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말들 - 수많은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 배움을 위하여 문장 시리즈
설흔 지음 / 유유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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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설흔은 전업 작가의 길을 걷는 자다. 스스로 ‘공부를 못하는 아이’였다고 고백하는 그는 평생 공부하는 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우리 고전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이용휴, 정약용 등과 같은 인물의 글들을 소개하며 짧은 감상과 자신의 생각을 적었다. 우리 선조들의 책읽기와 공부에 관해 말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이어가는 설흔의 감칠맛 나는 글들은 평생 책을 놓지 않고 싶은 나에게 큰 도전이 된다.

 

이익은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책을 읽는 사람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p. 28)라고 말했다. 이는 조선시대 때 오직 과거 공부를 위한 독서를 경계하는 의미다. 오늘날 대학이나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만 공부하는 것에 진정한 공부인가를 돌아보게 하는 문장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익의 글이 의도하는 바를 분명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무엇을 얻기 위해 하는 독서나 공부가 꼭 나쁜 것은 아니라고 ‘딴지’를 건다.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부하는 것도 분명 무언가를 얻기 위한 공부이기 때문이다. 이익은 또 이런 말도 했다. “재상의 아들은 과거를 볼 수 없도록 한 것이 송나라의 제도였다.”(p. 124). 조선시대 때 송나라 금지 규정은 사라지고 과거시험은 명망가 자제들의 등용문으로 전락한 것에 대한 이익의 개탄이다. 오늘날 대학입학이 왜 공정해야 하는지, 직장취업에 왜 청탁이 없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 명의 작가를 정해 놓고 3년 동안 그 작가의 책과 관련 연구서만 읽는 오에 겐자부로의 독서법과 유만주의 글은 나의 독서 방법을 돌아보게 한다. 허균은 사십 후반에 명나라 사상가 이지의 책을 읽고 “오십 이전의 나는 한 마리 개에 지나지 않는다.”(p. 39)라고 했단다. 이 문장에 대해, 작가는 훌륭한 책이란 독자의 시야를 트이게 하고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설명한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이 독서와 공부에 대한 나의 시야를 한 단계 높여주고 있다. 저자는 공부란 배우지 않았어도 익히 알고 있던 것들을 문자로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작업이고 몸으로 실천하는 작업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공부를 지식의 차원을 넘어 삶의 차원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책을 잘 읽고 꼼꼼하게 공부하는 이는 많지만 사람을 진실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이를 찾기란 쉽지 않다. 진정한 공부의 대가(大家)를 찾기 어렵다는 뜻일 게다.

 

누군가의 글쓰기가 읽을 만하고 누군가의 공부가 받아 들일만 하려면,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결국 책읽기를 통해 우리는 먼저 생각을 바꾸어 가치관의 변화가 있어야 하며, 그것은 곧 인격의 변화와 삶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이 진짜 공부다! “전겸익의 문장을 읽으면 곧장 마음을 빼앗겨 길을 잃게 된다. 돌아올 방법을 모르게 된다”(유만주, p. 138). 설흔은 오르한 파묵의 <새로운 인생>의 첫 문장,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를 소개하며,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은 길을 잃고 돌아올 방법을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세상에 위험하지 않은 독서나 공부는 없는 법이다.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란 그 책을 읽기 전과 읽고 난 후의 삶이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설흔의 <공부의 말들>은 독서와 공부에 대해 나의 생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준 멋진 책이다. 저자가 소개한 우리 선조들의 책들과 현대 작가들의 글들을 열심히 찾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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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미래를 예측할 것인가 - 역사 속 시그널을 읽으면 미래가 보인다
자크 아탈리 지음, 김수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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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어려운 주제를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가 다루었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크 아탈리는 ‘미래를 안다’ 혹은 ‘미래를 예언한다’는 것과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미래를 안다고 할 때는 미래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운명을 받아들이고 체념하게 된다. 미래를 예언한다고 것도 미래가 변할 수 없다는 생각을 전제하고 있기에, 결국은 체념할 뿐이다. 하지만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열린 미래를 전제하고 있으며,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자유롭게 살 준비, 자기 자신이 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자유를 얻는 일이다.

