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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생존 -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나무 이야기
레이첼 서스만 지음, 김승진 옮김 / 윌북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멋진 책을 만났다. 여러 저널에 사진과 글을 기고하는 현대 예술가 레이첼 서스만(Rachel Sussman)은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호주, 남극까지 찾아가 적어도 2,000살 이상 된 식물들의 사진을 찍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그리고 그 결실로 <위대한 생존: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나무 이야기>가 나왔다. 예술이면서 동시에 과학인 이 프로젝트는 우리를 심원한 시간과 마주하게 하여, 현재의 시간을 깊이 있게 해 준다. 저자는 오래전부터 생존한 생명체의 눈으로 심원한 시간을 들여다보면 현재 우리가 거하는 이 세계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지 않을까 기대하며 이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그리고 독자인 나는 그녀의 사진과 글을 보면서 현재의 시간과 소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한 페이지 가득 담긴 잘 찍은 사진들에서 쉽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가장 인상적인 나무 중 하나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화이트 산맥에 있는 ‘브리슬콘 파인’(Bristlecone Pine, pp. 43~45)이다. 이 나무는 5,000살 정도로 추정된다. 개체 전체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지 않은 시스템은 모두 닫고 제한된 영양분으로 살아온 나무다.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나무인지 사진을 보는 건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사진이 예술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 나무들의 생존의지가 사진에 서려있기 때문이다. “브리슬콘은 극단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생존한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조건 ‘덕분에’ 생존했다”(p. 49)는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고산지대의 온난화가 브리슬콘의 성장을 빠르게 하고 있는데, 이는 다행스러운 것이 아니라 염려스럽다. 왜냐하면 빠르고 맹렬하게 자라는 생물이 오래 살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표지 사진의 주인공인 스웨덴의 가문비나무(Spruce)에게도 해당된다. 9,500년 동안 낮은 가지들만 존재했을 이 나무가 1940년부터 고산 기온이 올라감으로써 이제는 5미터 높이의 중심 몸통을 갖게 된 것이다(p. 177).
저자는 “긴 세월을 살아온 생명체들을 찾아 10년 동안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필멸에 대해 더 생생하게 느꼈게 됐다”(p. 31)고 고백한다. 그렇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은 반드시 사라진다. 그리기에 ‘지금 살아있는 것’ 자체가 위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지금 내가 인식하는 순간에 우리는 모두 함께 존재한다. 그러기에 이 순간이 의미가 있다. 수십억 년 전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s, pp. 260~267)가 이 땅에 산소를 공급해 준 이래 이 지구별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태어났다가 죽었다. 수천 년 아니 수만 년 이상 동일 개체로 존재한 생명체들도 ‘필멸’할 것이다. 그러니 고작 백년 남짓 사는 인간들이 불멸을 추구하여도, 불멸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지구와 함께! 어찌 보면 지구에서 가장 오래 생존한 나무들은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일지도 모른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교만하게 떠들어대는 인간은 위대한 생존을 이룬 나무들로부터 삶의 참된 지혜와 겸손, 생명과 이 세상과 현재의 소중함, 그리고 필멸에 대해 배워야 한다. 매혹적인 사진으로 가득한 이 책 자체가 철학과 과학이 어우러진 멋진 예술 작품이다. 내 평생 소장할 책 중 하나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