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과 폭력 - 운명이라는 환영 우리 시대의 이슈 총서 2
아마티아 센 지음, 김지현.이상환 옮김 / 바이북스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국에 거주할 때, 나는 수표를 입금하러 드라이브스루(Drive-through) 은행 창구 앞에서 자동차 창문을 열었습니다. 창구에 있는 약간 늙은 백인 여성에게 수표를 건넸는데, 그녀는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고, 수표도 이리저리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동양인이 큰 금액의 수표를 내민 것이 못마땅한 듯했습니다. 나는 그 여인에게서 동양인을 향한 경멸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동양인에 대한 왜곡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이 책의 저자 아라르티아 센도 영국 공항 출입국 관리소에서 동일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는 대학 학장이었기에 그의 주소는 당연히 대학 학장 관사로 되어 있었습니다. 출입국 관리직원은 그가 학장과 가까운 친구인지 질문했답니다. 그 직원은 인도인이 영국 대학의 학장일 리가 없다는 선입관, 다시 말해 인도인에 대한 왜곡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사회적 정체성의 개념은 꽤나 복잡한 문제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차별과 폭력이 난무한 것은 타인에 대한 사회적 정체성이 왜곡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이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한국인은 둘만 모이면 싸운다. 일본인은 돈밖에 모르는 경제적 동물이다.’ 이런 말들은 타자에 대한 왜곡된 정체성을 만들어 냅니다. 한국인은 모두 이기주의자들입니까? 일본인들은 모두 돈밖에 모르는 자들입니까? 영국인과 인도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슬림과 서양인, 등은 서로에 대한 왜곡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다양한 소속 관계와 교제 관계 중에서 어떤 것에 우선을 두어야 할지 끊임없이 판단하고 선택합니다. 독일의 나치 시대에 유대인들, 미국 남부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인도 카스트 제도 아래서의 천민 계급들이 그렇게 평가받았습니다. 타자의 시선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주장할 자유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제한받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정체성의 왜곡은 차별과 폭력을 낳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고, 인간은 모두 동등하며, 동시에 인간은 모두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별, 고향, 종교, 정치적 성향, 경제력, 등 다양한 관계와 관점에서 자신을 이해합니다. 이런 것 중에 어느 하나만을 자신의 특징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타인에 대해서는 어느 한쪽 면만으로 바라봅니다. 타자에 대한 왜곡된 정체성 때문에 지구상에 인종차별, 종교차별, 경제적 차별 등과 같은 차가운 차별과 이로 인한 분쟁과 전쟁과 폭력이 난무하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입니다. 옳습니다. 문명 충돌론과 같은 주장 자체가 사회적 정체성의 왜곡을 전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 책을 읽으며, 타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지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차별과 폭력으로 신음하는 이 지구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나와 다른 피부색, 언어, 종교, 문화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 좀 더 깊은 이해와 포용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모든 것을 진영논리로 이해하고 내 편이 아니면 적으로 인식하는 사회는 차별과 갈등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 <정체성과 폭력>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개념, 정체성에 관해 깊은 이해와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이 땅의 정치인, 종교인, 사회 지도자들이 꼭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이 땅의 평화와 희망찬 미래를 위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