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공장 - 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김중혁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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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피가 갑자기 많이 팔려서 시디나 음원 판매를 앞지르는 일은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예전처럼 많은 사람들이 엘피의 먼지를 닦으며 음악을 듣는 일도 없을 것이다. 꼭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고그게 옳은 것도 아니다하지만 …… (p172)


결혼하기 전, 아마도 대학원생 시절이었던 걸로 기억되는 어느 날 아침. 전날 마신 술로 깨질 듯 아픈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며 눈을 떠 일어나 앉자마자, 침대 옆 테이블위에 있던 초콜릿 한 개를 우걱우걱 먹고, 그땐 너무도 당당하게 그러했었듯 곧바로 담배를 한 대 피웠고, 담배의 필터에 초콜릿이 묻어 나오는 걸 보고는, 휴지로 닦으려 했거늘...


침대 머리맡에 놓여있던 크리넥스는 하필, 사용하지 않은 새 것이었고, 위의 뚜껑(?)을 뜯어내고 한 장의 휴지를 뽑아내려했건만 이게 당췌 --- 뽑아도 뽑아도 찢어지지 않은 온전한 한 장의 휴지가 나오질 않는 겁니다. 두 세장이 겹쳐진 채 계속 한 쪽은 찢어진 채로 나오고 막... 아, 정말 짜증나!!!


그건 아마도, 술에서 덜 깨었던, 게다가 니코틴의 영향으로 순간적으로나마 더욱 몽롱해진 제 육체적 상태로 인함이었을진데, 그 당시의 전 --- 기어이 크리넥스 고객 센터에 전화를 걸어 도대체 제품을 왜 이따구로 만드는 거냐, 첫 장을 손쉽게 뽑아낼 수 있게는 도무지 만들어볼 생각을 안 한 거냐 등, 잠시 전의 니코틴이 지난 밤의 알콜기에 완전히 동화되어 그나마 제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되었을 때까지 신나게 상담원을 몰아 붙였었지요. (그 때의 그 분께, 진심 담아 뒤늦은 사과 드립니다.)


​갑 티슈를 보며 시간을 생각한다. 아직 오지 않은, 닥치지 않은 가지런하게 쌓여 있는 시간들. 한 번 뽑히면 절대 되돌아갈 수 없다. (p46)


그렇더군요. 갑 티슈1에 대한 기억이란 게 있어, 그걸 굳이 말해/써내야 한다면, 결국 사과의 글로 마무리 되어져야만 하는 위와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저완 달리, --- "제대로 된 관찰자라도 되어야 겠다, 생각해"2라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역할/효용'에 딱 들어맞게, 작가 김중혁은 켜켜이 쌓여 있는 '갑' 속 휴지들을 우리의 미래와 연관지어 표현하고 있더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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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였더랬습니다. 2014년 9월 19일에 발간된 '초판 1쇄'의 이 책을, 그토록 오랫동안 묵혀 두었다가, 뜬금 없이(?) 이제와서야 꺼내들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 경제학을 공부했었었으나 사회 생활 내내 제조업에 내내 종사하고 있는, 그마저 소비재도 아닌 중간재나 기계류를 만들어 내는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는 제가 바라보는 '공장'이라는 것과, '제대로 된 관찰자'로서의 작가가 바라보는 '공장'은 과연 어떤 차이점을 갖고 있을까,란 궁금증 때문이었던거죠. 그리고 예의,  


지구본 공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자꾸만 우주를 생각하게 되고, 창조주를 생각하게 된다. 우주란 게 무엇인지, 우주 속의 티끌보다 작은 우리는 과연 누구인지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지구본을 들여다보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우리가 누군지. 여기서 살고 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지구본 속에 적힌 나라 이름과 도시의 이름이 무슨 소용인지. (p103)


지구본의 수요 추이는 어떠한지, 수요가 감속되고 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지, 이처럼 줄어가고 있는 매출과 관련하여 회사의 재무 부서는 어떠한 대응을 준비해야 할른지, (경쟁사가 있다면) 그 경쟁사를 이길 수 있는 우리만의 차별점은 무엇을 내세울 것인지, 시장 자체가 쇠퇴기에 있다면 어떤 컨셉의 대체품을 시장에 선보여야 할른지,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여 기존의 지구본의 기능을 지니면서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차별화된 새로운 기능을 넣어 시장의 범위를 확대할 가능성은 있을지 …… 


제가 만약 지구본을 생산하는 회사를 방문한다면, 대충 뭐 이런 기초적인 것들을 머리속에 담았었을텐데, --- '제조업 종사자'가 아닌 '작가'는, (뭐 위의 인용구가 맘에 든다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저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생각을 적어내고 있더군요. 이와 더불어, 


Viagra와 같은 발기 부전 치료제가 시판되기 시작했을 즈음의 콘돔 회사 매출은 그 전과 비교하여 명확한 차이점을 보였었을지, Viagra 류의 판매량과 콘돔 판매량 간에는 모종의 통계적 관계가 성립하고 있을지, 뭐 이런 것만이 <콘돔 공장 산책기>의 첫 장을 펼치며 들었었거늘, 


 콘돔의 발전은 … 무엇보다 물 샐 틈 없게 발전하고 있다. …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불량품 하나에 아이 한 명이다. (pp 36~38)


이 에세이로 처음 만나 본 작가 김중혁의, '기발함'이라는, 작가가 갖추고 있어야 한다라 생각하는 타입의 (저에겐 대체적으로는 별로였으나 종종은 저를 조금은 빵터지게 해준) 유머 코드를 만나볼 수도 있었었지요. 또한, 


어른이 되어서 된장찌개를 먹고 있으니 된장찌개가 아니라 시간을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든단다. 어쩌면 모든 식사란 시간을 먹는 일인지도 모르지. 그 음식을 만든 사람의 시간, 그 음식의 재료가 익어 온 시간, 그런 시간을 먹는 일인지도 모르지. (p78)


유독,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라 여겨지는 요즈음의 저에게, 그 '시간'이란 것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구절을 선사해주기도 합니다. 그렇게 --- 김중혁의 유머와 작가적 관찰은, 다음의 구절에서 한데 합쳐져 저의 과거와 제 아이의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다시금 바라보게 해주었지요. 


