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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멍의 쾌활한 장자 읽기
왕멍 지음, 허유영 옮김 / 들녘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장자의 가르침을 호방하게 재해석한 왕멍의 책을 읽으면서, 장자 사상의 핵심을 어렴풋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장자는 유교의 도덕지상주의의 위선을 꼬집었습니다. 덕으로 사회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을까요? 장자는 회의적입니다. 유가의 가르침은 마치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아서는 것(螳螂拒轍)처럼 주제넘은 것이라고 지적합니다(p. 169). 법으로서 나라를 다스리고 제도를 만드는 것이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장자는 성선설보다는 성악설을 더 선호한 듯합니다. 하지만 장자가 ‘도법자연(道法自然), 즉 도와 법은 모두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보면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는 선함도 또한 어느 정도 인식한 듯합니다. 그래서 아무런 노선이나 목표를 배제한 채 모든 일을 백성들의 본성에 따라 행하라고 말합니다(p. 172). 이렇게 성선설과 성악설 모두를 아우르는 가르침에서 장자의 천재성이 드러납니다.
이 책, 처음부터 쉽지 않은 내용으로 가득 차 있지만, 또한 흥미로운 가르침으로 가득합니다. 천리마를 만들 수 있는 백락은 사람에게는 칭송의 대상이지만, 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수많은 말을 죽인 죄인이기도 하다고 장자는 말합니다. 왕멍은 이런 장자의 논리는 매우 설득력있고 현심감이 넘친다고 평가했습니다. 참으로 장자의 사유(思惟)는 기발한듯하면서 정곡을 찌릅니다. 아주 오래 전에 가톨릭 신부인 토머스 머튼의 「장자의 도」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쓸모없는 나무는 도끼질을 당하지 않는다는 ‘장자 1편 7절’의 이야기가 오래 마음에 남았었습니다. 유용성을 강조하는 현시대에서 조차도 쓸모 있는 사람만이 필요하거나 그들만이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쓸모 없음의 쓸모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라고 토머스 머튼은 해석했습니다. 한편, 왕멍의 책 13부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장자가 산에서 잎이 무성한 나무가 베어지지 않은 이유가 쓸모없기 때문임을 알고 이렇게 말했답니다. “이 나무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타고난 수명을 다 누리는구나.” 그런데 그날 친구 집에 머물 때, 친구가 하인에게 거위를 잡도록 했는데 잘 울지 못하는 놈을 잡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장자의 제자가 물었습니다. “어제 산 속의 나무는 쓸모가 없어서 천수를 다 할 수 있었고, 오늘 주인의 거위는 쓸모가 없어서 죽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떤 경지에 처신하시겠습니까?” 장자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의 중간에 머물 것이다.”(p. 430~431). 장자의 말들은 우리가 종종 놓치는 진리의 다른 면을 잘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 대한 왕멍의 해석 또한 흥미롭습니다. “장자는 대립하고 있는 양극단의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많으며 이 양극단조차도 서로 바뀌고 변화할 수 있음을 알려 주었다”(p. 433).
‘아는 것이 많으면 어리석은 일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p. 435)는 가르침, ‘빈 배가 부딪히면 화를 내지 않지만 한 사람이라도 타고 있으면 화를 낸다’(p. 441)는 빈 배 이론, ‘매미 잡는 사마귀의 뒤에 참새가 있다’는 이야기(p. 465), 등은 인생을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런 장자 가르침을 풀어내는 왕멍의 글솜씨는 마음에 깊은 울림을 가져왔습니다. 이 책, 책장 손닿기 쉬운 곳에 꽂아두고 가끔 들추어 보고 싶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