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바보새 되어 부르는 노래
최태선 지음 / 대장간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저자의 이력이 낯설다. 55년생 목사. 그게 다다. 이력에 관해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어 좋다는 그가 오히려 친근감 있게 다가온다. 그의 글들은 진솔하다. 목회하면서 신앙에 대해 깊이 고민한 흔적들이 곳곳에 묻어있고, 그가 인용한 시(詩)와 글들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다. 37편의 에세이를 3절로 나누어, ‘삶을 노래하다,’ ‘신앙을 노래하다,’ ‘하나님 나라를 노래하다’라고 제목을 붙였다. 글의 흐름이 부드럽고 읽기 쉽다. 그러나 내용은 결코 신변잡기식 잡담이 아니다.  

‘삶을 노래’한 1절의 글들은 그리스도인 개인의 성품과 삶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대체로 따뜻하고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운전대를 잡으면 수도승도 별 수 없고, 남의 글에 대한 이해보단 매몰찬 비난 등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사납고 거친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마음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조화석습(朝花夕拾)’ 즉, 아침에 떨어진 꽃은 저녁에 가서야 줍는다! 아침에 떨어진 꽃을 곧장 줍지 않고 떨어진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취할 줄 아는 여유로움도 필요하고, 번성의 과거와 쇠락의 현재 사이의 실존적 아이러니도 깊이 고뇌할 줄 아는 삶의 열정도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또 “가장 가난한 자가 되어 가난한 자들을 돕는다”는 사랑의 수녀회처럼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 남을 섬길 줄 아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을 노래’한 2절의 글들은 조금 더 급진적이다. 논리와 주장만으로는 교회와 개인의 신앙개혁을 이룰 수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저자는 윤동주의 시(詩), ‘십자가’에서 “십자가가 허락된다면”이라는 시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시인의 표현에는 십자가를 대하는 시인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기꺼이 십자가로 향하는 그의 결심에도, 그것이 자신의 결단이나 희생이라는 오만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지는 은총이라 여기는 시인의 겸손이 느껴집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희생이 아니라 은총입니다”(p. 117). 나 자신부터 신앙 생활하면서 마치 주님을 위해 대단한 희생을 하는 것처럼 행동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 저자는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눅9:23)에서 ‘지고’는 ‘귀중한 것을 품에 안고 가다’라는 의미가 있는 헬라어 ‘바스타제인’이라고 지적한다. 즉, 십자가는 희생이 아니라 영광이며, 소중이 여기고 품에 안고 가야 하는 것이란다. 나의 신앙생활은 얼마나 무례하고 교만했는지 모른다. 나 자신부터 개혁해야 한다. 그것은 나의 삶의 태도와 성품의 바꿈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며, 하나님과 하나님의 인도를 겸손히 ‘받아들이는 일’부터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노래’한 3절은 현실 교회를 향해 서슬이 시퍼런 칼을 들이댄다. 그러면서도 균형이 잡혀 있다. 그는 “교회는 개혁하는 장소가 아니라 경축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브래넌 매닝의 글을 인용하며, 교회가 기쁨의 회합, 의와 평강과 희락이 실현되고,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샬롬을 경험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또 현실 교회의 엄청난 경쟁체제를 비판하며, 교회는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올림픽 이념)이 아니라 ‘더 느리게, 더 낮게, 더 가까이’ 살려고 노력하는 나라임을 강조한다. 오늘날 교회는 헌금의 비리가 너무나 많지만, 그렇다고 헌금 없는 교회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돈 없이 살 수 없는 인간이 돈 없는 교회를 추구하는 것은 삶이 없는 교회를 만드는 것”(p. 247)이라는 저자의 지적이 날카롭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그 돈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의 문제가 아닌가! 교회는 삶을 나누는 곳이어야 한다.  

저자 최태선 목사가 섬기는 교회에 가보고 싶다. 그가 돈이 없이 산속 집으로 들어갔다는 그의 집에 가서 신앙과 교회, 삶에 대해 저자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다. 그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신앙의 진정성, 진실함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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