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묘한 추리수법에 대한 흥미는 별로다. 그럼에도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는 범죄행동을 들여다보며 인간의 다양한 성정을 (간접)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살인과 같은 용서못할(이라고 간주되는) 행위에까지 이르게 되는 동기는, 대개 뻔하지만 (돈, 질투 같은) 그렇기 때문에 공감가능하다. 그런데 여기, 어이없는 살인동기를 가진 자가 있다. 치명적 병으로 인해 삶이 몇 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선고받은 후 남은 시간동안 뭔가 좋은 일을 하고자 악인을 살해하는 것. 독서의 유혹 정말 강렬하다. 소설의 시작은 이러하다. "'인명의 존엄성은 지나치게 과장되고 있다'는 말을, 구제할 길 없는 감상주의자들, 그것도 직업적인 감상가들에게 말하는 데는 얼마나 배짱이 필요한지 생각해 본 적 있소?"
즐거운 독서였다는 말에 덧붙여 가장 흥미로웠던 인물을 소개한다. 주인공의 주치의인데 소설의 앞부분에 잠깐 등장하는 게 다다. 어떤 인물인지 설명하는 것보다 말을 옮겨놓은 게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알려줄 것이다.
나는 죽음을 가볍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나는 또, 육체적인 면에서 현세라는 것은 지극히 괴로운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빨리 벗어날수록 좋다고 생각하지요. 죽어가는 사람을 동정하라는 것은, 감옥에서 자유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사람을 동정하라는 것과 같아요.
그런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당신을 가능한 한 오래 감옥에 가두어 둘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지요. 하지만 나는, 당신 같은 기회가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화를 내는 건 몸에 해로워요. 그게 무엇보다 중요한 겁니다. 격한 감정에 사로잡혀선 안 돼요. 안 그러면 당장 감옥에서 쫓겨나고 말아요. 단조롭기 짝이 없는 삶이지만 그 삶을 진심으로 연장시키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가능한 한 요양을 하세요. 알코올류는 절대 안됩니다. 담배도 끊으세요. 진심으로 말하지만, 내가 당신이라면 곧장 집에 돌아가서 덜컥 죽어 버리겠어요. 유언은 써 두었겠죠?
냉혹하다는 건 당치도 않은 얘기예요. 그건 당신의 어리석은 상식 때문입니다. 당신은 항상 상식을 만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요. 죽어가는 사람을 동정하는 것을 보통 사람들은 인정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예, 종교에서는 악당이 아닌 한 실제로는 살아있는 것보다 죽는 쪽이 훨씬 수지가 맞는다고 가르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내가 당신을 동정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당신을 부럽다고 말하는 나를 냉혹하다고 여기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