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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전 - 거장들의 자화상으로 미술사를 산책하다
천빈 지음, 정유희 옮김 / 어바웃어북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자화상, 그것은 화가의 정체성을 보여줍니다. 한 화가가 그린 여러 장의 자화상을 차분히 들여다보면 그의 인생과 예술관의 변화를 알아챌 수 있습니다. 중국 중앙미술대학교 교수인 천빈은 화가의 자화상을 전적으로 연구한 학자입니다. 그는 전세계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자화상들을 찾아보았답니다. 그의 꿈은 거장들의 자화상을 한데 모아 전람회를 열어 보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꿈만 꾸다 그만둘지도 모르지만, 그는 먼저 한 권의 책 안에 전람회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자화상 展」은 거장들의 자화상과 함께 화가의 여러 작품과 미술사적 의미까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어, 어떤 미술전람회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훌륭한 미술 공부를 하게 됩니다. 자화상전(自畵像展)답게 자화상만큼은 한 페이지 가득 풀 컷으로 수록해 놓아서, 작품을 직접 보지 못하는 아쉬움도 조금은 달랠 수 있습니다.
자화상 하면, 알브레히트 뒤러를 빼놓을 수 없겠죠. 저자도 뒤러의 자화상을 제일 먼저 수록해 놓았습니다. 오래전 나는 뒤러의 <모피코트를 입은 자화상>을 보고는 예수상으로 착각할 정도로, 이 작품에는 아름다움과 고귀함이 풍겼습니다. 이 자화상에는 ‘화공’이라는 기능인이 아니라 ‘화가’라는 예술가로서의 뒤러의 자존감이 가득 담겨 있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그리고 5년 후에 그린 <나체의 자화상>에 대해서는 이런 평가를 했습니다. “<나체의 자화상>은 우아함과 자신감으로 대표되던 이십 대의 자화상과 크게 다르다. 비록 젊은 나이에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내적 성찰이 자신 앞에 놓여 있음을 깨닫은 것이다”(p. 26). 통찰력 있는 해석입니다. 마지막에 뒤러의 서명에 관한 풀어 놓은 이야기도 훌륭합니다. 자신의 작품에 최초로 서명을 남긴 화가, 자신의 이름 이니셜 A와 D를 가지고 복합적인 문양을 만들어 분명한 자의식을 드러내며 작품에 최초의 서명을 남긴 화가! 뒤러의 많은 작품과 함께 뒤러의 미술사적 위치를 너무나 선명하게 배운 뒤러 전시실이었습니다.
이런 소 전시실이 이 책에는 자그만치 25개나 있습니다. 자화상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화가들, 렘브란트,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쿠르베, 그리고 피카소 등의 작품에 대한 해설은 그야말로 일품입니다. 미술사적 의미, 미술작품 감상법 등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더욱이 이 책 마지막에는 저자가 일일이 설명할 수 없었던 수많은 거장들의 자화상을 한 곳에 모아 놓았습니다. ‘거장들의 자화상 컬렉션’(Self-Portraits Collection)! 와, 굉장합니다. 액자에 담긴 수많은 자화상들, 처음 보는 화가도 있지만, 유명한 화가들의 자화상도 많습니다. 이런 자화상들을 보면서, 이 화가들의 다른 작품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처럼 나름대로 자화상의 의미를 해석해봅니다.
즐거운 미술관람전이었습니다. 책은 덮은 뒤에도 몇몇 자화상들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특히 피카소가 아흔이 넘은 나이에 그린 <자화상>은 극도의 추상적인 기법의 초상화로서 강렬한 기하학적 형상이지만, 그 안에는 직선으로 그린 열 아홉 살의 <소묘 자화상>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저자의 지적대로 “화가의 부리부리한 눈은 무한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예술의 미래를 비춘다”(p. 328)고 할 수 있습니다. 전시회에 자주 가고 싶지만 나처럼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는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합니다. 세상 그 어떤 갤러리에서도 경험하지 못할, 예술적 안목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