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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ㅣ 에디터스 컬렉션 10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문예출판사 / 2020년 12월
평점 :
학창 시절 시험 준비를 하며,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와 그의 철학 소설 <구토>에 대해 이렇게 외웠습니다: 실존주의의 기본개념은 “실존이 본질에 우선한다”라는 명제로 표현될 수 있다. 사르트르의 <구토>는 실존주의를 세상에 선언하기 위해 많은 문학적 기법을 사용한 독특한 철학 소설이다. 나는 실존주의와 <구토>를 이렇게 멋지게(?) 설명할 수 있지만, 솔직히 말해 사르트르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구토>를 읽어본 것도 아닙니다. 사실 <구토>가 난해하다고들 해서, 읽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예출판사에서 심혈을 기울여 <구토>를 번역 출간했기에 도전해 보았습니다.

문장은 생각보다 담백합니다만, 전체 줄거리를 따라가는 일은 쉽게 흐름을 놓칠 수 있기에 꽤 신경을 써야 합니다. 주인공 로캉탱은 어느 날 물수제비를 하려다 구토감을 느낍니다. 그의 생활은 무미건조합니다. 그는 부빌의 도서관에서 프랑스 혁명기의 인물인 롤르봉 후작을 연구하고 카페에서 재즈곡 ‘섬 오브 디즈 데이즈(some of these days)’를 들으며 일상생활에 안주하는 사람들을 살펴봅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모험이나 경험이 없는, 기껏해야 말의 잔해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독학자를 만나는데, 그 독학자는 책에서 진리를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인물입니다. 아마도 사르트르의 분신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어쨌든 로캉탱은 롤르봉이란 인물을 연구하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롤르봉 씨는 나의 동업자였다. 그는 존재하기 위해 내가 필요했고, 나는 내 존재를 느끼지 않기 위해 그가 필요했다.”(p. 230). 그는 화요일 일기에 이렇게 씁니다. “아무 것도 없다. 존재했다”(p. 242). 주인공은 옛 애인인 안니도 만나보지만, 실존의 불안은 그를 떠나지 않습니다. 어느 날 그는 마로니에 나무뿌리를 보며 구토의 정체를 알게 됩니다. 인간이나 사물이 언어에 의해 얻게 되는 의미를 박탈당할 때 벌거벗고 드러나는 ‘존재’의 본래 모습이 구토를 유발한 것입니다. 모든 존재에는 존재의 이유가 없다는 것, 이것이 사르트르가 로캉탱의 깨달음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로캉탱은 흑인 여자가 부르는 재즈 ‘섬 오브 디즈 데이즈’를 들으며 다시 소설 집필과 같은 모험을 통해 ‘구토’(La nausée)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책 뒤편에 있는 변광배 교수의 ‘작품해설’이 <구토>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구토>는 ‘신’이 부재하는 세계에서 인간이 정면으로 바라봐야 할 실존의 조건을 문제 삼는다”(p. 434)고, 이 작품의 의의를 설명합니다. 맨 뒤에 있는 ‘장 폴 사르트르 연보’도 꼼꼼히 살펴보며 사르트르의 생애를 따라가 보려 했습니다. 사르트르에 관해 다른 책을 읽어본 적이 없고, <구토> 또한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이라 다른 출판사의 책과 비교할 수 없지만, 굉장히 잘 번역된 책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실존주의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은 조금 어렵겠지만, <구토>(문예출판사 刊)를 읽을 것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