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신예찬 - 라틴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5
에라스무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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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중세의 가을>로 유명한 요한 하위징아의 <에라스뮈스>를 읽고, 에라스무스가 토머스 모어의 환대를 받으며 그의 집에서 <우신 예찬>을 집필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중세교회의 개혁을 열망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개혁의 방향과 방법은 다 달랐습니다. 루터는 복음의 열정에 바탕을 두고 가톨릭교회와 투쟁하는 길을 걸었지만, 에라스무스는 학문을 통한 점진적인 개혁을 원했습니다. 결국 에라스무스는 종교개혁파와 결별하고 가톨릭교회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에라스무스는 싸움을 싫어하는 성격이었고 자기중심적이고 은둔적인 심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라스무스는 1516<그리스어 신약성경 교정본>을 발간합니다. 이는 탁월한 인문주의자로서 근원으로 돌아가자”(Ad fontes)라는 르네상스의 표어를 따라 행동한 것입니다. 그의 대표작 <우신예찬>은 인간의 삶에서 어리석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신랄하게 풍자하고 더 나아가 어리석음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해학과 풍자와 역설로 엮어냅니다. 그는 스콜라 신학자들이 기독교의 믿음과는 상관없는 주제들을 쓸데없이 논쟁하는 것을 비판합니다. 또한 성직자들이 돈의 탐욕과 미신에 빠진 것을 풍자적으로 질타합니다. 부와 재물은 우신’(모리아, 어리석음의 신, 어리석음의 신격화)의 아버지라고 풍자합니다. 사람들은 이 부와 재물의 고갯짓 한 번에 다 넘어가 세상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에라스무스가 보기에 성직자와 교회가 부패한 것은 교리가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신앙적인 양심과 경건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황’(pp. 201~205)에 대한 그의 해학과 풍자가 무척 재미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자처하는 교황들이 가난과 자기 목숨을 아랑곳하지 않았던 그리스도의 삶을 닮고자 애썼다면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괴롭고 힘든 자리에 있음을 알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온갖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교황들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졌고 그 피로 성장했으니 지금도 교회는 칼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에라스무스는 해학적으로 말합니다. 그래서 교황들은 다른 것은 몰라도 전쟁만은 반드시 하고, 교황 주변의 아첨꾼들은 전쟁에 관한 교황의 광기를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자 경건이며 용기라고 부르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최고의 계명을 어기지 않고도 칼을 뽑아 형제의 복부에 꽂을 방법을 찾는다고, 에라스무스는 비꼽니다. <우신예찬>, 오래된 책이라 읽기에 벅차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의 글이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에 영감을 주었다는 찬사가 이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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