남자는 어머니가 사주는 팬티를 입다가 자신의 팬티를 직접 구입하면서 어른이 된다. … 데이트를 앞두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팬티를 고르며 어른이 되고,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팬티를 벗으며 어른이 된다. (pp 6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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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피가 끝까지 살아남아서 계속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가 뭐 잊고 있는 건 없는지, 너무 많은 걸 줄이고 압축하는 바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까지 줄인 것은 아닌지, 우리가 한 때 진심으로 사랑했던 음악을 무덤덤하게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질문을 던지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p172) 


이 감상문의 처음에 인용해 기록한 구절에 뒤이어지는 글입니다. 제조업 종사자로서 가졌던 궁금함으로 인해 펼쳐든 책은 결국 어쩔 수 없이 '부모'의 관점에서 작가의 글을 받아들이게 해주네요. 여전히 사랑하고 있으나, 그 사랑을 혹 잘못된 방식으로 내 아이에게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닌지, 내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내 아이를 '행복한 미래'로 이끌어 주어야 한다라는 강요의 이유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그 '행복한 미래'란 걸 혹 아이의 의견은 무시한 채 나만의 그림으로 그려낸 것은 아닌지, 무엇보다 --- 내 아이의 사랑은, 내 아이가 받아오는 성적표의 숫자에 따라 증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


어릴 때 좋아했던 3색 볼펜을 열심히 쓰고 있다. …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한 번에 하나씩이다. 3색이지만 세 개를 한꺼번에 사용할 수는 없다인간의 재능도 그런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p152)


  1. 전 '곽 티슈'라 불러왔고, 그것이 틀린 표기일 거란 생각은 한 번도 안해 봤거늘, 김중혁의 '갑 티슈'란 단어가 웬지 어색해 검색해 보니 --- "'곽'은 '물건을 담는 작은 상자'인 '갑'을 잘못 표기한 것입니다. 또 '각'을 사전에 찾으면 '각'이라는 단어들 중, 문의하신 경우에 적절하게 사용할 만한 단어가 없다고 판단됩니다. 따라서 굳이 이 말을 쓴다면 '곽 티슈'가 아닌 '갑 티슈'라고 써야할 것입니다"이라, 네이버 국어사전이 알려주네요.
  2. 박주영,「고요한 밤의 눈」중 p265, 다산책방,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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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싸움판에서는 고양이가 돼라 - 컬럼비아 비즈니스 스쿨의 전략 강의
레오나드 셔먼 지음, 강수혜 옮김 / 처음북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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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경영 전략'을 다루고 있는 책(을 제가 많이 읽어본 건 아니지만 어쨌든)치고는, 나름 위트있는 제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게다가 <슈렉2>에 등장했던 '장화신은 고양이'를 떠올리게 하는 (국내 판본) 표지의 사진 또한 이런 내용의 책에선 흔히 볼 수 없을 것 같은 귀여움을 갖고 있기도 하네요. 암튼! --- 저자가 설명하는 제목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개싸움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생각해보자. 개(회사)끼리 서로 영역을 지배하려고(시장점유율을 차지하려고) 긁고 할퀴면서 싸운다. 그런데 대부분 비슷한 전략(상품과 서비스)을 가지고 싸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영 용어로 말하자면, 이러한 상황은 보통 저성장, 적은 이익, 치열한 경쟁이라는 속성을 가진, 일용품화된 성숙한 시장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는 어떤 개(기업)도 무리에서 효과적으로 벗어나기가 어렵다. 비즈니스와 마찬가지로 개싸움판에서도 강한 플레이어가 일시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지만, 영역을 확보하려는 전투가 지속되면 보통 모든 전투원이 큰 타격을 받고, 새로운 전투에 참전하려는 잠재적 적군은 끊임없는 위협으로 남는다. 고양이는 완전히 종이 다른 동물이다. 이 고독하고 영리한 사냥꾼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게임의 규칙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재정의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승자가 없는 싸움판의 개들과는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 고양이는 민첩하고 혁신적이어서, 고양이가 먹이(개)를 찾는 전략을 개는 쉽게 따라하지 못한다. (pp12~13)


개와 고양이에 대한 위와 성격 묘사를 통해, 저자는 "(1)장기적으로 수익성 있게 성장하고 유지하는 것이 왜 그리 어려운가? (2)기업은 어떻게 해야 이를 달성할 수 있는가?"(p11)라는, 경영자가 당면하게 되는 두 가지의 기본 문제에 대한 해답을 함께 고민해보고, 그 해결의 일말을 제시해보겠다라1 이 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첨예한 경쟁이 지속되고 있는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에 개와 고양이의 character를 가져와 책의 제목을 삼은 것이, 마케팅 측면에서는 성공적이었겠으나, 사실 책의 내용과는 딱히 연관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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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산업별로, 또한 각 시대별로 기업의 최적 전략은 각기 다른 양태가 될 수 밖에 없겠습니다만2, 그러한 차이를 뛰어넘는, 일종의 '외적 타당성'3을 지닌 핵심적 내용으로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이른바) '성공의 열쇠'는 다음과 같습니다.


혁신적이고 의미 있게 차별화된 제품과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함으로써 기업은 적절한 가격에 고객을 유치하고 유지할 수 있으며, 한편으로는 경쟁자가 흉내내기 어려운 자신만의 사업 경험을 만든다. 이러한 성과가 바로 장기적으로 수익성 있는 성장의 필수 원동력이다. (pp13~14)


사뭇 허무하다랄 수도 있겠는, 뭐 대단히 새롭거나 깨닫기 어려운 제안은 결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왜, 이 뻔해 보이는 전략을 실행하지 못하는, 그리하여 ---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이란 이루기 어려운 모험으로 판명이 났다"(p409)와 같은 단언이 가능한 것일까요?   


"원가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예외를 두어서는 안 된다. 작업자별, 라인별로 소모되는 비용 등을 끝까지 철저하게 파악해야 한다. …… '5월 9일, 이 상품의 작업에는 장갑 8개, 수건 13개를 사용했다'라 기록했을 때 비로소 상품별 원가를 계산할 수 있다. 어느 상품의 작업에 사용했는지 일일이 기록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이것을 습관화하지 않으면 상품별 원가를 계산할 수 없다. 도요타 공장의 원가 관리는 반드시 '상품별, 부품별, 조별'로, 무엇을 얼마나 사용했는지 일일이 기록하고 분류하고 있다."


- 호리키리 도시오,「도요타의 원가」pp52~54, 한국경제신문, 2017.


