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무게
에리 데 루카 지음, 윤병언 옮김 / 문예중앙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문장이 담백합니다. 산양 왕이 어린 시절 누이를 독수리에게 잃고 혼자 남겨진 채 산양의 왕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이 담담하면서도 아름답게 묘사됩니다. “하얀 나비들이 결투에서 이긴 승자의 피 묻은 뿔 위에 내려앉았다.”(p. 18). 뒤 이어 사람들이 산양의 왕이라고 부르는 사냥꾼이 나옵니다. 스스로를 도둑놈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상처 입은 고고한 영혼의 소유자입니다. 그의 총신에도 나비가 앉습니다. “총 위에 올라앉은 나비는 총을 희롱한다. …나비는 조준점을 옮겨 다니며 아무 데나 가서 앉아버린다. 나비가 내려앉는 곳이 바로 중심이 되고 마는 것이다.”(p. 61).

  드디어 11월 겨울의 장막이 내려앉고 있을 때, 사냥꾼은 산양의 왕을 만납니다. 산양의 왕은 사냥꾼을 짓밟아 죽일 수 있었지만, 사냥꾼의 목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작가는 그 순간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것은 바람이었다. 다리와 뿔을 차려 입은 바람이었다. 그는 바람이었다. …”(P. 114). 그러나 사냥꾼은 산양의 왕에게 총을 겨누고 11그램짜리 탄환이 그 심장을 뚫고 지나갑니다. 짐승은 사냥꾼을 살려주었지만, 그는 짐승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산양의 왕의 내장을 독수리에게 넘겨주고, 사냥꾼은 산양의 왕을 어디엔가 묻어주기 위해 어깨에 들쳐 메고 발걸음을 옮깁니다.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가 퍼지고, 사냥꾼은 짐승을 업은 채, 서 있습니다. 어디선가 나비 한 마리가 산양의 왼쪽 뿔 위로 앉았습니다. 그리고 사냥꾼은 산양을 어깨에 걸친 채 고개를 앞으로 숙이며 쓰러집니다. “그건 세월의 무게에 더해진 깃털, 모든 걸 무너트릴 수도 있는 깃털이었다.”(P. 125)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소설입니다. 옮긴이의 말에 있는 것처럼, “데 루카는 말들에 지극한 정성을 쏟아 붓는 작가”(P. 150)임이 분명합니다. 작가, 에리 데 루카의 이력이 남다릅니다. 기계공, 트럭 운전사, 미장이 등 수없이 많은 직업을 전전했으며, 성서 연구가이며 등반가이기도 합니다. 그런 삶의 이력이 그의 글을 깊게 만든 것은 아닐까요? 제목이 마음에 듭니다. 나비의 무게는 삶과 고난의 무게입니다. 한편, 삶과 죽음은 나비의 무게만큼이나 가벼운 것입니다. 짐승이든 사람이든 삶과 죽음은 그렇게도 허망하면서도 숭고한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말로 표현하기 힘드네요. 

 

  다시 처음보다 더 천천히 한 문장 한 문장 입술로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에리 데 루카를 기억할 것입니다. 그의 책이 또 번역된다면 꼭 읽어볼 것입니다. 아름다운 책을 읽었고, 영혼이 정화되는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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