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낼 수 없는 대화 - 오늘에 건네는 예술의 말들
장동훈 지음 / 파람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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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화가를 꿈꾸었던 사제이며 역사학자인 장동훈, 그가 들려주는 그림 이야기에는 인문학적 통찰이 가득하다. 이 책은 단순히 미술 작품 감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성속(聖俗)의 이분법을 넘어 다양한 작품을 통해 많은 질문을 던진다. 현대 문명에 관해, 삶의 의미와 이 시대를 사는 방법에 관해 묻는다. 종교와 교회의 미래에 대해서도 깊은 생각을 하도록 이끈다. 예술 작품들에서 이런 질문들을 길어 올리는 작가의 깊고 넓은 생각과 안목에 감탄할 뿐이다.

작가는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들을 보며 제아무리 빛나는 옷을 걸쳤어도, 높은 곳에 앉았어도 인간은 혼자만의 밤에는 모두 상처 입은 존재”(p. 24)임을 간파한다. 그렇다. 호퍼의 그림에서는 깊은 고독이 느껴진다. 호퍼는 풍경이나 인물 어느 한쪽에 중심을 두지 않은 구도로 그림을 그린다. 이 모호함은 보는 이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아무리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도 인간은 이 땅의 주인으로 정착하지 못한다. 장동훈은 호퍼의 그림에서 “‘깃들지 못함이라는 인간 존재의 비참함”(p. 35)을 본다. 인생에 대한 이런 인식이 우리로 신을 찾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저자가 마켈란젤로 부오나로티를 통해 지금 여기(here and now)’를 살아내는 실존적 인간의 전형을 본 것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인간은 현실과 이상이라는 버거운 짐을 동시에 짊어져야 하는 운명이다. 그는 미켈란젤로의 미완의 작품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깊이 들여다본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더는 안간힘을 쓰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는 슬픔과 비통함도 찾을 수 없다. 그저 고요히 아들의 비참한 죽음이라는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 작품에 드리운 미켈란젤로의 삶의 깊이를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한스 홀바인에 대한 소개(pp. 163~178)는 가장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다. 도스토옙스키가 먼 곳에서 달려와 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는 작품, <무덤 속의 그리스도인의 시신>은 나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메시아의 주검을 처절하게 인간적으로 표현한 것에 숨이 막힌다. 그리고 놀랍게도 인간적인 주검을 마주하면서 가장 거룩한 느낌을 받는다. 기독교의 신은 인간의 고통에 동참한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끝낼 수 없는 대화>라는 이 책의 제목과 오늘에 건네는 예술의 말들이라는 부제가 눈에 들어왔다. 작품을 보면서 인생에 관한 다양하게 떠오르는 생각들이야말로 우리네 삶을 의미 있게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닐까? 삶이 헛헛하게 느껴질 때, 예술 작품과 대화를 해 보자. 결코 끝낼 수 없는 대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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