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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 원시의 자유를 찾아 떠난 7년간의 기록
제이 그리피스 지음, 전소영 옮김 / 알마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나는 제이 그리피스의 <시계 밖의 시간>(당대, 2002)을 읽으면서 시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경험을 했다. 이번에는 나의 어떤 고정관념이 여지없이 해부되고 박살날까? 이런 막연한 기대감으로 이 책,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을 대했다. 그리고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문명과 원시에 관한 나의 고정된 시각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경험을 했다. 이 책은 단순한 오지 여행의 체험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는 인간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야생성에 대한 새로운 탐구를 시작한다. 그녀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물질의 네 가지 원소로 생각했던 흙, 공기, 불, 물, 여기에다 얼음이라는 요소를 추가해서 여행의 밑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삶의 근원을 찾아 험난한 7년 동안의 여행을 떠났다. 그 여행에서의 사유(思惟)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땅(흙)! 우울증으로 영혼의 길을 잃은 그리피스는 아마존을 여행하면서 그곳 주술사로부터 ‘아야와스카’라는 강력한 환각성 약물을 받아먹는다. 그것은 마치 독미나리를 마시듯 말할 수 없이 역겹고, 별을 마시듯 눈부시게 놀라운 경험이었다고 고백한다(p. 29). 그녀는 아마존의 야생성을 경험한 것이다. 야생의 숲이 얼마나 생명력으로 넘쳐나는지, 만물이 섹스를 한다고 표현한다. 그것은 기독교로 문명화된 세상에서는 사악하다고 폄하되고 억압된 것들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 야생성에 진정한 생명력이 넘실댄다고 주장한다.
얼음! 북극은 파도가 얼음바다 밑에서 물결치고 빙산에서는 먹먹한 소리가 나는 음향의 세계다. 저자는 이누이트(Inuit)가 많이 사는 누바부트(Nunavut)로 여행을 떠났다. 북극은 황량한 황무지가 아니다. 북극의 혹한 속에서 이누이트는 오히려 그 자연에 안기는 삶을 산다. 저자는 빙하가 깨어질 때, 정신의 단층을 따라 엄청난 비명소리를 듣는다. 그 때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얼어붙고 침묵했던 마음이 분노를 터뜨리며 산산이 부서져야 진정으로 생명력이 넘치는 야생성을 회복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물! 저자는 인도네시아의 술라웨시(Sulawesi) 섬 근해에 바다 생활을 하는 바다 집시 바조(Bajo) 족을 찾아갔다. 그들을 통해 자신들도 알 수 없는 깊은 바다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바다는 언제나 시작으로 넘친다. 죽음과 생명이라는 상극의 연인이 바다 침대에서 뒹굴 때 모든 생명이 시작된다. “바다에는 경이로움과 영광 그리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종류의 정신을 지닌 고운 광택이 나는 짙은 남색의 야생성이 존재한다”(p. 371).
불! 저자는 호주의 그레이트샌디사막(Great Sandy Desert)을 찾아 갔다. 그곳은 유럽인들의 지도에는 아무런 특징도 없고 단조로운 지형으로 그려져 있지만, 원주민 예술가들에게는 색과 생명력, 움직임과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 곳이다. 그 사막의 모래는 영원성을 암시하고 모래언덕의 교차는 현재성을 암시한다. 그 곳 원주민들은 불의 전문가들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는 산불처럼 사방을 뛰어다니는 유목민의 충동이 있다.
바람(공기)! 저자는 제대로 된 지도 한 장 없이 웨스트파푸아로 떠났다. 그곳에서 한 때는 식인종이었던 사람을 만나 자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녀는 자유를 발음하는 순간 야생의 공기를 울리는 힘을 느꼈다. 길들여지지 않는 영혼은 바람과 같다고나 할까?
희극! 저자는 마지막으로 야생의 정신으로 희극이라는 챕터를 추가했다. 연인이자 친구였던 사람과의 이별은 그녀를 정신의 황무지로 거칠게 내몰았고, 결국 그녀는 외몽골의 불교 사원으로 갔다. 주술사도 만났고 자살도 생각했다. 그녀는 기독교가 현재의 삶을 무지개빛에서 회색빛으로 바꾸었다고 비판한다. 희극처럼 삶은 가볍고 자유로우며 야생성을 회복해야 한다.
제이 그리피스는 7년간의 여행을 통해 원시의 땅과 하얀 얼음이 우리의 존재를 얼마나 포근하게 감싸는지, 물과 불의 강렬함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에너지를 주는지, 원시의 바람이 우리를 얼마나 자유롭게 하는지 느꼈다. 저자는 우리가 존재의 근원에 있는 야생성, 그것을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한마디로 문화와 문명이라는 기치 아래 억눌리고 파괴된 원시의 야생성, 그것은 다시 회복되고 활짝 피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는 작가의 말에 일면 동의하지만, 한편으로 그녀는 원시와 야생성에 대해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고 낭만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