위와 같은 원가 관리가 교과서적이고 옳은 것이라는 건 누구나 다 동의하는 사실이겠으나, 이를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느냐그러한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 또한 별개의 차원이라는 것에도 또한 누구나 다 동의하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의 저자 레오나드 셔먼 교수 역시, 자신이 제시하고 있는 '성공의 열쇠'란 해결책의 내용을, 기업은 (개략적이든 상세하게든) 알고는 있다고, 그러나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기에, --- 그래서 이 책을 썼다라 소개하고 있습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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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도 망하고 기업도 망하는데, 절대로 망할 것 같지 않은 집단이 있다. 종교집단이다.5 … 기업도 망하고, 나라도 망하는데, 왜 종교는 망하지 않는 것일까?"


- 김상근, "불멸의 조직 만드는 5가지 비법, 수천 년 지속된 종교에서 배우다", DBR, July 2016, No.205.


종교의 강한 생명력에서 기업 경영에의 insight를 얻어보자는 내용의, 너무도 흥미롭게 읽었던 article이었습니다. 위 글에서 저자는 종교의 끈질긴(?) 생명력을 가능케 하는 요인을 다음의 다섯 가지를 꼽고 있지요. 이 중 특히 1번과 3번은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바와 너무도 정확하게 일치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1. 종교는 '궁극적인 관심(ultimate concern)'을 추구한다.

2. 종교는 강력한 소속감을 제공한다.

3. 종교는 늘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개혁된다.

4. 종교는 지역문화에 반드시 토착화된다.

5. 종교는 이타적 삶을 추구하게 만든다.



【 궁극적인 관심 】 


"종교는 궁극적인 관심을 추구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망하지 않았다. 종교는 … 신봉자들에게 궁극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 것을 요구한다. 세속의 가치를 버리고 성스러운 가치를 추구하란 것이다."


- 김상근, 위 article


김상근 교수가 말하는 '세속의 가치'를 현대 비즈니스의 측면에서 보자면 '주주가치 극대화(Maximizing Shareholder Value, MSV)'와 가장 유사한 개념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 레오나드 셔먼 교수는 "주주가치 창출이 효과적인 비즈니스 전략의 결과가 되야지 원동력이 되어서는 안된다"(p121)라는 표현으로, 단기적 재무 성과에 좌우되는 경영 행태의 문제점을 꼬집고 있습니다.6 그러면서, --- (3장의 제목이기도 한) "우리는 왜 사업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저자는 피터 드러커가 내린 다음의 정의(definition)를 소개하고 있지요. 


비즈니스의 목적에는 단 하나의 유효한 정의만 존재한다. 그것은 수익성 있게, 만족하는 고객을 창출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p119)


종교가 추구하고 있는 '궁극적인 가치'란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곧 "고객중심적 기업의 목적"(p119)인 것이며, 그러한 목적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전 직원이 공유하여7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수익성 있는 성장의 첫 걸음이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장기간 수익성 있는 성장이라는 최상의 실적을 쌓은 기업은 고객 중심의 핵심 사명에 따라 효과적인 전략을 이행함으로써 고객, 직원, 납품업체, 주주, 그리고 사업이 운영되는 영역 내의 더 넓은 공동체 등 모든 이해당사자의 가치를 창출해 이러한 결과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러므로 적절한 기업 사명은 비즈니스의 성배를 얻는 합리적인 출발점이다. (pp414~415)     



【 지속적, 무엇보다 올바른 혁신 】 


지난 40년 동안 비즈니스 전략 사고가 진화한 것에서 배울 첫 번째 전략 방향은 지속적 혁신을 끈질기게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p36)


역시나, 별 새로울 것 없는 명제인 듯 보입니다. 뭐, 경영학이란 학문의 구성이 본래 그러하기 때문이라8 할 수도 있겠지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옛 경구나 '변하지 않은 단 한가지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것'과 같은 (출처는 알 수 없는) 멋진 말은 예의, 요즈음의 경영학계에서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 합니다.  


정교한 분석으로 경영을 효율화하는 만고불변의 보편적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경영진이 받아들여야 하는 만고불변의 진실은, 변화하는 환경을 예측하고 대응하려면 자신의 비즈니스 전략을 끊임없이 조정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효과적인 비즈니스 전략은 태생적으로 동적일 수밖에 없다. (p28)


이처럼 '지속적 혁신'의 필요성은 굳이 별도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을만큼 자명하고 쉽사리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 "크고 오래된 건물이 불안정한 기반에서 흔들리고 있을 때 꼭대기층만 계속해서 수리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건물을 철거하고 새롭고 단단한 기반 위에 다시 짓는 편이 낫다"(p195)와 같은, 그 누구나 같은 선택지를 고를 것만 같은 상황에서, 적지 않은 기업들이 건물의 철거 대신 꼭대기층만을 수리하는 '잘못된 혁신'을 추구한다라는9 저자의 지적은, 사뭇 너무도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실행하지 못/않고 있는 기업의 현실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블록버스터와 시어스, 코닥, 노키아, 보더스와 같은 기업은 확실히 업계를 위협할 파괴적인 기술을 알고 있었으며 비즈니스를 재위치할 원천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기업은 미온적으로 대응했다가 결국 심각한 추락이나 파산에 이르게 됐다. … 이 기업은 모두 하락세를 타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제품을 개선하는 일에 투자하고, 비용과 가격을 절감하고, 기존 제품을 마케팅하는 등 사업을 적극적으로 계획하고 경영했다. 이는 하락세를 타는 비즈니스 리더의 일반적인 대응이다. 그들의 최우선 과제는 시장에서 가치 창조의 기초를 다시금 생각해보는 것이 아니라 위협받고 있는 조직을 지키는 작업이 되곤 한다. (pp178~179)


그러니까 --- 쇠락해가는 기업의 경영자가, 기업의 쇠락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기에 결과적으로 파산에 이르게 된 것이 아닌, 그들 나름대로도 그 쇠락을 막아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기는 했었다는 겁니다. 단지 그들의 노력이 끝내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것은 간단히 말해, '헛힘'을 썼기 때문일 뿐.10


(과거와 현재의 연구 결과들을 아울러 종합하여) 저자가 제시하는 '올바른 노력'에 대한 가장 적절하고 간결한 설명은 다음의 문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혁신적 기업이 니즈를 제대로 충족하지 못한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기회를 포착한 이유는 제품 카테고리에 만연한 고정관념과 산업의 관행을 재구성하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소구점11(appealing point)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p39)


뭔가 안되는, 될 가능성이 없는 일에 매달려 헛힘을 쓰는 것이 아닌, --- 새로운 수익 가능성을 찾는 노력을 하고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기업이라야 '지속적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다라는 것이죠. 이러한 고정관념의 타파와 새로운 소구점의 창출을 통한 '의미 있는 차별화' 성공의 예로, 저자는 스와치(SWATCH) 브랜드를 들고 있습니다. 


