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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디에서 왔니 - 탄생 ㅣ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0년 2월
평점 :
품절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는 중앙일보 연재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여곡절을 거쳐 첫 원고를 쓴지 10년 만에 책으로 나왔습니다. 그는 오랜 세월 한국인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를 알고자 ‘한국인의 이야기’를 캐들어갑니다. 그는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개를 넘는 이야기’를 한국인 이야기의 원형으로 봅니다. ‘꼬부랑’ 안에 한국인이 살아온 온갖 이야기들이 녹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너랑 나랑’, ‘아리랑 쓰리랑’ 모두 ‘꼬부랑’과 울림이 같습니다. 청산별곡의 ‘머루랑 다래랑’에서 오늘날 젊은이들의 휴대폰 문자 메시지 ‘감사해용’ ‘~합니당’까지 고스란히 한국인 이야기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현실과는 전혀 다른 상상의 세계를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이야기꾼들입니다. 그는 ‘호모 나랑스’(Homo Narrans, 이야기하는 인간)에도 ‘랑’자가 들어간다고 익살스럽게 말합니다.
이 책은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열두 고개를 넘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고개는 ‘태명 고개’입니다. 한국인들은 태명으로 천한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래야 잡귀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똥례, 언년이, 끝순이, 말순이, 간난이, 점순이, 등등. 오늘날에는 쑥쑥이, 튼튼이, 사랑이라고 붙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런 이름짓기에는 한국인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습니다. 이어령은 태명과 같은 이름짓기가 또 하나의 한류가 된다고 말합니다. 방탄소년단을 우리 소리 그대로 BTS라도 적지 않습니까?
저자는 이어서 한국인의 출산과 양육의 이야기를 배내 고개, 출산 고개, 삼신 고개, 기저귀 고개, 어부바 고개, 옹알이 고개, 돌잡이 고개, 등으로 이름 붙여 풀어내는데, 곳곳에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오줌 누게 하는 소리 ‘쉬쉬’와 똥을 누게 하는 소리 ‘응가, 끙가’는 판소리의 추임새와 비슷하고, 그 소리의 패턴은 태명과 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는 중간중간 샛길로 빠지기도 합니다. 삼신 고개 꼬부랑길에서 빠진 새길에는 ‘막’에 관해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마술의 접두어 ‘막’은 막국수, 막과자 등과 같이 ‘거친, 품질이 낮은’의 뜻, 막노동, 막말, 막일 등과 같이 ‘닥치는 대로 하는’의 뜻, ‘막가다’ 등과 같이 ‘주저없이, 함부로’의 뜻이 있습니다. 이러한 ‘막’자가 붙은 것들이 한국 고유의 것들로, 한류가 되곤 했습니다. 막사발은 오래전 한류가 되어 일본의 명품이 되었고, 지금 막걸리도 한류도 떴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야기의 힘‘에 대한 이야기로 열두 고개 마지막을 넘습니다. 그는 김소월의 시, <부모>를 소개합니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 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되어서 알아 보랴?” 이야기는 한국인의 고달픈 삶을 살아내는 힘이 되었습니다. 저자 자신도 수술 직전까지 병원에서 이 책의 최종 원고 작업을 했습니다. 그는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면 절망과 고통의 시기를 견딜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이야기꾼으로 남고 싶다고 말합니다. 한국인의 문화 유전자의 암호를 풀어내는 이 책, 웃음과 해학이 담겨 있습니다. 즐거운 독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