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늦복 터졌다 - 아들과 어머니, 그리고 며느리가 함께 쓴 사람 사는 이야기
이은영 지음, 김용택 엮음, 박덕성 구술 / 푸른숲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이 책, 사람 사는 냄새가 풀풀 풍긴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 김용택의 모친 박덕성 할머니가 병원 침상에서 며느리 덕에 글을 배웠다. 그리고 어머니가 달라졌다. 뒤늦게 자식으로부터 독립되어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침상에서 바느질과 글쓰기를 하면서 자존감이 회복되고 행복하셨다. 시어머니만 달라진 것이 아니다. 시어머니를 대하는 며느리의 마음도 달라졌다. 시인의 아내 이은영은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밝힌다. “사랑은 책임과 의무가 아니다. 사랑은 마음이 가는 것이다. … 글쓰기를 하면서 내 마음이 어머니께 새롭게 가 닿았다. 어머니가 새롭게 내게 다가왔다.”(p. 16).

 

며느리는 병상에서 집과 자식을 그리워하며 한탄만 하고 계실 시어머니를 생각하며 천과 실이 담긴 반짇고리를 내 밀었다. 어머니는 조각보를 만드는 일에 몰두하셨고, 어머니 특유의 문양을 수 놓으셨다. 며느리는 이런 생각을 한 자기 자신이 말할 수 없이 기특했다. 내친김에 며느리는 바둑판 모양의 공책과 여러 색깔의 사인펜을 사서 시어머니에게 건넸다. 글을 배운 어머니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아들이 선생이 된 때가 젤로 좋았다고, 며느리가 우리 집에 올 때 환장하게 이뻐서 좋았다고, 손자를 가졌을 때 제일 좋았다고 쓰셨다. 신랑 얼굴도 모르고 시집와 아들 딸 쑥쑥 낳고 바람 피는 남편 앞에서 오히려 큰 소리 떵떵 치고 살았다고 말씀하신다. 어머니의 말씀을 녹음해서 적으며 며느리는 지나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어떻게 결혼생활을 했고 시어머니에게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소담하게 글로 담아냈다. 그 시어머니에 그 며느리다. 어쩌면 이렇게 담백하게 할 말 다 써 놓았는가!

 

김용택 시인은 어머니와 아내의 글을 접하고서는 책을 만들자고 했다.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 있었던 갈등에 직면하면서 그게 우리 모두의 일이며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어머니의 일생을 생각하며, “어머니의 삶에서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의 저울눈은 평행이었다.”(p. 222)고 말한다. 책 마지막에 있는 화보에는 어머니의 손바느질한 조각보 사진들이 실려 있다. 아들 시인은 어머니의 조각보를 보며 이렇게 노래한다. “한 땀 한 땀 바늘 끝이 떨리고 / 꽃실이 딸려갈 때마다 / 산새 소리가 꽃가지 사이로 새어나온다.”(p. 225).

 

나도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난다. 일본의 식민지 시대와 육이오 전쟁을 겪으신 어머니, 전쟁에서 다치신 아버지와 함께 여섯 형제를 키우시느라 안 해본 일이 없으셨다. 생전에 어머니가 TV 드라마를 보시다가 말씀하셨다. “얘야, 내 살아온 것 소설로 쓰면 몇 권은 되고, 연속극을 만들면 수백 회는 방송할 수 있을게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 그리고 어머니를 잘 모셨던 아내가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본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는 당사자들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일들이 숱하게 많은 법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생에 대해, 가족 혹은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많이 감사하게 되었다. 삶이란 살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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