전략의 중심에 의미 있는 차별화를 두어야 한다는 말은 낯선 길로 가야 한다는 뜻이다. … 스와치는 단지 저가 시장에서 경쟁한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바라보는 제품의 인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 스와치 제품은 시계라기보다 패션 악세서리로 범위를 넓히며 다시금 자리를 잡았다. (pp204~205)12


한편, 책 속에는 이같은 '차별화'가 지나치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도 실려 있습니다.13 이 책의 관점과는 약간 다른 듯 한, '브랜드 매니지먼트'의 관점에서도 또한 같은 내용의 주장을, 허나 얼핏 정반대로 보일 수 있을 결론으로 마무리되는 듯한 article도 있더군요. 경영학, 접해볼 수록 참 흥미로운 분야라는...


"경쟁 제품과의 차별성을 강조해야만 효과적이고, 같은 장점을 강조하면 손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 만약 어떤 기업도 어떤 속성에서 명백한 이점을 갖고 있지 않다면, 두 회사 모두 같은 특성을 강조하는 것에서 균형점이 형성된다."14


- Yi Zhu, Anthony Dukes, "When it's smart to copy your competitor's brand promise", HBR.K, June 20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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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혁신적이고 의미 있게 차별화된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적합한 가격에 만족한 고객을 유치하고 유지할 수 있는 반면, 경쟁사에게는 제품 및 실행 방식을 따라 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것이 바로 장기간 수익성 있게 성장하는 핵심 동력이다. (p421)


432페이지에 달하는 본문에서 내내, 저자가 강조하고 또 반복해서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은 다음의 그림 한 장 속에 모두 담겨져 있지요.  


 


이렇게 그림만 보아서는 예의 당연한 말들의 나열같으나, 이 책 모두를 읽고나면 이러한 전략 수립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왜 수많은 기업들이 이 당연해 보이는 전략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 1장부터 12장까지 다 읽고, 다시 1장과 12장으로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기존의 경영학 이론들을 정리해 놓은 이 책을, 또 다시 정리해 놓은 1장과 12장을 재독하노라면, 쭈욱 읽어왔던 본문의 내용들이 모두 다, 또한 새롭게 다가오더군요. 그렇게, 


기업 경영에, 경영학이라는 학문적 성과로부터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정말로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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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월 부락'에서 태어나서 하얀 달만 보면 고향을 생각하는 도시 사람. 동생은 빈티 난다고 하는 빈티지 패션을 좋아함. 미각은 없지만 먹는 걸 좋아함. 순박해 보이는 외모와 풀린 눈으로 사람들을 무장해제시키는 능력이 있음. 그림 그리는 것으로 좋아해서 종종 그리는데 문제는 '나'밖에 못 그림. 분명한 건 마감 있는 일을 했을 때 그나마 가장 생산성이 높은 사람" 


책의 겉표지 안쪽에 있는, 옮긴이에 대한 소개글입니다. 추측컨데, 옮긴이 스스로가 쓴 자기 소개의 글이 아닐까 싶지요. 쓰기를 누가 썼느냐는 그렇다 칩시다. 도대체 이 소개의 글이, 16,800원의 돈과 시간을 투자하여 이 책을 사서 읽는 사람에게 어떠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일까요? 개인 강수혜씨에 대해 관심이 있어 이 책을 구입하고 읽는 독자가 과연 있기나 할까요? 


옮긴이의 소개글부터 엇나간 이 책은 예의, 번역 또한 수준 이하입니다. --- 마이클 포터의 '5 Forces Model'은 그냥 '5 Forces 모델' 혹은 '다섯 가지 요인'정도로 번역/소개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저처럼 몇 권 되지도 않는 경영학 개론서를 읽어 본 사람도 알고 있는 이 '용어'를 저자는 자신만만하게 "다섯 가지 세력 이론"(p8)으로 번역해 놓으셨더군요. Amazon CEO인 Jeffrey Preston Bezos의 번역 또한 제프 '벤조스'와 제프 '베조스'를 섞어 사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한국어 문장에의 이해가 갸웃한 부분은 더할 나위 없이 많지요. 게다가, 


옮긴이만 이런 것이 아니라 편집부의 실수 또한 그냥 넘어가기에는 꽤 심각합니다. 우선 목차에서부터 '7장' 대신 '1장'이라 표기되어 있는 건 걍 귀여운 수준이라 여긴다 하여도 --- p18에 있는 BCG matrix와 p34 그림에 있는 세로축의 '높음/낮음'이 모두 반대로 표기되어 있는 것 등은, '이론 theory'을 소개하는 책에서는 있어서는 안 될, 독자에 대한 심각한 결례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 좋게좋게 생각해서 --- 대충대충 읽지 말고 스스로 해석하고 고민하여 읽어가라,라는 의미의, 출판사에거 고의로 파놓은 함정이라 여기게 될만큼, 암튼 이 책, 상당히 괜찮은 책이긴 합니다. 



※ 읽어본, 기업 경영과 관련된 책들  

-「도요타의 원가

-「일본전산 이야기

-「디테일의 힘·「디테일의 힘 2

-이익의 90%는 가격 결정이 좌우한다

-「승리하는 기업

-「하마터면 회계를 모르고 일할 뻔 했다!

 







