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의 침묵 - 불가능한 고백, 불면의 글쓰기
김운하 지음 / 한권의책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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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이 책에서 치열한 글쓰기에 대해 말합니다. 그것은 불면의 글쓰기입니다. 그는 시간과 삶의 이야기, 언어와 침묵, 사랑의 이미지를 탐색합니다. 저자는 끝없이 아름다운 문장을 욕망합니다. 그래서 롤랑 바르트가 말한 “무지막지한 품사인 형용사”를 혐오합니다. 왜냐하면 “형용사는 사실보다는 가치 평가에 지나치게 깊이 연루되어 있고, 그것이 존재들에 대한 폭력을 야기하기 때문”(pp. 18~19)입니다. 그는 진정 자유로운 문장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참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언어보다 침묵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옛 선비들은 만권의 책을 읽거나 만 리의 길을 여행한 뒤라야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다죠. 글쓰기는 인생 그 자체이며, 심오한 고뇌와 성찰입니다. 그런 점에서 책은 곧 글 쓰는 자기의 영혼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김운하에게 있어서 글은 곧 신(神)입니다. 그는 성경 전도서를 인용하면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시간과 운명이 그들을 세상에 내려 보낸 까닭이 특정한 사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 한 편의 작품,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그 문장을 위해서였다”(p. 42). 이 정도로 글쓰기에 미쳐야 진짜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는 조선 후기 시인 김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연희라는 관기와 사랑을 나누며 <사유악부>라는 시문집을 지었답니다. 여기서 ‘사유’(思牖)는 “들창문으로 새어드는 빛을 받으며 생각에 잠기는 것”이라고 친절히 설명합니다(p. 48). 김려의 오랜 유배 생활이 아름다운 시를 낳고, 보르헤스의 시력 상실이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도서관장에 임명되게 되었듯, 인생의 시련은 오히려 문장을 빛냅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시문집을 낸 김려, 오직 한 명의 독자 어머니에게 읽어 주기 위해 <구운몽>을 쓴 서포 김만중의 경우에서 보듯, 문학은 돈으로의 교환가치가 아니라 사랑의 가치에 본질적으로 묶여 있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에 동감합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글쓰기에 푹 빠지는 것일까요? 작가는 인상깊은 이야기를 들려 줌으로써 답합니다. “늙은 노새의 노래”(pp. 72~76). 어느 선비가 앞 두절의 시구를 짓고는 평생 아름다운 시구를 찾아 평생 노새를 타고 방랑하다 마지막 뒤 두 구절의 시구를 짓고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이 시는 이제 보니 너(노새)를 위한 시였구나. 이제 됐다. 이걸로 내 생은 충분하구나. 그만 가자꾸나” 늙은 선비와 노새는 강을 건너 어느 마을에 도착했고 며칠 후 선비도 노새도 고요히 눈을 감았습니다. 세상은 그들을 잊고, 하늘에는 여전히 구름들이 뒤섞였다 다시 흩어집니다.

  나는 김운하의 글에 담겨있는 문학과 글, 인생과 철학에 대한 넓이와 깊이에 감탄하며, 사람과 인생에 대한 그의 이야기에 푹 빠졌습니다. 사유(思惟)와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사랑이, 그의 고독과 그의 침묵이, 그의 치열한 글쓰기가 이 책을 빛나게 합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책 읽기’에 대해 쓴, 그의 또 다른 책 <카프카의 서재>도 찾아 읽어보아야겠네요. 이런 책을 읽게 되어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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