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평전 - 찬란한 고독, 한의 미학
최광진 지음 / 미술문화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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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좋아하고 잘 그렸던 돌아가신 나의 둘째 누님이 너무나도 좋아했던 화가가 천경자다. 나는 ‘천경자’하면, 나의 둘째 누님이 떠오른다. 천경자 화백의 개인적인 삶은 불행의 연속이었으나 화가로서의 삶은 참으로 화려했다고 알고 있다. 그녀의 작품도 여러 번 접했다. 정직히 말해 미술관에서가 아니라 신문이나 그림책들을 통해서 말이다. 책으로 그녀의 작품을 접해도, 작품의 강렬함에 한참이나 들여다보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다. 저자 최광진은 1995년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천경자 회고전의 큐레이터를 맡은 것이 계기가 되어 화백을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일제 압제와 육이오 전쟁을 겪은 세대 사람들의 삶이 다 그랬듯이 천경자도 참으로 험난한 인생을 살았다. 이 책을 통해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 파란만장한 결혼 생활, 작품 활동, 그녀의 마지막 쓸쓸한 죽음까지 천경자의 일대기를 제대로 살펴볼 수 있었다.

 

저자 최광진은 화백 자신으로부터 들은 말들에 기초하여 매우 흥미롭게 그녀의 삶을 그려냈다. 화백은 어린 시절 곡마단이나 서커스을 좋아했고 상여행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단다. 이런 것들로 인해 천경자는 슬픔이 아름다움의 원류라고 생각하였다. 무엇보다도 어린 시절 자연에서 뛰놀던 경험은 천경자에게 색채를 통해 황홀한 미의식을 가지게 했으리라. 화백의 삶을 풀어내면서 저자는 적절하게 화가의 그림을 설명한다. 수많은 뱀이 뒤엉켜있는 그림 <생태>, 하얀 인골과 상사화가 있는 그림 <내가 죽은 뒤>는 화백의 힘겨운 삶을 알지 못하면 제대로 이해하거나 느끼지 못할 것이다. 잠깐이지만 행복을 맛본 서울 생활에서 그녀의 그림이 샤갈풍이 된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 뒤 천경자가 세계 여행과 문학 기행을 하면서 그렸던 그 유명한 작품들이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가장 흥미로운 section은 ‘환상 속의 자아상’이었다. 천경자의 인물상은 자신을 직접 모델로 삼지 않았지만, 영화 속 비극의 주인공이나 이상향의 여인을 자신과 동일시했다. 그레타 가르보, 마릴린 먼로, 길례 언니, 프리다 칼로 등을 통해 그녀는 험난한 사회 속에서 개인의 불행한 실존에 순응하지 않고 저항하려 했다. 삶의 고독과 상처로 인해 생겨난 한(恨)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표현하지 못했다면, 천경자는 훨씬 빨리 사그라졌을 것이다. 고독과 한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일은 살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했을 것이다.

 

나는 화가들의 평전을 여러 권 읽어보았지만, 이 책보다 더 탁월한 평전은 없다고 감히 평가한다. <찬란한 고독, 한의 미학>은 이해하기 쉬울 뿐 아니라 작품을 감상하는 데 꼭 필요한 정보들을 알뜰하게 알려준다. 이 책은 천경자 화백의 삶과 작품을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너무나 소중한 평전이다. 그렇다. 최광진의 말처럼 천경자 화백의 그림은 “신명나는 굿판을 보는 것처럼 황홀한 색채의 향연 속에 감각을 열고 감정의 승화를 체험하게 한다”(p. 185). 부록 ‘희대의 진위논란, <미인도>의 진실’과 ‘천경자 연보’도 이 책의 가치를 높인다. 매우 흥미롭고 유익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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