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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로 보는 한국 현대미술
박영택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저자 박영택 교수는 미술 평론가로서 한국의 수많은 미술가들의 작품을 보고 평론했던 글들을 ‘시간, 전통, 사물, 인간, 재현, 추상, 자연’이라는 관념적인 일곱 개의 키워드로 분류하여 하나의 책으로 묶었습니다. 그는 예술작품을 사유(思惟)를 촉발시키는 매개물이라고 설명합니다. 모름지기 예술가들은 인간의 삶에서 유래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사유하고 자신의 해석을 관통하는 형상물을 빚어내야 하는 것입니다(p. 6).
미술 작품을 좋아하는 나는 미술전람회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한국 현대화가의 작품은 한 두 분외에는 거의 접하지 못했습니다. 이 책은 저 같은 한국화가 문외한에게 큰 길잡이가 되며 한국현대미술의 현주소와 작품이해에 큰 도움을 주는 책입니다.
김종엽의 사진작품 <도시에 뜬 별 - 산동네의 밤, 2011>은 나를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한 예술작품입니다. 이 작품 속의 풍경은 내가 살던 동네의 한 골목을 연상시킵니다. 국가 경제가 힘차게 발전하기 시작하던 시절, 우리네 삶은 여전히 팍팍하고 치열했습니다. 그래도 우리 꼬맹이들은 동네 골목길에서 ‘다방구’ ‘술래잡기’ ‘구슬치기’ ‘망까지’ ‘자치기’ 등 참 많은 놀이를 하며 보냈습니다. 좁은 골목길에 어디서 그 많은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는지요. 저녁 해길 무렵, 어머니들이 ‘자기새끼’ 이름을 부릅니다. 하나 둘 씩 집으로 들어가고 골목길은 어둠이 내립니다. 무더운 여름밤에는 골목길에 돗자리가 깔리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밖에 나와 누웠지요. 어쩌다 ‘아이스케기’ 하나 입에 물고 있으면, 그렇게 행복했었는데… 어린 시절 일상의 한 단면이었던 동네 골목길의 밤풍경을 찍은 사진이 예술 작품일 수 있는 것은, 골목길이 근대성의 고민이 반영된 결과이자 사람이 주체가 되어 공간을 만든 결과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은 보기 힘든, 그래서 과거를 추억하게 하는 멋진 작품입니다.
유근택의 <a scene-gilbert grape, 2004>는 오늘 우리가 사는 아파트 내부를 그린 풍경화입니다. 풍경화하면 근사한 자연을 연상하지만, 박영택 교수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풍경이란 대지의 투사상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계기로 하여 ‘인간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이미지현상’이다”(p.74). 유근택의 그림은 매우 독특합니다. 모필 사생을 하고 호분과 과슈를 혼합한 물감으로 모필을 옆으로 뭉개듯 스치고 번져내는 독특한 화법으로, 형태감은 불분명해지고 화면에는 아련한 분위기가 몽환적으로 펼쳐집니다.
이왈종의 <제주생활의 중도>는 내가 직접 본 그림 중 하나입니다.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진 제주, 자신의 주거 공간, 꽃, 새, 바다, 배, 물고기, 등 모든 것이 나무 위에 달려있네요. 인간의 가장 행복한 순간들이 가득 담겨 있군요. 그의 그림에는 행복과 열락의 장면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외에도 책을 덮고도 오랫동안 잔상이 남은 작품들과 작가 박영택의 인상적인 평론들이 이 책에는 가득합니다. 안준의 <self-portrait, 2009>, 김아타의 <on-air project 110-7, 2005>, 이정웅의 <brush, 2008>, 정보영의 <바라보다, 2010>, 등등. 이 책, 한국 현대미술을 제대로 접하고, 감상하고 생각하게 합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한국인에게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