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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믿음
헤르만 헤세 지음, 강민경 옮김 / 로만 / 2024년 2월
평점 :
헤르만 헤세의 <나의 믿음>은 종교와 믿음,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도록 이끕니다. 외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까지 인도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개신교 집안에서 자란 헤세는 그분들 덕에 인도의 종교를 접하게 되었고, 힌두교와 불교의 정신에 심취했습니다. 그는 모든 종교에는 우열이 없으며 이성이 함께하는 믿음만이 올바르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참된 지혜와 구원을 얻는 방법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이런 주장은 불교의 영향이 컸음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교는 외부로부터 구원이 온다고 가르치는 ‘타력 종교’라면, 불교는 내부의 깨달음을 통해 구원에 이른다는 ‘자력 종교’라 할 수 있습니다. 헤세는 ‘신’은 자신 안에 있는 것이니, 책이나 개념 속에 있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그가 불교의 믿음에 얼마나 강하게 끌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렇다고 헤세가 그리스도교의 믿음을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그리스도교가 인간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쳤음을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교가 혐오와 전쟁의 원인이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믿음이나 영성이 ‘폭력’으로 끝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종교개혁자 루터에 대해서는 비판적이고 간디에 대해서는 우호적입니다. 헤세는 여전히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단지, 교회를 중시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영성 생활을 중시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교회에 가서 가르침을 받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아니 원치 않는 정도가 아니라 거부한 것 같습니다. 그는 홀로 깊이 사색하며 깨달음을 얻어 평화와 사랑의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그는 “인간을 파괴하는 가장 큰 적은 생각하기를 귀찮아하는 게으름”(p. 200)이라고 말합니다. 또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마태19,19)라는 성경 구절을 이렇게 풀어 설명합니다. 이웃을 자신보다 덜 사랑하는 자는 이기주의자이며, 이웃을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가엾은 악마입니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일은 죄를 짓지도 않고 자신을 억압하지도 않고 가능합니다. 인도의 지혜를 따라 “그가 바로 너이니,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헤르만 헤세는 어느 한 종교에 얽매이지 않는 믿음을 가진 것 같습니다. 그는 삶이 결코 무의미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삶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뿐이죠. 그는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합니다. 삶이 의미 있다고 확신하고 사랑과 평화와 지혜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헤세의 믿음이 아닐까요? 이 책은 종교의 가르침에 이념적으로 빠져있는 자들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돌멩이입니다. 종교와 믿음의 본질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헤세의 <나의 믿음>, 헤세의 작품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