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금융위기는 원가의 위기가 아니라 판매의 위기다. …… 한마디로 이 책은 실행을 위한 지침서와도 같다. …… '속성해법'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속성해법'이란 단기간에 신속하게 실행할 수 있고 그 결과도 단기간에 나타나는 해결책을 뜻한다. (pp 4~6)
건강을 지키려거든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하되, 의사의 행동은 따라하지 말라'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들었습니다. 특정 개인에 대한 견해가 아닌, 제 경험의 전반적/대체적인 결론 역시 딱히 위 말에 이의를 제기할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 비슷한, 말하자면 일종의 한계같은 것을 미리 예상하고 펼쳐든 책이었습니다만, 다 읽고 나니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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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와 관련된 해법은 신속하게 실행할 수 있어야 하고 단기간에 효과가 있어야 한다. 가격과 관련된 해법을 활용할 경우 대개는 신속하고 실행하고 단기간에 효과를 얻을 수 있다. (p131)
알지 못하고 있던 내용을 배운다라는 건 언제가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 알고는 있으나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해법'이라 조언 받는다면 참으로 답답하고, 스스로가 한심스럽게 느껴지는 자괴감만을 안게 되기도 하지요. 시작을 그렇게 해버렸다는 핑계로, '의사'와 관련된 지극히 단순화시킨 예를 들어보기로 하죠. (의사라는 직업에 무슨 악감정이 있는 건 절대 아닙니다.)
【 병에 대한 진단 】
간 검사를 받으러 대학 병원엘 갔다 하죠. 잠깐의 문진을 통해 의사는 제가 일주일에 몇 병의 소주와 맥주, 그 밖의 독주들을 마시는지 알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펼쳐 본 저의 간 수치에 대해 그/그녀는 '술 때문에 간이 안좋은 겁니다. 당장 술을 줄이셔야 하겠네요'라는 처방을 내려줄 수도 있을 겁니다. 제가 아주 무식한 사람이어, 왜 술을 마시는 게 간을 손상시키는지 모른다 하여도, '의사'라는 권위에 눌려 '술은 간에 좋지 않다'라는 믿음(!)을 갖게 되겠죠.
2007년에 시작되어 이후 악화일로를 걸어온 이번 위기는 원가의 위기가 아니라 판매나 매출과 관련된 위기다. 위기가 발생한 후 판매량과 매출이 충격적으로 폭락했다.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구매 자체를 거부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구매력이 갑자기 사라져버렸거나 가격이 터무니 없이 높아서 구매를 꺼리는 것이 아니다. … 일반 소비자와 기업 모두 구매를 꺼리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 이전의 불황과는 달리 이번 불황에는 소비자의 저축률이 높아지고 있다. 소비자가 과거에 비해 낮아진 소득을 저축으로 보충하려는 것이 아니라 투자 포트폴리오의 손실을 저축으로 메우고 있는 것도 한 가지 원인이다. (p19)
이 책이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의 경제 상황을 다루고 있다라는 시차의 문제도 무시할 순 없겠지만, 2018년 연말에 읽어보는 2017년에 출간되었던 <2018년 트렌드 예측>과 같은 류의 책을 읽어보면서 알게 되는 정오(正誤)의 시각으로 보자면, 위의 진단은 (물론 그 당시에도 충분히 추론가능한 사안이었지만 어쨌든) 옳은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 다시 생각해볼 수록 정말 대단한 소설이었던 에드윈 르페브르의 「금의 홍수」가 정확히 지적했었듯,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을 가장 두렵게 만드는 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입니다. 불확실성이라 해도 모두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겠죠. 아무 것도 잃지 않으면서 내 수중에 천만 원이 주어지느냐, 일억 원이 주어지느냐와 같은 불확실성은 (천만 원이 주어지면 어떡하나,와 같은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두려움의 대상은 아니니까요. 허나! 그와 같은 행복한 불확실성은 현실에선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불확실성은 내게 천만 원이 주어지느냐, 아니면 일억 원을 빼앗겨야 하느냐 같은 맥락이지요. 어쨌든!