  1. 저자의 독창적이 주장이 담겨져 있다라기 보다는, 그간의 발표문들을 종합하여 정리해 주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합니다.
  2. "경영 현상의 변화에 따라 이론들도 끊임없이 수정돼야 한다." --- 이동현, "기존 가치, 인력, 시스템 모두 바꿔야 블루오션 개척 성공한다", HBR.K, March 2015.
  3. "특정한 인과효과 추정치가 그것을 도출한 연구에서 대표하는 수준을 넘어서 다른 시간, 다른 장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예측력을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는 외적 타당성(external validity)이라고 부른다." - 조슈아 앵그리스트 · 예른 슈테펜 피슈케,「고수들의 계량경제학」p114, 시그마프레스, 2017.
  4. "얼핏 보기에는 이러한 처방이 매우 상식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기업이 실제로 이 세 가지 전략 방향을 자사 사업전략의 토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매우 어렵고 드물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목적은 왜 그러한지,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찾는 데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p14)
  5. "보편종교(universal religion)라 불리는 세계 5대 종교, 즉 그리스도교, 불교, 유고, 힌두교, 이슬람"
  6. 경영자들이 단기적 재무 성과에 매달리는 것이 그들의 이기심 등 때문만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들을 평가하는 외부인들이 지닌 잣대가 그러하기에, 경영자들이 그렇게 대응하는 측면도 분명 있겠지요. ---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Therefore, by their fruits you will know them." (마태복음 7장 20절)
  7. "기업 내 모든 직원은 만족하는 고객을 유치하고 유지해 전반적인 이익과 매출성장률, 주주가치를 끌어올리는 방법과 그에 기여할 수 있는, 자신들의 활동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직원들이 자신이 하는 매일의 활동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마 비효율적으로 일하고 있거나 경영 전략에 관련해서는 거의 소통하지 않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두 경우 모두이거나."(p124)
  8. "경영학은 심리학, 철학, 사회학, 경제학과 같은 전통적인 학문의 주식에 불과합니다." - 강민호,「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p83, 와이비, 2017.
  9. "대부분의 경영자들이 가진 멘탈모델은 소위 레드오션 시장에서 학습한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블루오션 전략을 고민할 때 리더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 이동현, 위 article.
  10.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지 않기 위한 방법은 현재의 시장 주도기업의 하락을 앞당길 뿐이다" (p423)
  11. "사용 편의나 만족감 등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일으키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특징" - 네이버 어학사전
  12. "블루오션 전략은 이미 알려진 시장, 현존하는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집착하지 않고 미개척 시장,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데 초점을 둔다. 따라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기존 고객 외에 '비고객 non-customer'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비고객이란 소비자 중에서 특정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지 않는 계층을 의미하는데 블루오션 관점에서 보면 거대한 잠재수요를 뜻한다." --- 이동현, 위 article.
  13. "너무 많은 소비재 카테고리에서 생산자가 경쟁우위를 차지하려고 다투고 끊임없이 서로 부질없는 차별화 포인트를 모방한 결과 카테고리 전체가 의미 있는 차별화를 상실했다" (pp36~37) …… ​"과도한 제품 증가는 … 기업의 판매를 하락 시킨다. … 선택권이 과도하게 많을 때, 고객은 오히려 구매 자체를 그만 두는 반응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 지나친 선택권이나 정보는 쓸모가 없을 수도 있다."(p270)
  14. "시장을 세분화해서 틈새시장을 찾는 것은 역량이 부족하거나 경쟁이 치열할 때 유용한 전략이될 수 있다. 하지만 성숙시장에서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고민해봐야 한다. 오히려 일부 마케팅 연구에서는 성숙시장에서 지나친 세분화는 차별화에 큰 효과가 없다고 한다. 하버드대 문영미 교수가 출간한「디퍼런트」에 따르면 성숙시장에서는 주어진 카테고리에서 시장세분화에 집착하기보다 새로운 카테고리를 개발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 이동현, 위 article.
  15. HBR.K의 'idea watch'라는 섹션에 실린, 자신들의 논문에 대한 간략한 소개 정도로 그치는 것 같은 짧은 글인데, 대략 Hotelling's linear city model과 유사한 내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공부해보고 싶은 내용들은 이렇게 많아지기만 하고, 시간은 점점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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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딱지 대장 버티 1 - 지렁이 편 코딱지 대장 버티 1
데이비드 로버츠 그림, 앨런 맥도널드 글, 고정아 옮김 / 아이들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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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애정으로 자라지 규칙으로 자라지 않으며금기에 의해 도덕성이 육성되지 않는다라는 것, 커갈수록 자율성을 더 주어야지 통제가 더 커져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이 아들이 내 아들이지, 부모의 마음 속에 있는 착하디 착하고 순종적인 수도원의 수련생이 내 아들은 아니라는 것을 중학생의 부모는 반드시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라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2015년 3월, 종원군이 중학생이 되던 때에 읽었던「중2병의 비밀」이라는 책을 읽고 쓴 감상문의 일부입니다. "여러가지 면에서 참 많이 배우고 깨닫게 되었었던, 그런 독서였었었네요"란 구절로 그 감상문을 마무리 지었었건만, --- 그로부터 4년 여가 지난 지금, 과연 그 때의 배움과 깨달음을 정녕 얼마나 현실에서 행하여 왔던가, 참담하도록 창피한 마음만 남아 있군요. 그런 의미에서, 


본 감상문은,

이전에 썼었던 내용의,

허나 그것들을 잊지 않고자 하는,

일종의 자기 다짐의 의미로다가 써보는 글입니다.


…………………………………………………………………… 


둘째 아이를 지금이라도 낳게 된다면, 첫째 종원군을 고딩 2년생이 될 때까지 키워오면서 켜켜이 쌓아놓았던 후회와 아쉬움들을 전부 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많은 부분 없애가며 양육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아주 가끔, 여전히 해보곤 합니다. 이 때의 '아쉬움'이란 건 아마도,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는다. 짧았기에 '좋은 시절'일 수 있는 것이다."


- 오기와라 히로시,「네 번째 빙하기」p33, 좋은생각, 2009.


너무도 귀여웠던, 하지만 되돌아 보면 '너무나 짧았었다'라고 밖에는 기억되지 않는 그 시절의 모습과 행동들에 대한 그리움, 내 아이에게 부모라는 존재만이 '의존할 수 있는 대상'의 전부 이었던, 역시나 되돌아 보니 짧기만 했던 것 같은 시간들에 대한 일종의 상실감 등 --- 예의, 종원군도 겪고 있으며 부모의 한 사람인 저도 겪고 있는, 고등학생임과 고등학생의 부모임이 안겨 주는, 참 지겹고 안쓰러운 현재의 시간들에 비하였을 때 '짧았었노라' 느껴지는 과거에 대한 반작용의 결과 쯤이 되겠지요. 한편!!!


지금의 내 아이를 보며 부모가 갖게 되는 '후회'라는 건, 어쩌면...

 

"부모님들 모두 도덕적으로 훌륭한 분들이고 그래서 자녀에게도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것. 그러다 보니 늘 잔소리가 많았고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잘못을 숨기기에 급급했고 그러다보니 거짓말이 늘었습니다. 혼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자라다가 크면서는 아예 대들게 됩니다."


- 김현수,「중2병의 비밀」p7, Denstory, 2015.


