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 법정이 우리의 가슴에 새긴 글씨
법정 지음, 현장 엮음 / 책읽는섬 / 2017년 1월
평점 :
품절


법정 스님, 기독교인인 나는 그를 스님으로가 아니라 작가로 사랑했다. 30여 년 전 그가 쓴 수필집 <서 있는 사람들>을 읽고 그에게 매료되었다. 시대적 아픔과 부조리를 압축된 언어로 풀어내며 우리가 어떤 자세로 삶을 살아내야 하는지 들려주는 책이었다. 그후 그의 수필들을 읽으면서 깨끗함과 향기로움을 맛보았다. 종교를 초월해서 법정 스님에게 매료된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그 중 법정 스님이 ‘구름 수녀’라고 부른 이해인 수녀가 있다. 나는 이해인 수녀의 시집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수녀님의 글에서도 맑음과 향기로움을 맡을 수 있었다. 불교계에서는 현장 스님이 있다. 그는 한 때 <맑고 향기롭게>의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누구보다 법정 스님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가능하면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법정 스님의 가르침과 삶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나온 책이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인 것이다. 이 책은 법정 스님의 강론, 종교교류에 힘쓴 활동과 생각, 그가 애송한 시, 그가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묶어놓았다. 책 곳곳에 실려 있는 사진들과 법정의 ‘붓장난’이 어쩜 이렇게 다정하게 다가올까. 마치 법정 스님을 보는 듯하다.

 

현장 스님은 법정 스님의 명동성당 강론을 녹음한 CD를 어렵사리 구해 이 책 앞부분에 수록해 놓았다. 나는 법정 스님이 천주교인들에게 종교를 초월해 들려준 내용이 무엇인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대량 생산과 소비를 부추기는 천박한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정곡을 찌르는 말씀을 했다. 풍요로움 속에서 무엇이든지 쉽게 버리는 습관 속에 인간의 고귀한 덕성까지 버렸다고 일갈한다. 가난하지 않고는 진리에 대한 각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법정 스님은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주어진 가난은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만 스스로 선택한 맑은 가난은 삶의 미덕이란다. 그러면 어떻게 청빈의 덕을 쌓을까? 법정 스님은 따뜻한 가슴과 만족할 줄 아는 마음, 간소한 삶의 방식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순례자와 나그네처럼 인생길을 걸으라는 그의 가르침을 마음 깊이 담아본다.

 

법정 스님이 애송한 짧은 시(“입 안에 말이 적고 / 마음에 일이 적고 /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 / 이 세 가지 적은 것이 있으면 신선도 될 수 있다”)처럼, 나도 입에 많은 말, 마음에 많은 일을 접고 욕심도 내려놓는다. 그리고 나의 길을 ‘무소의 뿔처럼’ 가려 한다. “맑고 향기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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