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다독다독, 그림 한 점 - 일상을 선물로 만드는 그림산책
이정아 지음 / 팜파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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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는 게 팍팍합니다. 일 자체보다 인간관계가 힘듭니다. 선배는 선배대로 후배는 후배대로 내 마음을 힘들게 합니다. 지루한 업무, 항상 마주하는 사람들, 반복되는 일상에 설레임도 없이 그럭저럭 하루를 보내곤 합니다. 삶이란 본래 이렇게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것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제쳐두고 그냥 어디론가 떠나고 싶고, 누군가에게 기대어 위로받고 싶습니다. 이런 나에게 조금은 게을러도 좋다고 다독이는 책이 나왔습니다. <내 마음 다독다독, 그림 한 점>, 멋집니다. ‘일상을 선물로 만드는 그림산책’이라는 부제도 마음에 듭니다.

 

이 책에 나오는 그림과 저자의 글이 내 마음을 다독여 줄 거라는 기대감으로 책을 펼쳐봅니다. 먼저, 겉표지의 그림에 오래 머물러 있었습니다. 윌리엄 헨리 마겟슨의 <주부>라는 그림입니다. 화사한 꽃무늬의 푸른 색 옷을 입은 청초한 여인이 샐러드를 만들고 있습니다. 창틀에 있는 화분에는 빨간 꽃이 피었네요. 깔끔하게 설거지해서 단정하게 정돈된 접시와 컵은 고풍스러운 목재 가구와 잘 어울립니다. 목선이 예쁜 이 여인은 누구를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분명 남편일 것입니다. 저자 이정아는 이 그림에서 소박한 일상의 행복을 끄집어냅니다. 커피를 내리거나 요리를 하는 시간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너무 거창한 것을 꿈꾸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기에 쉽게 지치고 탈진합니다. 소소한 일상을 느끼는 것이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지혜로운 방법이지 싶습니다.

 

귀스타브 쿠르베의 <해먹>, 피에르 보나르의 <햇빛을 받고 있는 누드>,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비 내리는 예르>를 보면서 그냥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하루를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은밀한 휴식, 달콤한 게으름, 깊은 고독이 그립습니다. 저자의 글을 꼼꼼히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자는 그림을 한 점 한 점 보여주지만 그림에 대해서도 양념식 설명뿐, 일상의 가벼운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자의 글에는 남자인 나도 푹 빠지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듯 나도 철학이나 역사 같은 인문학 책들을 좋아합니다. 이런 책들은 지성의 만족을 주지만 때로는 심신을 피곤하게 합니다. 그럴 때면 음악책이나 미술책들을 들여다보는데, 어느새 그림이나 음악을 즐기기보다 미술가나 음악가의 삶과 사상, 시대적 의미 등을 공부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못 말리는 구제불능의 ‘머리형 인간’입니다.

 

이런 나에게 <내 마음 다독다독, 그림 한점> 같은 책이 필요합니다. 이런 책은 마음을 가볍게, 영혼을 맑게 합니다. 저자의 글은 칼럼니스트답게 맛깔스럽습니다.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점쟁이>를 보여주면서 처녀 때 친구 따라 점을 봤던 이야기를 합니다.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에서는 하이힐의 유혹을, 폴 세잔의 <세잔 부인의 초상>에서는 아줌마에 대해, 유진 드 블라스의 <새로운 구혼자>에서는 여자들의 수다에 대해 말합니다. 아우구스트 마케의 <패션상점>과 관련해서는 자신이 에스프레소 머신을 산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어느새 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집니다. 교양 있는 여자들의 수다는 치유의 능력이 있는 듯합니다. 햇살 잘 들고 바람 살랑이는 침대에 누워 이런 책을 뒤적이다 잠에 빠지면, 육체도 영혼도 제대로 된 휴식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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