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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멋 흥 한국에 취하다
정목일 지음 / 청조사 / 2014년 9월
평점 :
나이 들수록 우리 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커갑니다. 요즘 서예를 하고 있습니다. 해서체(楷書體)를 시작으로 다양한 글씨체를 연습해보고, 조만간 사군자와 수묵화에 도전해보려 합니다. 학창시절 미술 선생님에게 서예를 배우고 난(蘭)을 치고 죽(竹)을 그리는 법을 배웠는데, 나이드니 이런 것에 마음이 더욱 끌립니다. 이제는 동양화의 흑백과 여백이 화려한 서양의 채색보다 더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맛 멋 흥 한국에 취하다>는 한국 것의 아름다움과 멋스러움, 그 정신을 고스란히 담아낸 수필집입니다. 저자 장목일 선생은 연세가 올해 70인 수필가로, 한국 서정 수필의 계승과 한국미의 발견과 음미에 전념하시는 분이군요. 작가의 글에 서정적인 아름다음이 그득 묻어있습니다. 그는 달항아리에서 비어 있음의 아름다움을 말합니다. 온전한 원형이 아닌, 약간 비뚤어진 곡선에서 미완의 넉넉함을 이야기합니다. 그렇습니다. 비어 있기에 보이고, 미완이기에 오히려 우리 마음을 넉넉히 담을 공간이 있는 것이겠죠. ‘백자 항아리를 쳐다보며 어떤 꽃을 꽂을지 생각하는 것 자체가 미(美)의 경지이며, 매화가 피었을 때 어떤 가지를 꺾을지를 생각하는 것이 선(禪)의 경지’(p. 27)라는 글귀를 보면서, 나는 어느새 홍매가 꽂혀 있는 백자의 그림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네 일상생활에서 한국인의 독특한 맛과 멋과 흥을 잘 표현해 냈습니다. 막걸리에서 우리네 신명을, 산나물에서 근심걱정을 잊게 하는 맛의 미소(微笑)를, 김치에서 자기의 모든 것을 녹여 발효된 어머니의 사랑을 말합니다. 그는 호박꽃에서 아침을 여는 종소리를 듣고, 넓은 아량과 넉넉한 인정을 봅니다. 저자에 따르면, 호박꽃은 농부들의 별이 되어 피어납니다(p. 149). 민들레꽃에서 해의 얼굴을, 무궁화에서 순교자의 숭고한 정신을, 작은 풀꽃들에서 소박함과 소외당한 자들을 향한 따스한 손길을 발견합니다. 저자는 매 월마다 독특한 정서와 연결시켜 1월은 설렘, 2월은 겸허, 6월은 성숙과 미소, 11월은 결별, 12월은 성찰과 확신, 등에 대해 잔잔한 울림이 있는 글을 썼습니다. 멋집니다. 이 아름다운 수필을 따라 한국의 맛, 멋, 흥을 느끼고, 한국의 것들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기 시작했나 봅니다. 조금은 성숙하고 조금은 여유로워졌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