뭐랄까, 이미 확정된 완성품을 머리 속에 그려 놓고 분재를 가꾸는 이의 소망, 그러나 그 소망대로 자라나주지 않은 작은 나무 한 그루의 외양을 보며 속상해하고, 그러면서 과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그러다가 끝내 그 분재를 (애꿎게도) 분노의 대상으로 삼아 버리는 과정과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버티는 예절을 몰랐다. … 밥을 먹을 때는 몸을 뒤틀며 들썩거렸고, 또 입에 음식을 물고 말했다. 재채기를 하고, 쩝쩝거리고, 트림을 하고, 또 코도 팠다. "버티, 손수건을 써야지!", "식탁에 팔꿈치 괴지 마!" (1권, p41)


왜! --- 밥을 먹을 때는 몸을 뒤틀고 들썩거리면 안 되는 것인지, 왜 입에 음식을 물고 말하면 안 되는 것인지, 재채기와 트림은 그저 생리작용일 뿐인 건데, 콧구멍이 간지러워 코를 판 것 뿐인데, 도대체 왜, 이러한 행동들을 하는 것이 '예절을 몰랐다'라고 표현되어야 하는 건지에 대해 제기될 수도 있는 아이의 질문에, 솔직히 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라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로 천천히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때의 '예절'이란 건 어른들이 만든, 그러하기에 어쩌면 그것이 예절이다,라 생각하고 있는 어른들 사이에서만 서로가 필요로 하는 것일 수도 있다라는 것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로 천천히 읽으면서 가져보게 된 생각이기도 하구요. 이를 테면, 


(이것이 장점과 단점의 의미로 이해된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겠지만) 식당에서 2~3살 쯤 되는 아이가 음식을 먹을 때 거의 필연적으로 옷에 흘리게 되는 현상에 대해, 그렇게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자유를 아이에게 준 후, 옷을 통째로 갈아 입히는 부모가 있는 반면, (저희 부부를 비롯한, 제가 보아 온) 대부분의 부모들은 밥 한 톨이라도 아이 옷에 묻을까 전전긍긍해하며 아이의 자유를 구속하곤 하지요. 이에 대해 저는, --- 아이에게 그 자체로 자신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가의 여부, 좀 심하게 표현해 보자면, 특정 상대, 심지어는 불특정 다수들에게조차 내 아이를 하나의 '보기 좋은' 상품으로 선보이고 싶어하는 욕망의 유무 차이로부터 비롯된 결과가 아닐까 이해하게 됩니다. 


"버티, 그만 좀 해! … 그렇게 긁적이는 거 말이야. 개보다도 심하잖아", 

"어쩔 수 없어요. 가려우니까요." (2권, pp7~8)

                          ……

버티는 분명히 다 이야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어른들이 그렇듯이 아빠도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2권, p37)


자신의 상태를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아이의 의사도 채 듣지 않는 부모가, 자신의 상태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 줄 것이라 간주하기는 쉽지 않겠죠.


"어쩌면 가족이라는 존재는 더 많이더 자주 이해해야 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르지."


- 이꽃님,「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pp146~147, 문학동네, 2018.

 

이 구절을 읽고 느끼는 감정이라는 건, 내가 그렇게 이해받지 못했었음에 대한 불만이 아닌, 내가 그러하지 못했었음에 대한 반성이 되어야 할 꺼다,라는 점엔 대부분 동의하게 되면서도 실제로는, 내 가족의 다른 일원에게 나에게도 좀 이렇게 대해주라고~란 외양이 되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보게 되네요. 


버티는 어릴 때부터 쓰레기 청소부가 되기로 마음먹어 왔다. 주황색 웃웃을 입고, 커다란 장갑을 끼고, 무시무시한 용처럼 킁킁거리는 트럭을 운전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버티는 더럽고 냄새나고 끈적거리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일하고 싶었다. 버티는 쓰레기가 좋았다. 버티의 침대 밑에도 쓰레기가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온갖 끈, 사탕 막대, 고무줄, 사탕 포장지 등등 … 버티는 사람들이 이런 놀라운 것들을 쓰레기로 휙휙 버리는 것이 이상했다. (1권, p74)


물론! --- 이같은 버티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부모라면 도와주어야 한다라 말하는 건 아닙니다. 버티의 꿈이란 게, 자라가면서 변할 수도 있고, 아니면 제 스스로 "더럽고 냄새나고 끈적거리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일하"는 것의 애로점 등을 알게 되어 그 직업에 대한 판단을 바꿀 수도 있겠죠. 그러나,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쩌면 그 시간 동안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감정을 이해하려고 연습하는 시간일지도 …


- 이꽃님, 위의 책 p186.


내 아이보다는 당연히 나이를 훨씬 더 많이 먹은 부모이기에, 그 아이를 이 세상으로 불러낸 생물학적 작용을 결심한 것도1 바로 그 부모이기에 --- 버티가 가지고 있는 '현재'의 이상함을 부모는 이해하고, 왜 많은 사람들이 '온갖 끈, 사탕 막대, 고무졸, 사탕 포장지 등등'을 쓰레기로 생각하는지 설명, 혹은 아이 스스로 깨닫게 될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하겠지요.


……………………………………………………………………


출판사는 이 책을, 6~8세 아동을 위한 책이라 소개하고 있습니다만, 일견 --- 부모로서 자식이 생각하는 '좋은 것'을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을, 그리고 그 마음가짐을 대체 왜 가져야 하는지를 부모 스스로 깨닫도록 권면하고 있는 책으로 보아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미, 


둘째를 낳아 첫째를 키울 때의 '후회와 아쉬움'들을 만회하고픈,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러하지 못할 것이 거의 확실한 저같은 부모 뿐만 아니라, 어쩌면! --- 바로 지금, 그와 같은 '후회와 아쉬움'들을 남기지 않을 수 있는, 어린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부모님들에게 가장 적합할, 단지 아이에게 읽어주고 선물해 주는 책이 아닌, 일종의 양육 지침서로 이 책을 권해보고 싶습니다. 


"자녀는 이해하는 것이 단지 인내심을 발휘해야만 하는 고달픈 과정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자녀를 이해하는 것은 나를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고, 나의 '부모됨'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고 요즘 시대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시대와 세대의 차이에서 오는 변화를 이해하기도 하는 종합 이해 세트입니다. 우리를 성숙하게 만드는 과정이지요."


- 김현수, 위의 책 p176.


·

·

·


이해해주고, 사랑만 해주고 싶습니다. 지금 날, 지금 우리를 힘들게 하는 가족 안의 그 누군가와도 언젠간 헤어지는 날이란 게 반드시 오게 마련이니까 말이죠... 


"우리는 아버지를 보고, 아내에게 키스를 하고, 어린 동생과 장난을 치지만, 언젠가 그런 일들을 하는 마지막 순간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히 모든 일에는 마지막 순간들이 있다."


- 조너선 트로퍼,「당신 없는 일주일」p215, 은행나무, 2012.



