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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위에 새긴 생각
정민 엮음 / 열림원 / 2017년 10월
평점 :
서예를 배우면서 전각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학산당인보(學山堂印譜)>에 있는 좋은 글귀를 정민 교수가 평설했으니, 서예 글감을 찾고 있는 나에게 매우 유용할 것이라 생각해서 책장을 넘겼다. 이 책을 엮고 지은 정민 교수의 <미쳐야 미친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옛 사람이 건넨 네 글자>를 이미 읽어 보았기에 기대가 컸다. 그리고 이 책 <돌 위에 새긴 생각>은 그런 나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켜 주었다.
저자는 먼저 <학산당인보>를 소개한다. 이것은 명나라 말엽 장호(張灝)가 좋은 글귀를 간추려 전각가들에게 새기게 해 엮은 책이다. 조선의 이덕무가 이 인보의 글귀에 매력을 느껴 풀이글을 베껴 소책자로 만들었단다. 그리고 박제가가 이 책자의 서문을 맡았다. 이 책에 실린 박제가의 서문(pp. 9~11) 덕분에 책의 품격이 느껴진다. 한 페이지에 전각 하나 찍어 놓고, 그 아래 한문과 한글로 글귀를 소개하고 간략한 풀이글이 달리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넉넉한 여백의 미와 깊이 있는 글귀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옛사람들의 명문장이 저절로 내 마음에 새겨지는 느낌이다. 참 마음에 드는 책이다.
글귀 한 문장 한 문장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好學者雖死若存 不學者雖存 行尸走肉耳(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비록 죽더라도 산 것과 같고, 배우지 않는 자는 비록 살아 있어도 걸어 다니는 시체요, 달리는 고깃덩어리일 뿐이다, p. 15). 항상 배우기를 힘쓰고 변화하기를 노력해야 한다. 덕분에 한자 공부를 상당히 많이 했다. 위 문장에서 ‘雖(수)’가 ‘비록 ~하여도’이고, 耳가 ‘~뿐’이라는 뜻을 가진 것임을 한문 사전을 통해서 확인했다. 제대로 한문 공부를 한 듯싶다. 덕분에 온라인 한자 사전도 참 많이 찾아보았다.
이 책에는 인생에 대해 깊은 관조가 담겨 있다. 人生不滿百 常懷千歲憂(인생이 백 년을 못 채우건만 언제나 천 년 근심 품고 사누나, p. 56). 不如意事 十常八九(뜻 같지 않은 일이 늘 열에 여덟아홉이다, p. 118) 그런가 하면 독서와 학문의 본질을 꿰뚫는다. 學然後知不足(배운 뒤에야 부족함을 안다, p. 71).
이 책 곳곳에 金科玉條(금과옥조) 가득하다. 笑讀古人書(웃으며 옛사람의 책을 읽는다, p. 199). 이 글귀가 이번 독서를 단번에 표현해준다. 옛 사람의 글을 읽으며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마음과 생각이 통했기 때문이다. 醫俗莫如書(속됨을 고치는 데는 책만 한 것이 없다, p. 191). 마음이 깨끗해진 듯하다. 이 책 두고두고 천천히 음미하며 마음에 새길 일이다. 차근히 붓글씨로도 써보면서 인생을 사는 지혜를 마음에 새겨야겠다.
마지막으로 雲作心 月爲性(구름으로 마음 삼고, 달로 성품을 삼네, p. 141)이 오랜 여운을 남긴다. 자유롭게 떠가는 구름처럼, 차별 없이 모든 것을 비추는 달빛처럼, 그렇게 자유롭고도 넉넉하게 살아갈 수는 없을까. 옛 선비들이 한없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