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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심심한 날의 오후 다섯 시
김용택 지음 / 예담 / 2014년 2월
평점 :
미세먼지가 거친다고 하더니 여전히 사방 뿌옇습니다. 몸이 피곤하고 잠이 쏟아집니다. 간신히 오전의 일을 마치고 사무실 의자에서 한참을 자고 일어났는데 여전히 졸립군요. 김용택 시인의 <심심한 날의 오후 다섯 시>를 읽었습니다. 심심해서 세상이 자세히 보였고, 자세히 보니까 생각이 일어나, 그것을 글로 옮겼더니 시가 되었답니다. 그는 심심해서 시를 썼답니다. 그는 “시는 외로움과 시절의 배고픔과 사랑의 그리움 속에서 간절하게 솟아나는 맑은 생수”(p. 75)라고 말합니다. 나는 여전히 졸리고 피곤합니다. 시인은 오후 다섯 시 이슬비 오는 운동장 가 미루나무 잎이 흔들릴 때 정호승의 시를 읽으며 님이 왔는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오후 여섯 시 시인의 글을 읽으며 찾아 온 ‘졸음’ 님을 반깁니다. 날씨가 많이 포근해지고, 해도 상당히 길어져 오후 여섯 시도 환하군요. 그 환한 오후 여섯 시 나는 미세먼지와 독감 기운으로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으로 님을 끌어안습니다.
시인의 글을 언제나 정감이 넘치고 따뜻했습니다. 그의 시에는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아 좋습니다. 그는 괭이질과 호미질을 배울 때 아버지가 하신 말씀, ‘늘 힘을 빼야 한다’는 말씀을 명심한 듯합니다. “나는 감나무를 좋아한다”(p. 120)로 시작하는 ‘감나무’를 읽고 있노라면 시인의 고향 감나무들이 눈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아니 나는 어느새 여러 감나무가 있는 시골에 서 있습니다. 시인의 글은 언제나 고향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는 청춘의 시절에 해 저무는 봄날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해질녘의 푸른 어둠은 나무와 나무, 산과 산, 바위와 바위 사이를 긴장시켰다”(p. 174)과 회상합니다. 시간이 지나 모든 것들이 어둠을 넉넉하게 받아들이는 순간, 시인은 긴 숨을 내시며 안심합니다. 그리고 툇마루에 나와 앉아 강물에 죽고 사는 달빛을 바라봅니다. 달빛이 그의 몸을 덮어 주고, 지친 발등을 환하게 밝혀줄 때, 시가 그에게로 왔습니다.
나는 이런 시인 김용택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교훈적이 되어간다는 생각이 드는 글들도 눈에 띄는군요. 아내도 이 책을 읽고는 이전의 김용택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드는 글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자연과 일상을 순수하게 시로 글로 표현하던 시인이었는데, 점차 ‘꼰대’가 되어가는 것인가요? 하긴 그도 젊은 시인의 글들을 대하고는 이렇게 썼습니다. “옳은 말만 하는 꼰대들은 지루하다. 뻔한 시들이 판을 친다. 하나 마나 한 글들이 판을 친다. … 새로운 젊은 시인들의 시에서 나는 근대를 넘어선 현대의 짙은 음영을 본다. … 저기 저 강굽이에 버드나무 한 그루가 흐르는 물 위로 늘어져 물을 보며 새 눈을 틔운다. 나의 한계다”(pp. 112~114). 나는 여전히 시인 김용택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너무 크고 위대한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고 차분히 지적하며, 일상의 ‘하찮은 가치들’을 찾아 노래하는 그 시인을, 그의 글들을 좋아합니다. 나른한 봄 날 오후 김용택의 글은 시가 되어 나에게 찾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