 

저자는 과거에 인간이 어떻게 미래를 알아내려고 힘썼는지 수많은 종교적 철학적 문헌을 예로 제시한다. 인간은 고대부터 손금을 보아왔고, 점성술에 집착했고, 예언자나 사제들은 예언의 능력을 추구했다. 꿈이나 제비뽑기, 희생제물이나 카드와 커피를 통해서도 점을 쳤다. 놀랍게도 신의 시대, 예언자의 시대가 지나자 인간은 이성(理性)을 사용해 날씨를 예측하였다. 날씨를 예측하는 것은 날씨에 순응하지 않고 날씨에 대비하기 위해서며, 더 나아가 날씨를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역사의 흐름을 보면 언제나 인간의 예측을 벗어났다. 결국 세상은 더욱 예측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그러자 인간들은 미래를 걱정하지 않은 채 체념하며 살아간다. 자신이 죽을 존재임을 망각한 채 ‘부조리한 위희(慰戲)’에 빠져 산다는 것이다. ‘위희’란 파스칼이 이론화한 개념인데,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게 하는 유희적 활동을 말한다. 개인의 자유가 확산될수록 미래를 예측하기는 더욱 어려워지는 법이다. 따라서 현대의 인간은 점차 기계에 미래에 관한 모든 것을 맡기고 있다.

 

기계라고 하는 새로운 군주에게 미래에 대한 지식을 위임하게 될 경우, 권력은 미래를 관리하는 임무를 맡은 기업의 속에 들어갈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자크 아탈리는 여기서 인간이 이런 식으로 자유를 잃지는 않을 것이며, 자유롭게 미래를 예측하는 개개인의 잠재력을 키워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길 희망한다. 그래서 이 책 마지막에는 미래를 예측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무엇보다도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개인의 미래에 대한 예측은 다음 단계를 거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자신이 정체성과 가치를 이루는 핵심을 분석한다(회고적 예측). 둘째, 앞으로 자신의 건강상태의 변화를 예측한다(수명 예측). 셋째, 자신의 미래에 영향을 줄 사람들을 분석한다(환경적 예측). 넷째, 그들이 나에게 취할 행동을 파악한다(감정적 예측). 다섯째, 미래의 나를 계획하는 나의 방식을 분석한다(계획적 예측). 결국 자기 자신을 예측하는 일은 ‘자유롭게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이다. 저자는 예측의 최대 적은 게으름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용기를 내어 미래를 예측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미래를 안다거나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 그것은 자유로운 인간으로 자기답게 살아가는 방식이다. 가치 있는 삶은 언제나 살기 전에 꿈꿔야 가능하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예측은 삶을 가져다준다.”(p. 264). 이 책은 인간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예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래는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떻게든 미래를 꿈꾸고 자신이 꿈꾸는 대로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이 책의 논지다. 자유롭고 가치있게 사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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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에서 나눈 대화 - 귄터 그라스, 파트릭 모디아노, 임레 케르테스… 인생에 대한 거장들의 대답
이리스 라디쉬 지음, 염정용 옮김 / 에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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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서 사람은 가장 진실해진다고 한다. 죽음을 앞둔 유럽 문학 거장들이 진솔하게 말하는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독일의 주간신문 <차이트>의 문예부 편집자인 이리스 라디쉬(Iris Radisch)는 19명의 문학 거장들과 인터뷰를 했다. 이 인터뷰는 1990년 가을부터 2015년 봄까지 장장 25년 동안 진행된 것들이다. 죽음에 대해서도 다루지만 주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인생의 주어진 시간이 끝나며 변하지 않고 남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라디쉬는 인생의 마지막에 관해 종교적이나 철학적으로 확정된 입장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나는 이에 대해 조금은 불만이다. 이러한 사람들과의 인터뷰는 너무 삶과 죽음을 한 방향에서만 바라보게 하는 것이 아닐까? 오히려 종교적이나 철학적인 신념이 확고한 사람들이 삶과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는지도 함께 보여주었으면 훨씬 더 넓은 시각에서 삶과 죽음을 독자에게 제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인터뷰어(interviewer) 라디쉬는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언급하면서 인터뷰의 내용들을 소개한다. 이반 일리치는 죽음을 앞두고 외친다. “일, 생활, 가족들, 그 모든 것은 어쩌면 전혀 아무 것도 아니었을 거야.” 라디쉬는 죽음 앞에서 삶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전제를 이미 가지고 인터뷰를 진행한 것은 아닐까? 어쨌든 죽음을 앞두고 노년의 문학가들은 어떤 의미 있는 말들을 했을까 사뭇 궁금해진다.

