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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해방이다 - 자유이자 금지였고 축복이자 저주였던 책 읽기의 역사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4년 10월
평점 :
제목부터 도발적입니다. <독서는 해방이다>! 독서가 단순한 정보를 얻는 행위를 넘어 부조리한 현실을 넘는 자유와 해방의 길을 열어준다는 저자의 주장을 어떻게 그림 해설에 녹아냈는지 궁금해하며 책을 펼쳐봅니다. 박홍규는 책이 그려져 있는 70여 점의 그림을 시대별로 묶어 제시하면서, 책의 역사 혹은 독서의 역사를 이야기합니다. 이 책은 ‘그림 해설’이 아니라 그림을 매개로 해서 책에 관해 말합니다.
나는 ‘책 읽는 여성’ 그림에 집중하면서 독서에 대한 작가의 주장을 따라갔습니다. 저자 박홍규에 따르면, 로베르 캉팽의 <수태고지>에서 책을 읽고 있는 마리아는 ‘여성의 해방 혹은 각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15세기 최초의 직업적 여성 작가 크리스틴 드 피장의 <숙녀들의 도시>에 실린 삽화에서 여성이 든 책은 여성이 남성의 삶을 비참하게 만든다고 탄식한 마테올루스의 <탄식>이랍니다. 크리스틴 드 피장은 <탄식>을 읽고는 화가 났다죠. 그래서 거울을 든 이성의 여신, 자를 든 공정의 여신, 저울을 든 정의 여신의 도움으로 ‘여성들의 도시’를 건설한다는 내용의 책을 썼다고 합니다. 중세 시대에 이런 페미니즘을 발견할 수 있다니 놀랍군요. 소포니스바 안귀솔라의 <자화상>은 당당한 여성 화가를, 아뇰로 브론치노의 <라우라 바티페리의 초상화>는 단테에 버금가는 여성 시인을, 렘브란트의 <책을 읽는 노파>는 희망을 품고 앞을 바라보는 여인을, 피테르 얀센스 에링하의 <책 읽는 여인>은 개인적인 즐거움과 자유를 추구하는 여인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구스타프 아돌프 헤니히의 <책 읽는 소녀>, 카미유 로코의 <책 읽는 소녀>, 앙투안 위르츠의 <소설의 독자>에서 그림 속 책은 어떤 책일지 추측합니다. 당대의 책들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절대로 추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테오도르 루셀의 <책 읽는 처녀>에서 나신의 여성은 무슨 책을 읽고 있는 것일까요? 저자는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그리고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떠올립니다. 나는 책과 여인을 그린 명화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라고, 그림에서 여인들이 읽는 책을 추측해 내는 저자의 박식함에 놀랐습니다. 여성의 독서에 대해서만 생각해도 책은 여성에게는 자유와 축복이며 여성을 억압하는 자들에게는 금지와 저주임이 분명합니다. 비로소 <독서는 해방이다>라는 책 제목이 선명하게 이해됩니다. 독서에 관한 멋진 독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