※ 부모 지침서라 말해도 될만한 책 한 권 :중2병의 비밀

※ 가족이란...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당신 없는 일주일







  1. "자녀는 우리에게 보낸 분은 신이고, 우리는 그 자녀가 멀리 잘 날아갈 수 있는 좋은 활이 되면 된다." - 김현수, 위의 책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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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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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이나 수치라는 감정에 의해 편집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음은 이기적이고 무자비하여, 우리 생각의 대부분은 있는 그대로 밖에 내놓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사람들은 우리의 생각에 상처를 받을 것이고 우리를 무정한 잡놈이라고 욕할 것이지만 실제로도 우린 그런 인간들이다. …… 단지 살균되고 희석된 생각의 흔적들만을 내놓을 뿐이다."


- 조너선 트로퍼,「당신 없는 일주일」pp187~188, 은행나무, 2012.


…………………………………………………………………………………………


작가로 십오 년 넘게 살아오는 동안 나는 다른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또 써왔다. …… 그래도 내가 가장 많이 쓰고자 했던 것은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걸 쓰지 않는다면 작가가 또 무엇을 쓴단 말인가? (pp 264~265) 


작가 이기호가 말하는 '고통받는 사람들'이란, 적어도 이 책「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이 담고 있는 일곱 편의 작품들 속에선, 타인이 아닌 화자 자신, 그러하기에 결국엔 읽는 이 스스로를 말하고 있다라 이해됩니다. 그리고 그 '고통'의 근원은 '부끄러움'이란 한 단어로 요약되어질 수 있지요. 또한,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모욕을 당할까봐 모욕을 먼저 느끼며 모욕을 되돌려 주는 삶에 대해서. 나는 그게 좀 서글프고, 부끄럽다. (p33) - <최미진은 어디로>


그 '부끄러움'이라는 것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닌, 본인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으)로부터 발현되는 것임을 알게될 때 느껴지는 또 다른 '부끄러움'에 대하여도 이야기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이렇게 춥고 뺨이 시린 밤, 누군가 나를 찾아온다면, 누군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그때 나는 그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그때도 나는 과연 그에게 손을 내밀 수 있을까? (p271) - <한정희와 나>


이러한 자문에 대한 소설 속 화자 (어쩌면 작가 자신1)의 대답은, 그리고 우리 모두의 대답은 아마도 ---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거고, 무서운 건 무서운 거(p67) …… 안타깝지만 성가신 것, 그것이 그때 내 솔직한 마음이었다"(p87) 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적어도 그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저의 1차적인 감정은 그와 거의 완벽하게 동일할 것이라고 자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전에 읽어 본 작가의 소설집,「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의 톤과는 확연하게 다른, 읽는 내내 무언가가 무겁게 제 마음을 내리누른다라는 느낌을 벗어버릴 수 없는 독서였었습니다. 비록 저의 이해가, 이 책 속 작품들이 말하는 고통의 주체는 타인이 아닌 독자 스스로라는 것 또한 어찌보면, 


"소설은 위안을 줄 수 없다.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 함께 느끼고 있다고, 우리는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써서 보여줄 뿐"


- 성석제,「투명인간」p370 (작가의 말), 창비, 2014.


작가가 써놓은 이 일곱 편의 작품들로부터 받는, 이상한 형태의 '동질감'이 아닐까,란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그러나 문득...


………………………………………………………………………………………… 


"자신의 아픔은 자신에게 있어서만 절대값이다." 


- 구병모,「위저드 베이커리」p163, 창비, 2009.


"소설은 위안을 줄 수 없다"란 성석제의 말이, 사실은 위 구병모의 선언과 사실은 똑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고, 그리하여, 


왜 어떤 사람은 수치를 느끼고, 또 어떤 사람은 염치를 생각하는지. 나는 지금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p167)  


내가 느끼는 감정이란 게 '수치'이건 '염치'이건을 떠나, 


 "옆자리를 나눈다는 행위는 그 자리가 비어 있다고만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 구병모,「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p164, 문학과지성사, 2015.


옆자리를 나눈다는 행위는 기실, 이미 나의 자리는 확보되어 있다라는 걸 전제로 한다라는, 그러하기에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의 근원은 어쩌면 내가 지니고 있지 못한 것, 그것이 물질이건 정신이건, 그것들에 대한 부러움에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되도 않는 자위를 해보게도 된다는...


 "부러움과 부끄러움은 다정한 오누이와 같다는 생각도 들고, 즉 부러운 게 있기 때문에 부끄러운 게 있는 것 같기도 했고..."


- 박민규,「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p66, 한겨레출판, 2003.



※ 읽어본, 작가 이기호의 다른 작품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 한 가지 주제로 엮어진 소설 모음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1. "소설 속 화자와 실제 작가는 분리해서 바라봐야 한다고, 그걸 구분해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마추어라고, 우리는 배웠다네. 하지만 실제론 그러지 않는다는 것을 자네도, 나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아마추어든 숙련된 독자든, 은근슬쩍 그 벽 너머를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지. 작가 또한 일부터 그 벽에 숭숭 구멍을 뚫어 살짝살짝 보여주기도 하고 …… 그러면서도 못 본 척, 서로 속고 속이고 눈감아주고 작품 볼 줄 안다, 상찬을 늘어놓는 거라네. 그것이 소설을 읽은 우리의 윤리적인 태도라네." (p309) - <이기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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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분석의 힘 - 그 많은 숫자들은 어떻게 전략이 되는가
이토 고이치로 지음, 전선영 옮김, 이학배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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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소개하는 데이터 분석법은 …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p15) ……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나서 '데이터 분석이 이렇게 재미있구나. 데이터 분석이 이렇게 유용하다면 좀 더 깊이 공부하고 싶다'란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p17)


어떤 현상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기 위한 기본적인 기법들과, 그 각각이 지닌 장점과 한계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앞서 읽었던「원인과 결과의 경제학」과 마찬가지로 --- (원인에 대한 분석을 하기에 앞서) '원인과 결과를 구분하는 것'이 왜, 그리고 얼마나 중요한가를 그야말로 '쉽고 지루하지 않게' 독자들에게 일깨워 주겠다라는 목표를 지극히 충실히 이루어내고 있다라 생각합니다. 


저 개인적 견해로는「원인과 결과의 경제학」을 읽은 후에, 이 책「데이터 분석의 힘」을 읽는 것이, 그 반대의 순서보다는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1 그 이유로, 두 책 사이의 차이를 굳이 짚어보자면 --- 다루고 있는 통계 기법의 범위는「원인과 결과의 경제학」이 좀 더 넓고 서술도 더 쉬우며, 특정 기법에 대한 설명과 제시되고 있는 사례에 대한 분석의 수준은 이 책「데이터 분석의 힘」이 좀 더 깊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선택은 당신의 몫!) 


