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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떠나는 영성순례 - 이어령의 첫 번째 영성문학 강의
이어령 지음 / 포이에마 / 2014년 10월
평점 :
나는 이어령 선생이 기독교에 입문한 뒤 펴낸 책들을 즐겁게 읽었다. 때로 교회에서 외쳐지는 상투적인 가르침에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기독교의 본질을 발견하게 하는 그의 글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가 양화진 문화원에서 행한 목요강좌 <소설로 찾는 영성순례>를 듣지 못해 아쉬웠는데 책으로 만날 수 있어서 참으로 반갑고 기뻤다.
이어령 선생은 이 책에서 다섯 편의 소설을 기독교적 시각으로 평론했다. 그는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에서는 성서의 이야기 ‘가나의 혼인 잔치’와 연결해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발견한다. 우리는 죄 많은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형제들, 그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종교인이 목숨을 걸고 지켰던 종교적 교리보다 비천한 삶의 현실 속에서 신의 은총이 임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 삶에 빛을 비춰준다.
릴케의 <말테의 수기>를 통해서는 외면적 생활에 갇혀 있는 현대 도시인들에게 내면을 탐구하도록 도전한다. 그러고 보니 나의 믿음 생활은 내면의 탐구보다 외적인 성공과 축복에 방향이 설정되어 있었다. 신의 절대적인 힘을 의지해 삶의 성공과 풍요를 구하는 나의 욕망을 충족시키려고만 했다. 진정한 영성은 내면의 성찰에서 시작되는 것인데 말이다.
앙드레 지드의 <탕자, 돌아오다>는 성서 누가복음15장의 탕자 이야기를 소설화한 것으로, 이어령 선생은 결국 인간은 신에게로 돌아올 때만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집을 떠난 사람만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듯, 신을 떠난 인간은 신의 은총이라는 구원의 빛을 발견해야 한다.
이 선생은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 배경 아래서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의 메시지를 정확히 읽어낸다. 빅토르 위고는 이 소설을 통해 혁명을 초월하는 사랑을 말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의 기치인, ‘자유, 평등, 박애’에서 ‘박애(프라테르니테)’는 본래 보편적 사랑이 아니라 ‘형제애’를 뜻하는 단어로, 형제란 혁명에 가담한 자들을 의미한다. 그러니 혁명의 이름으로 형제들이 아닌 자들을 수없이 숙청했던 것이다. 혁명이 일어나면 생명과 사랑은 도외시된다. 이러할 때, 빅토르 위고는 예수님처럼 가난한 자, 세리, 창녀 같은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혁명을 완수할 수 있는 길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에서는 ‘생명력’을 화두로 삼는다. 벵골 호랑이와 주인공 을 관통하는 것은 ‘생명, 생명애’라는 것이다. 호랑이와 주인공은 서로 라이벌이다. 호랑이는 생명에 위협을 주는 존재이지만 그 호랑이가 살아있기에 주인공도 살아 있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생명은 죽음보다 강하다. 생명력을 잃기 쉬운 물질문명의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이 소설은 도전하고 있다.
이번 독서로 이어령 선생과 함께 <소설로 떠나는 영성 순례>의 길을 걸어보았다. 신학의 언어가 아니라 문학의 언어를 통해 신과 인간,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이 땅에서 하늘의 세계, 즉 초월적 세계를 이해하려면 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어령 선생은 다섯 편의 소설의 평론을 통해 빈약한 나의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했다. 기도나 신학이 아니라 문학을 통해서도 신을 경험하고 구원과 초월을 경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