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