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사람 - 42년간의 한결같은 마음, 한결같은 글쓰기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정호승의 시를 읽고 있으면 시대의 아픔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아픔에 동참하거나 치유하지 못하고 그저 관찰하고 이야기해야 하는 시인의 고뇌도 느낄 수 있습니다. “영등포역 골목에 비 내린다 / 잠시 쉬었다 가라고 옷자락을 붙드는 / 늙은 창녀의 등뒤에도 비가 내린다 / … 오늘밤에는 / 저 백열등 불빛이 다정한 식당 한구석에서 / 나와 함께 가정식 백반을 들지 않겠느냐 / … / 마음에 꽂힌 칼 한 자루보다 / 마음에 꽂힌 꽃 한 송이가 더 아파서 / 잠이 오지 않는다 / 도대체 예수는 어디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는가 / 영등포에는 왜 기차만 떠났다가 / 다시 돌아오는가”(<영등포가 있는 골목>, pp. 192~193).

 

그는 신앙인으로 기도하는 손과 실천하는 손 사이에서 고뇌합니다. 아마도 시대의 아픔을 해결하는 데 아무런 힘도 없는 시인의 처지를 표현한 듯합니다. “서울에 푸짐하게 첫눈 내린 날 /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은 / 고요히 기도만 하고 있을 수 없어 / 추기경 몰래 명동 성당을 빠져 나와 /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 pp. 190~191). 하지만 시대의 아픔과 슬픔은 좌절과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어떤 희망, 기다림이 담겨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아니, 그의 시는 슬픔과 절망을 말하지만, 그것들은 끝내 사랑과 희망에 잡아먹힙니다. “… 날마다 사랑의 바닷가를 거닐며 / 절망의 물고기를 잡아먹는 그는 / 이 세상 햇빛이 굳어지기 전에 / 홀로 켠 인간의 등불”(<시인 예수>, pp. 54~55).

 

그래서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영혼의 치유 내지는 정화를 경험합니다. 시인은 그 유명한 시에서 이렇게 우리를 위로합니다. “울지 마라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 …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 … /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수선화에게>, p. 140).

 

현대시는 하나같이 난해하여 가깝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호승의 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정돈되어 있고 따뜻하다고 해야 할까요. 때로는 날카롭게 찌르는 표현들이 나오지만 이내 부드럽게 마음을 감쌉니다. 사형 집행장 정문 앞에 있는 미루나무를 보고 시인은 노래합니다. “… 미루나무는 말했다 / 사형 집행이 있는 날이면 / 애써 눈물은 감추고 말했다. // 그래 그래 / 네가 바로 내 아들이다 / 그래 그래 / 네가 바로 내 딸이다 // 그렇게 말하고 / 울지 말고 잘 가라고 / 몇 날 며칠 바람에 몸을 맡겼다.”(<서대문 공원>, pp. 160~161).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정호승의 시가 바로 ‘어머니’ 미루나무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시인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고통하는 현대인들을 향해 ‘울지 말고 잘 가라’고 말하며, ‘몇 날 며칠 바람에 몸을 맡겨’ 흐느낍니다.


정호승의 시는 때로 웃음 짓게 만듭니다. “나는 왜 아침 출근길에 / 구두에 질펀하게 오줌을 싸놓은 / 강아지도 한 마리 용서하지 못하는가 /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 구두를 신는 순간 / 새로 갈아 신은 양말에 축축하게 / 강아지 오줌이 스며들 때 / 나는 왜 강아지를 향해 / 이 개새끼라고 소리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가 / 개나 사람이나 풀잎이나 다 똑같은 것이라고 / 산에 개를 데려왔다고 시비를 거는 사내와 / 멱살잡이까지 했던 내가 / 왜 강아지를 향해 구두를 내던지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가 / … / 진실로 사랑하기를 원한다면 /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 윤동주 시인은 늘 내게 말씀하시는데 / 나는 밥만 많이 먹고 강아지도 용서하지 못하면서 / 어떻게 인생의 순례자가 될 수 있을까 / 강아지는 이미 의자 밑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다 / 오늘도 강아지가 먼저 나를 용서할까봐 두려워라”(<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 pp. 196~197). 집에 강아지를 키우는 나도 경험한 일입니다. 용서하고 사랑하는 일에 확실히 강아지가 나보다 낫지 싶습니다. 이런 정호승의 시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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