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수필
최민자 지음 / 연암서가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봄에 딱 맞는 수필집을 만났습니다. 조용히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마음이 가는대로 쓴 글들을 따라 나의 마음도 흐릅니다. 봄비가 여름비처럼 세차게 내립니다. 아파트 화단에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도, 구석에서 수줍은 듯 피었던 라일락 꽃도 마지막 향기를 토해내며 떨어지겠죠. 최민자 작가의 글, ‘냄새’가 떠오릅니다. 창덕궁 후문 가까이에 있는 늙은 향나무에 향내가 안 난다고 투덜대는 노인에게 시골이장님이 말했답니다. “아 이 사람아, 죽어야 나지. 산 나무는 냄새가 안 나는 벱이여.” 작가는 냄새에 대해 이런 사유(思惟)의 글을 남깁니다. “스러짐에 대한 저항, 존재의 마지막 안간힘 같은 것, 더 이상 만져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탄원 …… 냄새란 혹 죽음의 예감으로 풍겨내는 생명체의 절박한 항명(抗命) 같은 것일까”(p. 17). 갑자기 꽃향기가 처절하게 느껴지네요.

  최민자 작가의 글에는 자연과 일상의 삶에 대한 깊은 ‘봄(seeing)’이 탁월한 언어의 유희로 표현됩니다. 봄에는 그저 ‘봄’(見, seeing)만 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단순한 말장난이 아닙니다. 그는 생명이 절정의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갈 때에는 가던 길을 멈추고 바라봐야, 생명에 대한 예우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거미줄 하나, 몸에서 흐르는 진땀, 물의 파장, 콩나물 대가리 하나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습니다. 신발을 바라보며, 왜 발싸개의 이름이 신인지 알 것 같다고 말합니다. “존재의 가장 밑바닥에서 존재의 무게를 떠받치며 겸허히 동행해주는 그를 신이라 불러도 틀리지 않으리”(p. 32).

  그의 수필은 때로 시(詩)와도 같습니다. ‘억새’에 대한 그의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보십시오. “무른 살들 푸실푸실 흙이 되어 물러가 버려도, 캄캄하게 삭아 없어지지 못한 슬픔의 낱알들은 빈 들 강 언덕에 서리서리 돋아난다 …… 목쉰 바람 갈피갈피 일렁이는 구음 사이로 풍화된 슬픔의 날벌레들이 은빛으로 자욱하게 춤을 추며 흩어진다”(p. 75).

  제주에 대한 글들은 제주의 바람결에 저를 실어 그 섬으로 데려다 놓았습니다. 귓전 가득 모슬포의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저는 어느새 두모악에 있고, 수모루 할아버지를 만납니다.

  책을 내려 놓고 다시 홍차를 우려 봅니다. 작가의 글이 또 떠오르네요. “육신의 허기가 아닌 정신의 사치를 위한 시간, 차를 우리고 마시는 일은 신의 영역을 넘보는 행위 아닐까. 건더기가 아닌 향기를 향유하는 일은 신들이나 하는 식사법일 테니. …… 얼레에 매인 연처럼 바깥으로 나풀거리는 마음을 꿇어앉혀 차 한잔 곡진히 대접하는 시간 ……” 최민자의 「손바닥 수필」은 참 여운이 많이 남는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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