 

쥘리앵 그린은 자신이 죽지 않고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 있는 하루하루를 신들에게 감사드린다. 죽음은 잠과 같으며 신비에 싸인 세계라는 것이다.

 

한편, 노벨 수상자 클로드 시몽은 삶의 부조리를 굳게 믿는 자로서, “만약 세상이 어떤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훌륭한 책을 쓰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글쓰기의 대상이 아니라 방법이다. 책의 의미는 글을 쓸 때 비로소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는 글쓰기의 방법에만 관심을 갖는다. 어떤 일이 왜 일어나는가는 신학자들이 답할 문제이며, 그것이 어떻게 일어나느냐가 문학가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삶을 마감하면 무엇이 아쉬울 것 같으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그는 ‘삶’ 자체라고 답한다. 새들과 하늘을 볼 수 없고, 더 이상 수영도 할 수 없고, 햇볕도 쬘 수 없다는 것, 그 모든 것이 아쉽다고 고백한다.

 

그런가 하면, 안드레이 비토프는 자신은 자유로운 인간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야 말로 가장 큰 사치를 누리는 것이라고 유쾌하게 주장했다. 세상은 우리보다 더 유쾌하게 돌아간다. 우리는 죽지만 세상은 죽지 않기 때문이란다.

 

마지막 인터뷰이(interviewee)인 루트 클뤼거는 모든 것이 확정되어 있다면 자유는 없는 것이기에 자신은 삶의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 믿는다고 고백한다. 이런 믿음은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는 것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올바른 선택이란 없다. 그저 결정을 내리고 충실히 따를 뿐이다. 모든 것이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고 삶에서 더 바랄 것은 없다. 그녀의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다. 삶의 참 뜻을 알고 싶다면 온 종일 자는 고양이를 보면 된단다. 삶의 참 뜻은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책을 덮으며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삶이란 사는 것이다. 그러니 매 순간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며 지금 살아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문제는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까? 무신론자들에게 있어서 답할 수 없는 질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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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마음 - 달라이 라마의 성경 강의
달라이 라마 지음, 류시화 옮김 / 불광출판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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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그리스도교 명상 공동체’에서 주최하는 세미나에 티베트 불교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초청받았다. 이 공동체는 달라이 라마에게 신약성서의 네 복음서에서 각각 두 구절씩 여덟 구절을 미리 뽑아 주며 그리스도교의 주요 메시지에 대해 어떤 의견과 느낌이 있는지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그에게 전달된 메시지는 그리스도교의 가장 독특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그것은 원수사랑, 마음이 가난한 자의 복, 하나님의 나라, 전도, 신앙, 부활 등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나 부활 등은 불교에서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단어다. 과연 달라이 라마는 이런 용어에 대해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 책에는 흥미로운 강연과 대화가 소개되어 있다. 달라이 라마는 시종 따뜻함과 명확함, 웃음으로 청중들을 사로잡았단다. 특히 그는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근본은 같지만 서로 다른 언어로 표현되었을 뿐이라는 주장에 대해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반대한다. 그는 불교에서는 창조주 하나님,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온 구세주를 인정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그는 학문적 만남, 명성, 성지 순례 등을 추천했단다. 머리글을 쓴 로버트 카일리는 달라이 라마의 강연을 들으면서 그에게는 어떤 종교든 그들 자신이 가진 것이 얼마나 풍요로운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놀라운 힘이 있다고 느꼈다.

 

