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눈으로 인간 세상을 이야기했던 「걸리버 여행기」를 읽고, 그렇다면 '개'의 눈으로 본 인간 세상을 또 어떠할까라는 의문이 들어 이 얇은 소설을 펼쳤더랬습니다,라고 일견 말할 수 있겠으나 실은 --- 이래저래 심사가 복잡복잡한 요즈음이기에 두껍거나 어려운 책을 읽기가 너무 버거웠었다라는 게 좀 더 솔직하고 직접적인 이유였습니다. (그 누구도 저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책은 읽어야 한다라 강요하지 않았었거늘) 그같은 복잡복잡한 심사로 읽어낸 소설이어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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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짖는 개는 없다. (p110) …… 내가 사람의 아름다움에 홀려 있을 때도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모르고 있었다. (p124)
이 작품 속 주인공인 개 '보리'가 바라보는 인간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 세상을 살아가고/내고 있는 인간들은 그 아름다움을 알아채지 못한다라는, 그러하기에 그 아름다움을 사람들이 깨우쳐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짖는다'라, 이 소설은 설정되어 있지요.
나는 세상의 개들을 대신해서 짖기로 했다. 짖고 또 짖어서, 세상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눈부시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 … 인간이 인간의 아름다움을 알 때까지 나는 짖고 또 짖을 것이다. (p6)
보리(개)가 보기에 인간 세상은 그토록 아름답거늘, 왜 그 구성원들인 인간들은 그 세상의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제 생각에 작가는 그 이유를 예의 '상대성에 대한 인식'의 결여에서 찾고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같은 인식의 결여가 반드시 고의적이거나 의도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지요. 개가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것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삶이 아름답다라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 예의 그러한 인식의 결여가 개의 고의는 아니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아름답지 못한 것으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일말의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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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보니, 나는 개였고 수놈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기는 소나 닭이나 물고기나 사람도 다 마찬가지다. 태어나보니 돼지이고, 태어나보니 사람이고, 태어나보니 암놈이거나 수놈인 것이다. (p10) …… 나는 수컷으로 태어났으므로 수컷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가 원해서 그렇게 된 일은 아니었다. (p150)
아주 어렸을 적, 종원군이 그랬었죠. 하나님께 자기가 아빠랑 엄마의 아이로 태어나게 해달라 해서 태어났던 거라구. 그토록 좋았던, 그때엔 작았던 이 세상이, 고딩이 되어 있는 지금의 그에겐 너무도 버거워 보입니다. 세상의 변화란 게, 제 아무리 그 누구도 해보려 하지 않았던 작은 저항으로부터 시작된다 하여도 --- 현 교육 환경을 당장 개선해내라 교육부 장관에게 요청할 수도 없는 노릇이며, 그렇다고 이제와서, 왜 한국에 살고 있는 부모의 아이로 태어나게 해주셨냐라 하나님께 항의할 수도 없을 것이며, 부모를 바꿔버리겠어!라 할 수도 없음이 나름 답답하기도 하겠죠. 이건 뭐... 50대에 접어든 저에게도 여지없이 가시지 않는 고민이기도 합니다.
어제 낮, 오랫만에 만난 친구와 낮술을 하며 서로의 살이를 이야기했더랬습니다. 모든 것이 고민이고 딱히 즐거운 일이 생겨나지도 않는 이 살이가 --- 나에게만 그러한 것인가, 우리 나이의 남자들에게 그러한 것인가, 아님 대한민국에서 산다라는 게 이런 것인가 … 등등을 대입해보았으나, 그 어느 하나 정답이 될 수 없다라고, 왜 그런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우리의 살이라는 게 그냥 그러.하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엔 없었었지요. 물론,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저희를 향해 또 그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 하고 있다라거나, 그래도 너희는 행복한 거다란 일종의 비아냥을 건넬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배고파서 한 짓이 아니고, 맛있는 것이 먹고 싶어서 한 짓이 아니란 말이다. 이것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말해줄 수가 있었겠는가. 태어나보니 개이고, 태어나보니 사람인 것이다. (p22) …… 착하신 주인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 엄마를 마구 때려준 것도 다 눈치가 모자랐기 때문이야. 사람의 마음으로 개의 일을 판단했기 때문이지. (p29)
태어나보니 대한민국이었고, 태어나보니 지금 부모님의 자식이었던 것이고 … 지금 제 모습, 지금 제가 살아가고/내고 있는 삶의 시작이었었지요. 사람의 삶이란 게,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태어나 보니 개이고, 태어나보니 사람인 것'과 같은 한계마지 뛰어넘을 수는 없는 겁니다. "개들은 개 갈 길이 있는 거야"(p217)이란 할머니의 말씀은, 작가 김훈 역시 숙명론에 가까운 인생관을 피력하고 있어 보이죠. 제가 그렇듯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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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어찌 견딜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견딜 수 없다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pp182~183)
줄거리가 무엇인지,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저의 능력과 지금의 마음 상태로는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만, 위 두 문장만큼은 제 가슴 속에 콱~하고 박혔네요. 더 이상 낼 수 없는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건네어지는 '힘 내~'란 타인의 위로란 게 무척이나 잔인한 것이라 늘 생각해왔거늘, '그렇다고 해서, 견딜 수 없다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란 작가의 물음은 --- 잔인하나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조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원군에게 '견딜 수 없다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지금의 현실을 그저 받아들이고 승복하라,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할 겁니다. 그 대신 '사람의 마음으로 개의 일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것, 그렇게 고딩의 마음으로 고딩의 살이를 이해해보려 계속 노력해야 하는 부모된 자로서의 마음가짐 ---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고 남자로 태어났으며, 그렇게 한 생명의 부모가 되어 있는 제가, 역시나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고 남자로 태어났으며, 그렇게 한 생명의 부모가 될 지도 모를 나의 아이를 위해 감내해야 하는 또 하나의 피할 수 없는 조건이겠죠.
이 가을, 날씨는 참으로 좋거늘...
※ 읽어본 작가 김훈의 소설들 : 「남한산성」, 「칼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