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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나는 신뢰의 즐거움 - ‘진정한 나’를 찾아 떠나는 신뢰로의 여행
알폰소 링기스 지음, 김창규 옮김 / 오늘의책 / 2014년 5월
평점 :
여행을 하다보면 낯선 사람들을 만나 그를 신뢰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엄청난 모험이며 용기이며 때로는 큰 기쁨을 주기도 한다. 과연 나는 낯선 사람들, 나와 인생관과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도 인정하고 신뢰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는 세계 각지를 다니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문화와 삶에 대해 철학적 담론들을 펼친다. 생각처럼 가벼운 여행 체험기가 아니다.
그가 다닌 곳부터 나에게는 참 낯설었다. ‘아라오유안(Araouane)’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찾아보니, 아프리카 말리의 사막지대로 세계에서 가장 더운 곳 중 하나란다. ‘노리아’는 도대체 또 무엇인가? 시리아 북쪽 하마에 있는 오론테스 강에서 물을 퍼 올리는 물레바퀴(수차)의 이름이다. 이런 식으로 이 책에는 낯선 지역과 문화들을 언급하며 군데군데 철학적 문장을 던진다. 그래도 내가 아는 곳이 나와 갑자기 관심이 쏠렸다. 요르단 남부의 붉은 고대도시 페트라(Petra)다. “예술성은 인간의 영혼 안에 들어 있다. 예술성에는 자유가 필요하다. … 나바테아 인들에게 바위에 조각을 새기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은 바람과 강물이었다.”(p. 45). 사막에서도 붉은 절벽들만 가득한 곳에서도 사람들은 현대인들이다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냈다.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어도 우리는 누군가의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고 때로는 그들을 신뢰하며 살아야 한다. 저자는 마다가스카르(Madagascar)의 산지를 여행할 때를 기억한다. 그곳에서 낯선 젊은이의 인도를 받아야 했다. 의심도 해보았지만 결국 신뢰하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결국 신뢰란 무엇인가? 그것은 “깨뜨림이며, 확실성과 가능성 사이에 걸쳐 있는 지도에 만들어진 지름길이다”(p. 97). 깊이 음미해볼 말이다.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것, 그것은 의미있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일이다.
저자는 우리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을 소개한다. ‘남자’라는 제목으로 용기있는 인생을 산 남자 중에 ‘상남자’ 체 게바라(Che Guevara)의 삶을 말한다. ‘순수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페루의 테러리스트, 네스토르 세르파 카를톨리니(Nestor Cerpa Cartoloni)와 그의 연인 낸시 길보니오를 말한다. 가장 인상적이고 충격적인 것은 ‘사랑 중독자’라는 타이틀로 시드니의 롱베이 감옥에 수감된 동성애자 셰릴과 웨인의 이야기다. 그들은 일탈자이며 범죄성향이 있는 자들이지만, 서로간의 사랑은 진실했다. 저자 알폰소 링기스 교수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이상한 얘기를 들으면 특색이 있다는 뜻으로 얼른 바꿔 생각하고, 괴상한 얘기를 들으면 예외적이라는 뜻으로 얼른 바꿔 생각한다. 그런데 왜 성적인 문제에 있어서 비정상적이라는 말은 곧이곧대로 비정상이라는 뜻으로 들리며 굴욕감을 느끼는 것일까?”(p. 156). 그렇다. 나는 상당히 열린 사고방식을 지향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저자의 지적처럼 동성애에 관해서는 얼마나 닫혀 있었는가!
저자는 다양한 종교적 색채가 있는 곳들도 여행했다. 이스탄불의 소피아 사원, 티벳 불교의 죽음의 성찬식인 ‘초드’ 의식, 인간의 대퇴골로 만든 몰공의 의식용 나팔, 에티오피아 북부 랄리벨라에 있는 석굴 교회, 등. 결국 이 책은 말한다. 사람들의 삶은 너무나 다양한 색깔을 띠고 있으며, 내가 다 이해할 수 없어도 그들도 의미있는 삶을 살았다고 인정해야 한다. “사려 깊음이란 받은 것에 마음을 열면서 시작된다”(p. 259)고 말하는 저자는 이 책 말미에서 “때로 진실이란 볼 수 있는 가능성을 넘어선 것을 보는 것이며, 차마 보기 힘든 것을 보는 것이며,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넘어선 것을 보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남긴다. 인간의 다양한 삶의 모습과 그 안에서의 신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멋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