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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더할 것은 없다 - 율법을 벗고 복음의 본모습을 보다
앤드류 팔리 지음, 안지영 옮김 / 터치북스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복음에 더할 것은 없다>를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교회의 전통과 인간의 행위에 얽매여 신앙생활을 했는지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열심히 성경도 읽고 기도도 했습니다. 교회에서 이런 저런 봉사도 하고 착한 일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론 구원은 이런 행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임을, 나도 믿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이런 일들을 좀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의 나의 모습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내면의 깊은 곳에 여전히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 책은 내가 정말 복음을 제대로 알고 믿고 있는지 도전합니다. 내가 받은 충격 몇 가지를 적어봅니다. 첫째, 나는 사도 바울처럼 ‘날마다 죽는다’(고전15:31)라는 고백과 함께 나의 악한 자아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앤드류 팔리 목사님은 사도 바울이 어떤 의미에서 이 고백을 했는지 성경의 앞 뒤 문맥을 통해 정확하게 알려 주었습니다. ‘날마다 죽는다’는 것은 자아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날마다 육체적 죽음에 직면한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p. 143). 둘째, 나는 날마다 나의 죄를 고백하며(요일1:9) 더 경건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기도하지 못함을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앤드류 목사님은 이 말씀이 죄를 고백해야 하나님이 용서해주신다는 뜻이 아님을 지적해 주었습니다. 이 말씀은 자신을 죄없는 완전체로 주장하는 그노시스파를 위한 초대장이라는 것입니다. 즉,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날마다 죄를 세어 보도록 요구하는 요청서가 아니라 이교도들에게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라는 초청장인 것입니다(pp. 196~203).
이 책은 그동안 내가 성경을 얼마나 율법적으로 해석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십일조에 관해서도 지나치게 율법적으로 행했습니다. 예정론에 관해서도 너무 좁은 시각을 가졌습니다. 바울은 ‘택하심’이라는 말로 그리스인(이방인)도 하나님의 구원계획 안에 있음을 표현했는데, 나는 예정론을 지나치게 개인 구원에 관한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또 고난에 관해서도 그렇습니다. 나에게 고난이 올 때, 나는 언제나 나의 죄악만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물론 고난이 나를 훈련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일수도 있음을 알지만, 하나님의 은혜보다 나 자신의 문제에 더 초점을 맞추며 살았습니다.
이 책 마지막 문장이 나에게 자유를 줍니다. “율법은 말한다. ‘최대한 노력하라.’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최대한 내 안에서 안식하라.’ 더 많이 바라고 원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은 이미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는 그 예수님과의 친밀한 연합에 초대받았다.”(p. 271).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보신다는 복음을, 나는 지금까지 놓치고 살았습니다. 이 책의 저자 애드류 팔리(Andew Farley) 목사님의 다른 저서, <벌거벗은 복음>이 궁금해져서 검색해 보았습니다. 애석하게 아직 번역이 되지 않았군요. ‘터치북스’에 이 책 번역을 부탁하면서, <The Naked Gospel: The Truth You May Never Hear in Church>를 인터넷 서점에서 찜해 둡니다. 빠른 시일 내에 구입해 읽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