…………………………………………………………………………………… 


이 책 역시,「원인과 결과의 경제학」과 마찬가지로, RCT (Randomized Controlled Test, 랜덤화 비교 시험)을, 인과관계 분석에 대한 설명의 출발점으로 하고 있습니다. RCT의 결과에 대하여,「원인과 결과의 경제학」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라는 것에 대한 매우 간단한 설명을 곁들이고 있는 것에 비해, 이 책은


RCT를 실시할 때는 기술통계의 밸런트 체크(기술통계의 평균값이 개입집단과 비교집단 간에 비슷한 값을 보이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를 해야 한다. 평균값에 큰 차이가 있다면 집단이 무작위로 적절하게 나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평균값의 차를 통계적으로 검증할 때는 값의 크기만 보는 것이 아니라 '평균값의 차는 통계적으로 0인가'도 테스트해야 한다. 그때 유용한 것이 표준오차다. (pp65~67)


(뭐 거기서 거기이겠지만 어쨌든) 약간이나마라도 분필 냄새 나는 설명을 곁들이고 있지요. 거기에 더해, 


데이터 분석이라고 하면 기존 데이터를 분석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RCT는 '문제의 답을 얻기 위해 데이터를 만들어간다' (p98)  


라는, 지극히 단순하지만 RCT의 핵심적인 내용을 이처럼 명확하게 집어주고 있다라는 점도 적잖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물론, 이러한 입문서를 읽음으로 인해 책 속에 소개되고 있는 여러 통계 기법의 사용이 가능해지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 반드시 수리적 배경에 대한 공부와 통계 패키지의 활용 능력이 함께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 대중을 상대로한 입문서 】 


필자가 연구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게 해준 것은 고등학교 시절에 만난 어떤 입문서였다. (p224) 


예의 이 책은,「원인과 결과의 경제학」과 마찬가지로, 특정 집단이 아닌 일단 대중을 대상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비록 이러한 책들을 읽는다/공부한다 하여 당장 어떠한 skill의 습득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여도, '인과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제고, 더 나아가 --- 관련 분야에 대한 흥미를 갖게 해주고, 한층 더 심화된 학습/공부를 이끌어 낼 수 있다라는 점에 가장 큰 의의가 있다라 생각합니다. 즉, 


인과관계 분석이라는 지식의 습득에 그치는 것이 아닌, 현재 이후부터의 미래엔 더 많은 사람들이 더 깊이 있게 인과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될 것이라는 점, 그럼으로써 사회 전체가 보다 합리적인 논쟁을 펼치게 될 수 있다라는 것이죠. 그렇게 된다면, 


RCT는 데이터에 근거한 과학적인 증거를 제공해준다는 의미에서 정책 입안에 매우 유효한 수단이다. 요즘은 전 세계에서 증거에 기반해 정책을 수립하는 흐름이 거세지고 있다. (p202) 


불필요한 이데올로기 논쟁으로 인한 사회적 낭비 / 혼란 등의 극복을 보다 쉽게 이루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예를 들어 --- 기본적으로 애매모호한 개념일 수 밖에 없는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목표의 수단으로, 게다가 도대체 왜! 그것이 필요한지에 대한 아무런 설득력 있는 설명도 내놓지 않는 채 마치 그것이 절대 선()인 양 들이미는 정치 논리는 결국 "데이터에 근거한 정책 수립 같은 건 필요 없고~"와 다름 없는 '예타 면제'라는 정책을 실행함으로써, 그 선물을 받지 못한 지역들의 거센 반발만을 초래하고 말았죠.  


원래 '예비 타당성 분석'이라는 것 자체가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 없는, 일정 부분 연구자의 주관적 변수 배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3자를 통한'이라는 전제 조건의 충족 여부를 떠나) 최소한의 객관적 검증이라도 해보자는 것이 '예비 타당성 분석'이겠거늘, 일단 그것마저 생략한다라는 걸, 정치적 의도를 제외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솔직히 전 모르겠습니다.  


데이터를 분석할 때는 과정과 결과가 투명해서 분석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p73) 


혹시라도, 과정과 결과의 투명함에 자신이 없기에 그같은 결정이 내려진 것은 아니겠느냐,란 의심을 가지는 이에게, '예타 면제' 정책의 결정권자는 과연 어떤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지, 사뭇 궁금하기도 하네요. 


"인과관계를 검증하지 않고 언뜻 효과 있어 보이는 정책을 무턱대고 실시한다면 국민들에게 큰 위험 부담을 안기게 된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카무로 마키코 · 쓰가와 유스케,「원인과 결과의 경제학」p115, 리더스북,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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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로 이루어진 실험의 결과가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실제 정책 개입과 같은 결과를 낳을지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 통상의 소규모 RCT에서는 개입이 실험에 내재된 변수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여겨진다. …… 그러나 실제 정책으로 광범위하게 개입이 이루어지면 예상치 못했던 변수도 영향을 받게 된다. (pp 220~222)  


「원인과 결과의 경제학」에서, '외적 타당성'이 강조되고 있었었다면, 이 책은 '내적 타당성'의 섣부른 확장에 대한 경고를 추가하고 있습니다. 이게 비단 데이터 분석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겠지요. 우리의 일상에서도, 직장에서의 업무적 영역에서도 또한 반드시--- 인과관계의 확인, 내적 및 외적 타당성에의 검토가 병행되어야 한다라는 것이, 이 책이 대중들에게 선사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의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데이터 분석'에 대한 서적이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 (p8) - <감수 및 추천의 말> 중


이같은 조심성(?)만 지니고 있는 우리나라 학자의 의문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합니다.2 주목 받을 수 있을까를 염려하기보다는, 주목을 이끌어 내는 것이 (한창 학문에 매진하는 단계를 지난) 노학자의 역할이3 아닐른지... 


※ 이 책에 앞서/함께 읽기를 권하여 보는 책 : 원인과 결과의 경제학 




  1. 이 의견은 결코 두 책에 대한 우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입문자들에게 이 두 권의 책 모두가 매우 유용하다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2. 이같은 우리나라 학자들의 조심성 때문일까요? 통계학 지식의 refreshing을 위하여 제가 요즘 읽은 세 권의 책 모두, 일본 학자들의 저작이네요.
  3. 저 개인적으로는, 정년 즈음의 교수님들은 그간의 경험을 살려 <경제원론>같은 개론 과목을 보다 광범위한 시각으로 강의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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