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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 - 개정판
옥성호 지음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저자 옥성호는 ‘은사중지론’의 입장에서, 오늘날의 방언은 더 이상 성경적인 방언이 아니라고, 성경적 방언은 뜻 모를 ‘신비한 하늘 언어’가 아니라 ‘외국어’로서의 언어였다고 주장합니다. 이 책은 방언과 관련된 신약성경의 본문들을 철저히 연구합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오순절 사건(행2:1~22), 사마리아인 회심 사건(행8:12~17), 고넬료 회심 사건(행10:43~48), 그리고 에베소 세례 요한 제자들의 회심 사건(행19:1~7)을 살펴봅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방언 사건은 구속사적 관점에서 새로운 교회의 시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마무리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자에 따르면, 방언은 사도들의 사역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모두 ‘외국어’였다고 주장합니다. 오순절의 방언은 분명 외국어였습니다. 그것은 다양한 지역에서 예루살렘에 온 사람들이 복음을 듣도록 성령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통해 역사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고넬료의 집에서의 방언이나 세례 요한 제자들의 회심 사건에서 일어난 방언이 모두 ‘외국어’였을까요? 본문은 그런 암시조차 없으며, 외국어일 필요도 없습니다.
한편, 저자는 고린도전서 12, 13, 14장도 진지하게 살펴봅니다. 그는 먼저 고린도 교회의 배경적 연구를 통해 고린도 도시의 이방 종교에 이미 혼란스러운 방언 현상이 넘쳐났는데, 바울은 교회 밖의 방언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외국어로서의 방언만을 염두에 둔 채 고린도전서를 쓰고 있다고 전제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모든 종교에 방언이 존재하고, 플라톤도 그 ‘혼란스러운’ 방언을 신의 선물이라고 인정했다면, 바울도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또 저자가 지적하듯 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방언을 확연하게 평가절하하고 있다면(p. 141), 이것은 바울이 외국어로서의 방언이 아니라 신비한 체험으로서의 방언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은 아닐까요? 또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방언을 하지 말라는 권면이 방언이 통역할 수 있는 외국어라는 뜻일까요? 오히려 사도행전의 오순절 방언은 통역이 필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사용하는 말들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통역이 필요하다는 뜻은 오히려 일반적인 외국어로는 해석할 수 없기 때문에, 통역의 은사를 받은 자의 통역이 필요하다는 의미는 아닐까요?
어쨌든 오늘날 교회에서 유행하는 방언들이 성경적 방언이 아니고, 그 폐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저자는 방언에 대한 깊은 회의 속에 성경을 연구한 듯합니다. 저자가 옳게 지적했듯, 오늘날의 방언은 학습과 훈련으로 습득 가능하다는 점에서, 또 모든 종교와 이단들에서도 방언이 있다는 점에서, 방언을 모두 성령의 은사로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적 방언은 모두 외국어 방언이었고, 또 그 방언은 사도의 표시로 이미 끝났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편협하다고 느껴집니다. 물론 나도 방언이 신앙생활에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기독교의 능력은 오직 말씀에 따라 예수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성경해석과 주장에 동의하든 안하든, 방언을 경험하고 그 경험으로 믿음이 깊어졌다고 생각하는 분들이나 잘못된 방언의 위험을 인식하고 성경적 방언이 지금도 가능한지 고민하는 분들, 모두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 생각됩니다. 이 책은 방언에 대한 고민과 진지하게 성경 본문을 해석하고자 하는 훌륭한 모습이 잘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