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미술관 - 미술, 영화를 읽다
정준모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몇 년 동안 수십 권의 미술책을 섭렵했다. 슬슬 실증을 느낄 무렵 이 책을 접했다. 이 책, <영화 속 미술관>은 새롭고 재미있다. 저자 정준모는 영화를 좋아하지만, 영화는 어디까지나 휴식 내지는 도피로 즐기는 정도의 아마추어 수준이라고 고백한다. 그런 그가 미술학자답게 자신이 본 영화에 나오는 많은 미술작품에 사로잡혀 영화 속 미술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저자는 영화든 그림이든 관람객이나 독자들이 지나치게 계몽주의적 감상법을 고수한다고 지적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보는 자신의 생각보다 작가의 의도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느낌과 감상이 아닐까? 맞는 말이다. 이 책은 화가의 삶을 주제로 한 영화 뿐 아니라, 미술 작품이 나오는 영화나 미술 작품이 모티브가 된 영화들을 거론하면서 미술작품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과 감상들을 흥미롭게 펼친다. 

저자가 내가 본 영화들을 이야기하고 그 속의 화가의 삶이나 미술작품 이야기를 할 때, 특히 흥미로웠다. <팩토리 걸>과 앤디 워홀에서 작가 정준모는 워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평범하게 평범한 것들을 평범하게 만들어 갔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특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워홀은 스스로를 예술로 만들었다.”(p. 18), 일상의 하찮은 것들이 예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워홀 자신이 예술이었기 때문이란 말이다. 영화 <취화선>이 장승업을 지나치게 관념적으로 접근해서 예술가의 인간적인 면모를 약화시켰다고 아쉬워했다. 영화 <클림트>의 시작에서 주인공은 삶과 죽음 사이를 넘나드는 혼미한 정신 상태에 있다. 이것은 비록 클림트가 그의 작품에 지독한 아름다움, 관능적인 에로티시즘, 장식성의 본질을 선명하게 그렸지만, 자기 자신에게 남은 것은 모호함 뿐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이 외에도 <올드보이>(앙소르의 <슬퍼하는 남자>),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베르메르), <까미유 글로델>, <프리다>(프리다 칼로), 이 정도가 내가 본 영화들인데, 작가 덕분에 이들 화가들과 작품들에 대해 새로운 관점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리고 <냉정과 열정 사이>도 한 몇 년 전 DVD로 보았는데, 이 영화에 치골리의 그림이 나오고, 이 영화의 원작소설에는 프란체스코 코사의 유화가 나온다는 것도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나의 미술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마구마구 자극시켰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인터넷에서 열심히 화가들의 작품들과 영화들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아, 이런 영화구나, 이런 작품이구나’ 하고 연신 감탄했다. 예를 들어, 십 여년전 어빙 스톤의 소설, <빈센트 반 고흐>와 <르네상스인 미켈란젤로>를 감명 깊게 읽었는데, 이 소설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열정의 랩소디, Lust for Life>와 <아거니 앤 엑스터시, The Agony and the Ecstasy>였다. 그러고 보니, 원작 소설과 영화제목이 동일하다. 이 영화들을 DVD로 구매해서 감상해 보고 싶어진다.  

<영화 속 미술관>은 영화를 통해 화가들에 대해 말하고 화가의 작품들을 재미있게 풀어 낼 뿐 아니라, 미술사의 다양한 상식들도 생생하게 전해준다. 내가 새롭게 배운 것들 중 몇 가지를 소개해보자. 클루아조니즘(cloisonnism)은 “공예적 기법처럼 명확한 윤곽선과 색채를 보여주는” 것이다(p. 6). “인상주의란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전제된 화파”다(p.96). 아르뷔르(Art burt)는 "정신분열증 환자와 아마추어 화가들의 그림에서 발견되는 꾸밈없는 순순한 미술“을 말한다(p. 176). 타르코프스키는 "예술은 사실의 반영이 아니고 진실의 창조”라고 말했다(p. 302), 등등.  

화가와 미술작품에 대한 상식을 갖고 싶은가? 이 책을 읽어라. 자기만의 작품 감상을 하고 싶은가? 작가 정준모가 어떻게 영화 속에서 미술작품들을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감상하는지 들여다보라. 갑자기 또 다른 미술 책들을 읽고 싶어진다. 이 책은 나를 아마추어 미술광으로 만들고 있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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