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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과 유토피아 - 니체의 철학으로 비춰본 한국인, 한국 사회
장석주 지음 / 푸르메 / 2013년 6월
평점 :
한국인으로 자기 정체성과 한국 사회에 대한 객관적 시각을 가지질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참 많은 것들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하면 된다’라는 구호 속에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쳐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 내면에 성취지향적 몰이성성을 부추기며 전혀 예상치 못한 병폐와 도덕적 위기도 함께 불러”(p. 302) 왔다고 작가 장석주는 말합니다. 그의 말대로 이제는 ‘하면 되는’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을 정직하게 분명하고 차가운 이성으로 우리 삶의 실체를 들여다보아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한국사회와 한국인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을 차가운 이성으로 들여다보도록 도전합니다.
아버지의 부재 속에 ‘후레자식들의 막돼먹음’이 판치는 사회, 그 속에서 아버지는 니체가 말한 ‘낙타’나 ‘노새’에 불과합니다. “짐깨나 지는 정신”(p. 63)은 악마의 짐을 져야할 때조차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하는 낙타처럼 그저 무력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이 땅의 아버지들은 성실히 살았지만, 노예의 도덕을 내면화한 존재들입니다. 이 사회는 행복강박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전사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거침과 난폭함, 조급증, 빨리빨리 문화, 떼거리 근성을 이제는 버려야 하는데, 전쟁과 역경은 우리의 내면의 형질과 유전자까지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제는 “짐깨나 지는” 낙타에서 “‘아니오’라는 부정 정신”인 사자로 도약해야 합니다(pp. 88~96). 저자는 이런 식으로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동물들을 한국사회의 모습에 병치시켜 은유적으로 말합니다. 학벌주의에 병든 사회와 허영꾼 ‘원숭이’를, 불안과 강박증에 시달리는 사회와 현명한 동물 ‘뱀’을, 가족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와 타조를 연결시킵니다. 타조는 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이 그저 생명 보존과 종 번식만을 생각하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pp. 177~186)입니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니체의 철학에 비추어 한국 사회와 한국인의 내면을 냉혹하리만큼 이성적으로 들추어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때로는 무릎을 치고 동감하고 때로는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분명한 것은 저자의 주장대로, 우리 마음의 무늬가 계속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억눌린 과거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한(恨)”이라는 독특한 마음의 무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면서 ‘한’이라는 마음의 무늬는 ‘흥(興)’으로 바뀌어 한국 사회를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로 규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흥’이 피상성, 허세, 들뜸, 몰염치 등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탐욕이 판치는 ‘동물원 사회’는 분명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모습입니다. 이제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며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자, 혹은 높은 곳에서 심연을 응시하는 독수리처럼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고 타인을 위한 삶, 즉 이타주의적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 책은 우리 사회와 그 안의 우리 자신을 차가운 이성으로 들여다보게 할뿐 아니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훌륭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저자가 참고한 도서들에 눈길이 갑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책들이군요. 도전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