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이나 수치라는 감정에 의해 편집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음은 이기적이고 무자비하여, 우리 생각의 대부분은 있는 그대로 밖에 내놓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사람들은 우리의 생각에 상처를 받을 것이고 우리를 무정한 잡놈이라고 욕할 것이지만 실제로도 우린 그런 인간들이다. …… 단지 살균되고 희석된 생각의 흔적들만을 내놓을 뿐이다."
- 조너선 트로퍼,「당신 없는 일주일」pp187~188, 은행나무,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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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 십오 년 넘게 살아오는 동안 나는 다른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또 써왔다. …… 그래도 내가 가장 많이 쓰고자 했던 것은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걸 쓰지 않는다면 작가가 또 무엇을 쓴단 말인가? (pp 264~265)
작가 이기호가 말하는 '고통받는 사람들'이란, 적어도 이 책「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이 담고 있는 일곱 편의 작품들 속에선, 타인이 아닌 화자 자신, 그러하기에 결국엔 읽는 이 스스로를 말하고 있다라 이해됩니다. 그리고 그 '고통'의 근원은 '부끄러움'이란 한 단어로 요약되어질 수 있지요. 또한,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모욕을 당할까봐 모욕을 먼저 느끼며 모욕을 되돌려 주는 삶에 대해서. 나는 그게 좀 서글프고, 부끄럽다. (p33) - <최미진은 어디로>
그 '부끄러움'이라는 것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닌, 본인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으)로부터 발현되는 것임을 알게될 때 느껴지는 또 다른 '부끄러움'에 대하여도 이야기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이렇게 춥고 뺨이 시린 밤, 누군가 나를 찾아온다면, 누군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그때 나는 그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그때도 나는 과연 그에게 손을 내밀 수 있을까? (p271) - <한정희와 나>
이러한 자문에 대한 소설 속 화자 (어쩌면 작가 자신)의 대답은, 그리고 우리 모두의 대답은 아마도 ---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거고, 무서운 건 무서운 거(p67) …… 안타깝지만 성가신 것, 그것이 그때 내 솔직한 마음이었다"(p87) 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적어도 그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저의 1차적인 감정은 그와 거의 완벽하게 동일할 것이라고 자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전에 읽어 본 작가의 소설집,「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의 톤과는 확연하게 다른, 읽는 내내 무언가가 무겁게 제 마음을 내리누른다라는 느낌을 벗어버릴 수 없는 독서였었습니다. 비록 저의 이해가, 이 책 속 작품들이 말하는 고통의 주체는 타인이 아닌 독자 스스로라는 것 또한 어찌보면,
"소설은 위안을 줄 수 없다.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 함께 느끼고 있다고, 우리는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써서 보여줄 뿐"
- 성석제,「투명인간」p370 (작가의 말), 창비, 2014.
작가가 써놓은 이 일곱 편의 작품들로부터 받는, 이상한 형태의 '동질감'이 아닐까,란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그러나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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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아픔은 자신에게 있어서만 절대값이다."
- 구병모,「위저드 베이커리」p163, 창비, 2009.
"소설은 위안을 줄 수 없다"란 성석제의 말이, 사실은 위 구병모의 선언과 사실은 똑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고, 그리하여,
왜 어떤 사람은 수치를 느끼고, 또 어떤 사람은 염치를 생각하는지. 나는 지금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p167)
내가 느끼는 감정이란 게 '수치'이건 '염치'이건을 떠나,
"옆자리를 나눈다는 행위는 그 자리가 비어 있다고만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 구병모,「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p164, 문학과지성사, 2015.
옆자리를 나눈다는 행위는 기실, 이미 나의 자리는 확보되어 있다라는 걸 전제로 한다라는, 그러하기에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의 근원은 어쩌면 내가 지니고 있지 못한 것, 그것이 물질이건 정신이건, 그것들에 대한 부러움에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되도 않는 자위를 해보게도 된다는...
"부러움과 부끄러움은 다정한 오누이와 같다는 생각도 들고, 즉 부러운 게 있기 때문에 부끄러운 게 있는 것 같기도 했고..."
- 박민규,「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p66, 한겨레출판, 2003.
※ 읽어본, 작가 이기호의 다른 작품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 한 가지 주제로 엮어진 소설 모음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