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치유하는 영혼의 약상자 - 어느 시인이 사유의 언어로 쓴 365개의 처방전
이경임 지음 / 열림원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흥미로운 산문집이며, 아포리즘(aphorism)이다. 한 시인이 시를 쓰지 않고 지낸 오랜 세월동안 혹독한 자기 성찰을 통해 영혼에 풀무질을 가했다. 그래서 나온 책이 <영혼의 약상자>다. 그는 prologue에서 어떤 서양 철학자의 글을 인용한다. “현란한 빛을 발산하는 자동차의 전조등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것처럼, 현대인들도 현대라는 현란한 사회에서 정작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혼돈을 겪는다.”(p. 7). 이것은 아마도 본인의 경험이었으리라.  

작가 이경임은 치열하게 사유한 것들을 시인의 언어로 풀어냈다. 이 책은 12개월로 나누어 한 달의 날수에 맞추어 때로는 산문으로 때로는 아포리즘 형식으로 글을 실어 놓았다. 그가 하루하루 날마다 가지고 놀았던 언어들이었을까? 아니면, 책의 편집상 이런 형식을 취한 것일까? 사유 언어의 열 두 묶음은 그렇게 치밀하지 않다. 조금은 어설픈 모자이크 같다. 차라리 주제를 더 세분화해서 묶었더라면 관심 영역을 찾아 생각하는데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그저 책상에 아무렇게나 놓아두었다가 한 두 구절 눈 가는대로 읽는 데는 제격이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글들이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첫 번째 글 묶음, ‘현대를 살아간다는 것’에서, 작가는 오지랖도 넓게 지금 이 세대의 정치, 종교, 과학, 사이버 공간, 자본, 상품의 구매, 성 이데올로기, 사이코 패스(psycopath) 등 다양한 내용을 적었다. 과학이 밝혀낸 진리에 따르면 인간은 너무나 초라하다. 코페르니쿠스는 인간의 거처인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숱한 변방 중 하나일 뿐임을 밝혔고, 다윈은 인간은 신의 형상대로 창조된 최후 작품이 아니라 원숭이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말했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주인은 자의식이 아니라 오히려 무의식이라고 주장했다. 저자의 말대로 “인간이 이루어놓은 물질문명 세계의 업적들에 비하면 아이러니컬하게도 인간의 내면의 위상은 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쪼그라들고 있는 듯하다.”(p. 20). 이런 현대를 사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무엇일까? 그의 글을 하나 더 인용해 본다. “욕망의 충족이 소망인 연인들은 욕망의 제거가 신앙인 수도승들의 삶을 흉내 내기 힘들 것이다. 누군가의 과도한 결핍 상태는 누군가의 과도한 과잉 상태와 닮은 점이 있다. 그들의 삶의 방식은 복잡한 현실을 일깨운다.”(p. 23). 욕망을 추구하는 삶과 욕망을 제거하는 삶, 어는 것이 더 현명한 삶일까? 궁극적으로는 동일한 것일까? 아니면, 행복에 이르는 길은 둘 중에 하나일까? 이 책의 글들은 행복한 삶에 대한 특효약 처방전은 주지 않는다. 하지만 삶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하지 않아 영혼의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의 생각을 자극하는 각성제는 될 수 있을 듯하다. 

이 책에서 나를 깊은 생각에 빠지게 만드는 몇 몇 문장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설마른 장작 - 그들(앞서가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열정에 불을 붙이기 위해 극단적인 건조함을 견뎌낸 사람들… 나는 아직 설마른 장작이므로 불이 붙지 않는 것이다.“(p. 133). 

“탐욕 - 자신의 쾌락과 행복과 자유를 최대한 누리려는 욕망 때문에, 개인은 때때로 타인들과 세상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예의를 망각한다.”(p. 213). 

"우리는 사치를 누린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 사람에겐 세 가지 낭비(사치)가 주어져 있다. 먹기, 섹스, 그리고 죽음. … 살아간다는 것은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사치를 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pp. 218~220). 

"종소리 - 종이 울리는 것은 종의 내부가 비어 있기 때문이다. 종이 울리는 것은 무언가와 부딪혔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표현하려면 나를 비워야 하고 동시에 나와 부딪히는 것이 있어야 한다.“(p. 23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