자고로 '진단'이라는 것은 '처방'을 위한 사전 단계이어야 하지, 그 자체만으로도 환자의 심리 상태를 박살내버리는 진단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 생각합니다. 물론,
자동차 백미러의 수요는 자동차 수요와 직결된다. 소비자가 자동차를 사지 않으면 백미러를 팔 수 없다. 이런 수요는 본질적인 수요가 아니라 파생수요다. … 자동차 주문이 줄어들면 백미러 제조업체는 백미러를 팔 방법이 없다. … 사실 파생수요상품을 제조하는 업체로서는 판매 부진을 해결할 방법이 거의 없다. (pp 34~35)
세상 그 어떤 의사가 와도 동일한 비관적 진단을 내릴 수 밖에 없는 상황도 분명 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 병에 대한 처방 】
사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위기 자체가 아니라 위기를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방식이다. (p48)
의사의 진단 결과, 환자가 간암 초기 상태이다라는 결과가 나왔을 때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그 암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처방이지 진단의 정확성에 대한 의사의 자부심이라든가, 진단 결과로 인한 환자의 낙담 등이 아니겠지요.
-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오히려 제품의 안전성이 중시되고 우수한 품질이 중요해진다. … 원가압력에 굴복하여 제품의 품질을 낮추어서는 안 된다. (p100)
- 위기로 신규제품 시장이 무너지고 있다면 거기서 줄어든 매출을 일부나마 상쇄하기 위해 애프터 시장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 좋다. (p207) … 그동안의 누적판매량이
많은 업체라면 신제품 사업에 비해 서비스 사업이나 부품 사업이 위기나 불황의 영향을 적게 받는다. (p197)
- 기업들은 다양한 서비스를 제품가격에 포함시키고 고객이 서비스를 요구할 경우 따로 요금을 청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존의 패키지 요금에서 이런 서비스를 분리하고 세부
서비스에 독립적으로 요금을 부과하면 매출과 수익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p199)
- 묶음상품을 구매하는 고객은 각각의 상품을 따로 구매할 때보다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 묶음판매로 늘어난 판매량이 할인으로 줄어든 수익을 상쇄해주기 때문에 상품을
개별적으로 판매했을 때보다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pp 176~178)
그렇지 않아도 마침 지금 --- 저희 회사에서 시행하려 계획하고 있는 내용들도 여럿 보이더군요. 저희 스스로도 꽤 적절한 자가진단과 처방을 준비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반면에...
위기 시에 경영진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각각의 이익창출변수가 매출과 수익에 미치는 효과를 정확히 이해하고 수치화함으로써 과도한 가격인하 같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다. (p67)
아쉽게도, 제가 속해 있는 조직에는 위와 같은 계량화를 해낼 수 있는 데이터라든가 인적 자원이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간암 초기 상태라는 진단은 얻어내었거늘, 암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까지는 없다라는 것이죠.
"5월 9일, '이 상품의 작업에는 장갑 8개, 수건 13개를 사용했다'라고 기록했을 때 비로소 상품별 원가를 계산할 수 있다. 어느 상품의 작업에 사용했는지 일일이 기록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이것을 습관화하지 않으면 상품별 원가를 계산할 수 없다. 도요타 공장의 원가 관리는 반드시 '상품별, 부품별, 조별'로, 무엇을 얼마나 사용했는지 일일이 기록하고 분류하고 있다."
- 호리키리 도시오, 「도요타의 원가」 p52, 한국경제신문 한경BP. 2017.
위와 같은, 일견 간단해 보이는 데이터 수집도 제가 속해 있는 조직에서는 당장은 현실화되기 힘들다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자괴감이 이 책이 제게 준 선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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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제안하는 33개의 속성해법이 당신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고 위기와 싸우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p225)
각 챕터의 말미에 친절히 요약을 달아놓았다는 점이, 이 책을 추후에도 자주 펼쳐볼 확률을 크게 높여주었다라 생각합니다. 어쨌든 저자 스스로 밝히고 있듯, 이 책은 단지 '속성해법'의 제시를 목적으로 지니고 있기에 내용의 한계 또한 명확하기도 하지요. 이 책으로부터 얻은 '생각할 거리'들에 대해 앞으로 더 많은 공부를 해야하겠다라는 정도의 배움, --- 어렸을 적 길거리 약장수 아저씨로부터 들었던 기생충의 위협이 여전히 제게 남아 있듯, 문제의 심각성과 그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 내어야 한다라는 지적의 강렬함이, 제가 얻은 이 독서로부터의 배움이었었네요.
※ 참고할 만한 책 : 「도요타의 원가」, 「이익의 90%는 가격 결정이 좌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