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 인간과 자연에 대한 아포리즘
에릭 호퍼 지음, 정지호 옮김 / 이다미디어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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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4년 전 <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를 읽으면서, 평생 떠돌이 노동자로 살면서 인간과 삶의 진실을 찾아 깊이 사유(思惟)한 결과물인 그의 철학적 아포리즘을 만나고 싶었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아포리즘인 <인간의 조건>은 나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학자연하지 않고 인간의 본성과 인간 사회에 대해 이렇게 깊은 통찰력을 드러낼 수 있다니 놀랍다.

 

“인간의 창조성의 원천은 그 불완전함에 있다. 인간은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보충하기 위해 창조력을 발휘한다. 특화된 기관이 없기 때문에 호모 파베르가 되었고, 타고난 기술이 없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호모 루덴스가 되었다. 동물의 의사소통 수단인 텔레파시 능력이 없어 말을 하게 되었고, 본능의 무력함을 보완하기 위해 사색가가 되었다.”(p. 15).

인간의 위대함은 역설적이게도 그 ‘치유할 수 없는 불완전함(incurable unfinishedness)’에 있다는 호퍼의 냉철한 판단은 옳다. 인간은 불완전할 뿐 아니라 그 내면에 비열함과 가증스러움도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인간은 그 악함과 비열함을 자비와 사랑으로 승화시킬 줄 알았다. 그렇다. 인간이 인간다워진 것은 한순간 뛰어오르는 도약이 아니라, 생존을 향한 모색인 “영혼의 연금술”(p. 38)에 있었다. 인간화에 대한 에릭 호퍼의 통찰력 넘치는 아포리즘을 ‘용과 악마 사이에서’라는 타이틀로 묶은 것은 매우 적절하고 현명하다.

 

“인간 사이에는 얼마나 많고 깊은 분열이 존재하는가! 인종, 민족, 계급, 종교 사이에만 분열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남과 여, 노인과 젊은이, 병자와 건강한 자도 서로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서로 이해해야만 같이 살아갈 수 있다면 사회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p. 198).

에릭 호퍼의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는 사회에 대한 통찰력으로 이어진다. 그는 인간에게 병자, 장애인, 노인을 돌보는 동정심이 없다면 문화나 문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이 아니라, 부적자(不適者)까지 함께 끌어안을 때, 인간 사회는 비록 수많은 분열이 존재하고 계층 간에 서로 이해하지 못해도, 사회의 인간화는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간인 우리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자신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우쭐댈 때, 인간은 가장 하찮아진다. “하찮은 인간일수록 자신을 대단하게 여긴다”(p. 176). 이 아포리즘은 지나치게 의역했다.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의 하찮음은 우리가 스스로를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과 비례한다(Our triviality is proportionate to the seriousness with which we take ourselves.). 즉, 인간이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생각할수록 하찮은 존재가 될 것이란 의미다.

 

“교육의 주요 역할은 학습 의욕과 학습 능력을 심어주는 것이다. 교육은 배운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을 양성해야 한다.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회는 배우는 사회이며, 그곳에서는 조부모도 부모도 모두 학생이다.”(p. 57).

이 아포리즘은 <에릭 호퍼, 길위의 철학자>를 읽으면서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 놓은 것 중 하나다. 호퍼는 정규 교육을 많이 받지 못했지만, 엄청난 독서량과 깊은 사색으로 평생 배우는 자로 살았다는 점에서 인간다운 인간이며 진실한 철학자였다. 호퍼를 따라 나도 평생 배우는 자로 그리고 깊게 사색하는 삶의 철학자로 살고 싶다. 정말 마음에 드는 책이다. 그의 또 다른 저서 <영혼의 연금술>, <맹신자들>, <부두에서 일하며 사색하며>, <시작과 변화를 바라보며>, 등도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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