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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4년 11월
평점 :
서경석의 <디아스포라 기행>을 읽으면서 국가와 개인의 삶,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의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읽어보겠다고 하다 지금까지 미루었습니다. 그러던 중 <나의 조선미술 순례>를 접하게 되니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그는 여러 현대 화가들을 만났습니다. 그는 작품 자체뿐 아니라 항상 화가라는 인간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책에서 다룬 미술작품과 작가는 이쾌대와 신윤복 두 사람을 빼 놓고는 모두 저자가 직접 만났습니다. 서경식은 자신이 일본에 삶의 터를 잡은 한인 디아스포라로서 미술가와의 대화를 통해 ‘우리’ 혹은 ‘민족’이라는 주제에 집중합니다. 이 주제는 ‘가족’이라는 주제와도 연결되어 있죠. 이 책에서 여러 작가들과의 대화는 흡입력이 있습니다. 마치 독자인 내가 그들의 대화 자리에 함께 앉아 있는 듯합니다.
서경석은 신경호가 5.18 광주민중항쟁의 현장에 있었지만 자신이 증언자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자문한다는 점에서 프리모 레비(Primo Levi)를 떠올립니다. 신경호의 <넋이라도 있고 없고: 초혼>에 관련된 에피소드는 실소를 금할 수 없게 만듭니다. 치안 당국은 대나무에 걸린 빨간 치마를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표현한 것으로 보았답니다. 어쨌든 신경호 작가의 작품은 철저히 리얼리즘을 지향합니다. 그의 리얼리즘은 사실주의(寫實主義)가 아닌 사실주의(事實主義), 다른 말로 현실주의(現實主義)입니다. 그는 진정한 “예술적 삶은 함께 현실을 아파하고, 같이 뛰어넘고자 하며, 더불어 치열하게 사랑하는 삶”(p. 57)라고 말합니다. 서경식은 신경호의 마음속에 펄럭이며 나부끼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빨간 깃발이 아니라 가난한 여인의 치마라고 단언합니다.
서경식은 윤석남의 작품을 토템으로서의 예술이란 관점으로 설명하고, 그녀의 작품들, 특히 <어머니>을 통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를 말합니다. 그리고 윤석남은 미리 어떤 이념을 가지고 그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을 소중하게 다룬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쾌대에 관해, 그의 <군상>과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은 같은 화가의 작품이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다른 인상을 줍니다. 집단과 개인, 서양화의 정통적 묘사와 조선의 민족적 묘사, 이 두 가지가 한 사람 속에 분열된 채 상극(相剋)하고 있고, 이 분열된 존재가 바로 이쾌대라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화가 이쾌대는 분명 민족의 분열이라는 콘테스트에서만이 제대로 이해되고 평가될 수 있습니다.
서경식은 김홍도의 풍속화첩을 보고 16세기 플랑드르 화가 피터르 브뤼헐을 떠올렸듯, 신윤복을 네덜란드의 화가 페르메이르라고 느낍니다. 그것은 신윤복의 그림에 엿보는 시선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는 신윤복이 주인공인 드라마 <바람의 화원>의 원작자 이정명 작가와 신육복에 대해 많은 대화를 합니다. 결론으로 서경식은 신윤복의 <미인도>가 시대를 뛰어넘는 자유로운 상상, ‘성별’조차 넘나드는 상상으로 이끌어준다고 말합니다.
이 책, 이런 식입니다. 서경식 작가가 미술가들을 만나 나누었던 본질에 관한 대화와 그들의 작품에 대한 깊은 통찰은 독자로 하여금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하게 합니다. 읽어내기가 쉽지 않지만, 호흡을 가다듬고 인내하며 읽어낼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서경석은 언제나 나를 깊은 사유의 세계로 빠져들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