나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마태복음 5장 38-48절)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강의가 특히 흥미로웠다. 그는 대승불교 경전에 있는 한 구절을 소개한다. “적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면 그대는 도대체 누구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겠는가?” 그는 이어서 동물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에게는 사랑과 자비의 감정을 보인다는 점을 지적한다. 사랑할 만한 존재들을 사랑하는 것은 동물도 할 수 있다. 동물보다 더 낫게 행동하려면 분명 적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바른 마음 자세를 가지고 있다면 적은 가장 훌륭한 정신적 스승이 될 수 있다. 원수가 있기에 참을성과 너그럽게 이해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것과 모든 것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했다. 더 나아가 불교의 ‘행공양’을 말하며 그리스도교 관점에서 하나님께 바치는 훌륭한 선물은 사랑과 인내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윤리적으로 성숙한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힌다. 그리스도교적 용어로 표현하면, 우리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릴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놀랍다. 불교계의 지도자가 예수의 가르침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아쉬운 점은 달라이 라마가 그리스도교의 부활과 승천 교리를 불교의 환생 교리와 비슷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부처가 육신은 화장되었지만 그의 초월한 마음은 법신 속으로 다시 들어가 하나가 된 것처럼, 예수의 부활도 그런 영적인 부활로만 이해한다는 것이다. 성서는 예수의 부활이 영적인 부활뿐 아니라 실제적인 육체의 부활까지도 분명히 언급한다. 다행히도 달라이 라마의 강연이 끝나고 이 책 뒷부분에는 로렌스 프리먼 신부가 그리스도교의 해석을 실어 놓아서 균형을 잡고 있다. 또 통역을 맡았던 둡텐 징빠의 강연은 불교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종교간, 문명 간의 갈등이 극에 달해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과 대화의 시도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타종교의 관점에서 자신이 속해있는 종교의 메시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종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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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면의 시간들 - 무의식 속 즐거움을 찾아가는 길 동시대 예술가 1
최울가 지음 / 인문아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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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사랑하지만, 현대한국화가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최울가 화백이 직접 말하는 회화론을 통해 그의 그림을 이해하고 감상하고 싶었다. 처음 그의 그림을 접하면 ‘이게 뭐지’ 하고 혼란스러움을 경험한다. 하지만 곧 찬찬히 뜯어보는 재미가 있다. 그의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오브제의 하나는 짐승이다. 네 가지 동물, 개, 하이에나, 늑대, 여우다. 흥미롭게도 이들의 뱃속에는 수박과 시계가 들어가 있다. 작가는 이 동물들의 캐릭터가 인간을 대신하는 토템이라고 말한다. 개와 하이에나는 현실적인 동물이라서 수박을, 늑대와 여우는 감성적인 동물이라서 시계를 뱃속에 넣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영원한 충직한 친구인 개, 철저히 가족을 지키고 동족끼리 다투지 않는 하이에나, 반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나그네의 깊은 고독이 배어 있는 것 같은 늑대, 외롭게 살지만 철저히 본인 위주로 살아가는 여우. 이들은 저마다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닮아있지 않은가!

 

작가는 자신의 그림에는 4가지 유형의 버전이 있다고 밝힌다. 한지 위에 색명으로 표현한 원초적 컬러의 Primitif 시리즈, 한지에 아크릴 물감을 물에 풀어 갓슈 형식을 띤 그림들, 뉴욕에서 오일 페인팅으로 작업한 White & Black 시리즈, 그리고 최근 새롭게 작업을 시작한 Infinity 시리즈다. 그중 White & Black 시리즈는 거의 16년 동안 계속해 왔고, 이 시리즈에 네 가지 동물들이 항상 등장한다.

 

어쨌든 그의 그림에서 어떤 원시성과 동시에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이전 자신의 그림을 다 태워버린 적이 있단다. 데이언 허스트(Damien Hirst)의 개인전을 보고 나서다. 허스트의 전시가 예술가의 자유로움을 비웃기라도 하듯 회화에서 경거망동할 수 있는 모든 짓거리를 분출해 놓은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여기서 최울가 화백은 자신이 어떤 작가이고 미래에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 깨달았다. 선 작업의 허황된 정신적 방황을 넘어, 섞이지 않는 단 하나의 색면을 원했다. 자신의 회화론을 피력한 이 책 제목이 <선과 면의 시간들>인 것이 이해가 간다.

 

그는 행복한 화가다. 블랙 시리즈에서는 예술적 감각을 고집하였고, 화이트 시리즈에서는 원시적이고 자유로운 선을 강조하였고, 인피니트 시리즈에서는 앞의 두 시리즈에서 벗어나 조용함을 스스로 경험했다. 자신만의 철학과 감성을 가지고 자신만의 그림을 그린 그는 프로페셔널하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프로페셔널하면 가장 자유로워진다. 원시 동굴 벽화에서 본 듯한 그 원초적 선들, 그 표현주의적 기법으로 인해 최울가 화백의 그림은 다른 화가의 그림과 비교가 불가능한 유니크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 책과 함께 있는 그의 작품 카드가 친근하게 다가온다. 즐거운 독서와 작품감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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