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깁니다. 낙태의 문제는 ‘선택옹호론’(pro-choice)과 ‘생명옹호론’(pro-life)사이의 논쟁 구도이고, 저는 생명옹호론을 더 지지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낙태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의 예로, 낙태를 금지하는 법을 시행하는 나라의 낙태율이 그렇지 않은 나라보다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다고 합니다. 게다가 낙태법을 시행하는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낙태는 하나같이 위험합니다. 여자의 선택권보다 생명의 생존권이 더 중요하다는 가치는 옳지만, 낙태를 무조건 죄악시하고 법으로 막는다고 생명이 존중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생명을 더 위험하게 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이 책은 낙태에 관해 매우 친절하게 가르쳐줍니다. 1장에서 태아가 하나의 독립적인 생명체로 살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인공유산을 할 수 있는가의 기준이라고 말합니다. 2장에서는 낙태법의 역할을 말하는데, 종교적 믿음이나 사회의 전통적 가치관이 낙태법보다 더 영향력이 큼을 알 수 있습니다. 3장에서는 불법 낙태를 막기 위해서는 법 자체보다 의료 보장과 사회 복지가 향상되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의료의 발전과 피임 등을 통해 낙태의 필요성이 줄어들도록 하는 것이 관건일 것입니다. ‘4장, 낙태의 역사’는 간략하지만 흥미롭군요. 특히 중세 기독교회는 낙태는 영아살해의 죄라고 천명했지만, 어느 시점의 태아를 생명으로 인정해야 하는지에 혼란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800년대에 들어 로마가톨릭과 기독교 단체에서 배 속의 아기는 수정되는 순간 영혼을 갖게 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하지만 1900년대 말에 의료기술의 발달과 성적 자유라는 새로운 가치관에 따라 낙태는 훨씬 더 보편적이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5장에서는 생명의 문제를 다루면서, 낙태의 도덕적 관점을 견지하기 위해 꼭 종교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밝힙니다. 6장에서는 태아의 생명권을 다루는데, ‘사례탐구’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장애인들은 태아에게 장애가 있으면 낙태할 수 있다고 명시한 법이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한 법이 장애인을 ‘정상적’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사람이라는 암시를 준다는 것이다. … ”(p. 98). 태아가 심각한 장애가 있을 때에는 낙태를 허용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장애’가 있다고 생명이 덜 존귀한 것은 아니니까요. 또 그들이 정상인보다 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다 읽으면 낙태에 대해 좀 더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오히려 더 혼란스럽네요. 그렇지만 7장에 나오는 이야기가 마음에 많이 와 닿았습니다. “… 개인이 낙태에 대해 권리와 책임을 갖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보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 그러면 낙태는 최후의 수단으로만 선택될 것이며, 처음부터 원하지 않은 임신을 피하는 데 더욱 더 노력을 기울이게 될 거예요.”(p. 108). 대한민국이 생명과 사람의 인권을 모두 존중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실 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한 사회의 올바른 가치관이며, 다양한 의견을 서로 경청하고 합리적으로 제도를 만들어가는 일이 필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