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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 - 격변하는 현대 사회의 다섯 가지 위기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오노 가즈모토 엮음, 김윤경 옮김 / 타인의사유 / 2021년 4월
평점 :
절판
<왜 세계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 책의 제목이 눈길을 확 사로잡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세계는 국가 간의 엄청난 갈등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19세기 냉전 시대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정치인들은 포플리즘을 앞세워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펴서 세계는 차별과 폭력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왜 이 지경까지 왔나요?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요?
새로운 철학의 기수 독일의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신실재론(New Realism)’을 바탕으로 격변하는 현대 사회의 다섯 가지 위기를 진단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세계는 지금 국민국가(문화, 언어, 종교 등에서 공통의 정체성을 지닌 공동체)의 부활이 일어나고 있다고 저자는 분석합니다. 우리는 ‘실리콘 밸리’하면 미국 사회의 주류 계급인 앵글로 색슨계 백인 신교도(WASP)와 연결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재로 실리콘 밸리에는 WASP와 무관한 다양한 부류들이 존재하는데도 말이죠. 지금 세계는 다원화되어 있습니다. 현실은 복수이고 현실을 바라보는 시점(perspective)도 복수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 다릅니다. 모두가 자신의 관점에서 사물을 본다는 점에서 모두 실재하는 현실입니다. 이것을 인정할 때, ‘의미장’(意味場)이 생깁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실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올바로 사고한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올바른 생각이다’라는 생각 없이 생각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믿는 것으로는 자신을 바로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를 바로잡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과 다른 시점을 갖는 일”(p. 213)입니다. 이런 식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신실재론’입니다.
저자가 진단한 현대 사회의 다섯 가지 위기는 동의할 수밖에 없는 현재 실재하는 현상들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탈진실(Post-Truth)을 말합니다. ‘탈진실’이란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적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형상을 의미합니다. 탈진실의 사회에서는 가치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 자본의 위기, 테크놀로지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이 네가지 위기는 표상의 위기로 집약됩니다.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를 보고 진짜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미지가 실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미지는 아주 쉽게 조작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진실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남들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미지를 추구하지 말고 자신의 인생이 실제로 행복을 누리느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남들이 나의 인생을 어떻게 보느냐에 초점을 맞추면 표상의 위기가 옵니다.
이 책은 일본의 PHP Institution 편집부에서 마라쿠스 가브리엘과 인터뷰한 것을 기초로 제작된 책입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신실재론’은 설명하기가 쉽지 않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신실재론’은 다양한 관점을 인정하지만. 여전히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관한 진실을 추구합니다. 그런 점에서 ‘신실재론’은 절대적 진실은 없다고 생각하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시대의 위기를 돌파할 출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작은 책을 통해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신실재론’을 알게 되어 보람을 느낍니다. 시대를 바라보는 좋은 눈을 뜨게 해주는 책입니다. 혼란스러운 이 시대를 올바른 관점으로 이해하고 싶은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