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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나에게 이윤기는 작가라기보다 번역가였습니다. 작가는 글을 창작하는 자이고, 번역가는 글을 옮기는 자라는 단순한 생각이었죠. 그런데 이 책,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를 읽으면서 이윤기는 진정한 글쟁이라고 평가하게 되었습니다. 이윤기의 딸, 이다희가 서문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아버지가 때로는 원칙주의자처럼 말을 대하고, 때로는 언어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기도”(p. 7) 했습니다. 이윤기는 “길을 따르지만 길에 갇히지 않는 말, 정교하고 섬세하면서도 살아 펄떡이는 말에 대한 집착”(p. 9)이 있습니다. 그는, 가사 좋은 유행가를 부르면 몸이 가벼워지듯 - 그는 실제로 노래를 무척이나 잘 불렀다는 군요 - 글을 쓰면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진정한 글쟁이입니다. 작가 스스로는 ‘글 읽기’에 관한 한 황희 정승만큼 행복하지만, ‘글쓰기’에 관한 한 행복하지 못하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그의 고백은 그가 자신만의 말맛을 만들어 내려고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며 공부했는지를 슬쩍 보여주는 대목에 불과합니다. 그가 수많은 책들을 번역한 것은 글쟁이로 본인이나 한글을 사랑하는 나 같은 독자 모두에게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는 번역이 단순히 언어의 변화가 일어나는 ‘물리적 변화’여서는 안 되고, 텍스트의 문장이 우리말로 변하게 되는 ‘화학적 변화’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것이 “다만 희망 사항일 뿐인가?”(p. 103)하고 반문했지만, 본인 자신이 그 일을 이루어 냈습니다. 그는 마치 카잔차키스의 조르바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글의 ‘메토이소노(聖化)’를 이루어 낸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는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문법 파괴의 말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오히려 한 치 어긋남이 없는 글들은 좀 무표정하고, 누리꾼들의 부리는 말에는 다양한 표정이 있는 보석같이 반짝인다고 무한한 호감을 드러냅니다(pp. 243~252). 그는 글에 관한 한 영원한 자유인 ‘조르바’입니다.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는 색과 색의 배합 후 만들어진 짜릿함을 경험케 하듯 언어 배합의 절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이윤기가 이미 가보고 확실히 알고 있는 언어의 보고(寶庫)로 독자의 손을 잡아끕니다. 글쓰기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나도 이윤기처럼 나만의 말맛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그가 번역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어보아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