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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인간에 대하여 -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9월
평점 :
절판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독자입니다. 라틴어 격언들을 풀어내는 한교수의 솜씨에 푹 빠졌었죠. 그의 ‘수업 시리즈’ 두 번째 책인 <로마법 수업>을 읽어야지 하면서도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번에 ‘수업 시리즈’ 완결편(?)이라 할 수 있는 <믿는 인간에 대하여>을 읽는다는 자체가 큰 즐거움으로 다가왔습니다. 기대하는 마음이 커서 그런지 서론부분부터 마음에 다가오는 부분이 참 많았습니다. 특히 ‘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는 시대’에 종교와 믿음의 의미를 찾는 일은 뜻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한동일 교수는 이제는 가톨릭 신부가 아닙니다. 자유의지로 사제직을 내려놓고 법학자로 살면서 이 책 <믿는 인간에 대하여>를 출간했습니다. 사제로서 가톨릭 교회가 요구하는 것과 본인이 추구하려는 것 사이의 간극을 메우지 못하고 좀 더 자유롭게 공부하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가 밝혔듯, 그의 정체성은 여전히 가톨릭에 기초하고 있어 믿음에 관한 글의 방향성과 색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신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필요로 한다”(p. 21)는 구절과 함께 저자는 본격적으로 ‘믿음과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17장에서 종교를 가지면 그 믿음에 매몰되어 타자와 바깥 세계를 인정하기 어려우니, 법과 이성으로 믿음의 배타성을 제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신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도 인간이고, 신을 옹졸하게 만드는 것도 인간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무신론자나 타종교를 믿는 자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종교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교수는 ‘믿음으로 사는 일’보다 ‘사람답게 사는 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론에서 라틴어 humanitas(인류)와 humilitas(낮고 비천한 상태)를 언급하며, 인간은 본디 보잘것없은 상태에서 더 나은 삶을 희망하며 나아갔으며 그런 삶의 자세가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이게 했다고 말합니다. 결국 종교는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과 기대, 안식처에 대한 간절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신이 인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필요로 한다고 말할 수 있겠죠.
이 책,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혼란한 갈등의 시대에 사람들은 ‘생각의 어른’을 찾지만, 모두 이구동성으로 ‘어른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어른’이 될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애석해합니다. 예루살렘의 ‘분리장벽’을 보면서, 세우긴 쉬워도 무너뜨리긴 어렵다고 안타까움을 표현합니다. 4장에서 베드로와 유다의 운명을 가른 것은 실패를 마주하는 태도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실패의 시간을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유다 이야기를 종교적 의미로 해석하기보다 삶에 대한 태도로 풀어내는 것이 참신하게 다가왔습니다. 천국과 지옥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드러내며, “지금 여기를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p. 255)라고 독자에게 묻습니다. 인간답게 사는 일, 그 속에서 종교와 믿음의 역할 등에 관해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묵직한 독서였습니다. 무신론자이든 어떤 종교를 믿는 분이든,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의 삶의 자세와 믿음의 자세를 돌아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