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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감출 수 없는 내면의 지도 ㅣ 상상에 빠진 인문학 시리즈
벵자맹 주아노 지음, 신혜연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어로 ‘얼굴’은 ‘얼(영혼)이 표현되는 굴(통로)’라는 의미라고 한다. ‘얼굴을 내밀다’는 모임 따위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으로 한 사람의 존재를 표현하는 말일 게다. ‘얼굴을 들다’는 떳떳하게 남 앞에 선다는 뜻이며, ‘얼굴이 두껍다’는 뻔뻔스럽다는 뜻으로 여기서 얼굴은 한 사람의 인격을 의미한다. 확실히 얼굴은 단순히 신체 일부가 아니라, 한 사람의 정체성과 관련된 사회학적 상징 의미가 있다. 서양 언어의 얼굴도 라틴어 persona에서 파생된 person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런 점에서 <얼굴, 감출 수 없는 내면의 지도>라는 이 책의 제목은 타당하며, 나에게 큰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책의 저자 벵자맹 주아노(Benjamin Joinau)의 이력이 흥미롭다. 인문학과 철학을 전공한 그가 한국에 매료되어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를 연구하였고, 그의 학문 분야로 문화인류학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이 책에는 한국의 전통적인 가면이나, 한국판 고르곤 형상들이라 할 수 있는 절의 문에 있는 괴물들, 도깨비, 제주도의 돌하르방, 장승, 심지어 변강쇠 이야기까지 등장한다. 그리고 들어가는 말의 첫머리와 나가는 말의 마지막에 한용운의 시를 인용한다. “당신의 얼굴은 흑암인가요 … 당신의 얼굴은 흑암이어요.”(pp. 8, 277). 어쨌든 저자는 고대의 신화와 가면의 사용에서부터 현대의 미술에 이르기까지 얼굴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파헤쳐보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야심찬 시도가 이 책을 조금은 난해하고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책은 얼굴 연구를 통해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1부에서는 얼굴의 각 부분의 상징성과 가면의 역할을 다룬다. 결국, “얼굴이 개인의 정체성이 작용하는 곳에 가깝다면, 가면은 보편적인, 즉 사회적인 ‘자기’와의 연결”(p. 95)이라 할 수 있다. 2부는 얼굴에 대한 정신분석적, 심리사회적 접근을 시도하다. 특히 ‘거울 단계’ 이론은 흥미롭다. 신생아는 자신의 얼굴이 비친 거울을 통해 점차 ‘나'라는 개념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거울을 본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도 있겠다. 한편, 얼굴은 내가 어느 정도 꾸미고 바꿀 수 있지만 내가 선택할 수 없다는 점에서 내 것이지만 완전히 내 것은 아니다. 얼굴은 내가 다른 이에게 보여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나는 볼 수 없는 것이라는 모순을 안고 있다. 이런 모순 속에서 얼굴 표정은 그 사람의 인간성을 증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얼굴을 보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가릴 때 살인이나 사형집행은 쉬워진다. 왜냐하면 얼굴은 우리에게 ’죽이지 말라‘는 엄중한 명령을 내리기 때문이다. 3부는 동서양의 미술 세계에서 얼굴의 의미를 살펴본다. 쿠베르의 <자화상>과 뭉크의 <절규>는 현대인의 실존적 고뇌를 담고 있다. 이들의 그림에 등장하는 얼굴은 자기 소멸에 놀라는 얼굴이다. 4부에서는 현대에 있어서 얼굴이 몸의 다른 부분보다 얼마나 더 변형되고 파괴되고 해체되었는지를 현대미술과 예술을 통해 제시한다. 마이클 잭슨은 수십 번의 성형으로 결국 얼굴 없는 인간이 되자, 그는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살 수 없었다. 노래하고 춤추고 공연할 수는 있었지만, 살 수는 없었던 것이다. “기술 아래서 망가지고 사라진 그의 얼굴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이 처한 위기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p. 262)는 저자의 말에 동감한다. 오늘날 얼굴은 상업적 가치를 얻었지만, 정신적 가치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렇다. 얼굴은 인간 정신의 복잡한 구조물이기에 어느 시대나 문화에서나 얼굴의 존재론적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문제는 현대에 우리의 얼굴의 존재론적 의미가 너무나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비인간화’를 의미한다. 이제는 인간의 얼굴, 그 신비한 의미를 다시 찿고 고수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성경 창세기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인간의 존엄성과 고귀함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물질과학 문명 속에서 상실한 인간의 존엄성과 정신적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