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문장 - 책 속의 한 문장이 여자의 삶을 일으켜 세운다
한귀은 지음 / 홍익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여자의 인생에는 한번쯤 무언가 결정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멋진 문장이란 생각이 들어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여자의 문장>의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자신이 한 때 ‘책만 보는 바보’(간서치) 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온전히 자신이 삶 속에 있다고, 그래서 “삶이 문장과 만나는 순간에 관해” 쓰고자 이 책을 냈단다. “텍스트의 문장이 진실이 되는 때는 그것이 읽는 이의 삶과 만났을 때뿐이다”(p. 7). 이 말에 격하게 동의한다. 책을 읽는다고 읽는 것이 아니다. 독자의 삶이 책과 만나야 한다.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어느 문장에서 자신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어디, 여자의 인생에만 한번쯤 무언가 결정해야 할 순간들이 있겠는가. 남자의 인생에도 결정해야 할 순간들이 있고, 그 때 책을 펴면 종종 길이 보이곤 한다.

 

저자는 자신의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책의 문장들을 발췌해 소개한다. 어릴 적 공부는 안하는 것 같은데 성적이 좋은 아이들의 여유가 부러웠다고 말한다. 지금은 자신이 공부중독자가 되었는데, 이것은 좋은 일이 아니란다. 왜냐하면 무엇인가에 중독되면 자기 세계에 빠져 높고 멀리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중독에 빠질수록 일의 완성도는 떨어지고 자아도 점차 쪼그라든다. 저자는 에른스트 푀펠의 <노력중독>에 나오는 내용의 일부를 소개한다. 그러면서 학생시절 함께 공부했던 친구를 떠올린다(pp. 95~99).

 

이 책, 이런 식이다. 행복, 관계, 위기와 회의, 사랑과 이별, 나이 듦, 여자의 물건, 숙명 등 일상의 삶에서 한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문제들을 다룬다. 글들이 가벼운 듯 진지하다. 여성 특유의 감성이 글들에 배어 있지만, 인문학적인 날카로움이 느껴진다. ‘아줌마’라는 가벼운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스라보예 지젝의 <HOW TO READ 라캉>의 일부를 소개하며 섹스와 오르가즘의 본질을 이야기한다(pp. 76~80). 아들에게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게 하는 일상의 소소한 일을 말하면서 버트런트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 나오는 글들을 인용하며 엄격함과 책임감에 대해 말한다(pp. 252~256).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독서와 삶을, 그것도 소소한 일상의 삶을 무게감 있는 인문학적 책들과 연결시켜 삶의 본질을 알려준다는 점 말이다. 즐거운 독서였다. 이 책, 슬쩍 아내의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식탁에서 아내와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할 때, 분명 이 책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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