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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이여트
오마르 하이염 지음, 최인화 옮김 / 필요한책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로버이’는 페르시아의 4행시를 말합니다. ‘로버이여트’는 ‘로버이’의 복수형으로 ‘페르시아 4행시 전집’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네요. 페르시아 고전문학의 독특한 시(詩) 형태인 ‘로버이’는 생소해서 더 끌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전 일본의 ‘하이쿠’에 꽂힌 적이 있거든요. 5-7-5의 절제된 언어로 이루어진 하이쿠의 세계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었습니다. 그때 외웠던 하이쿠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고 난 후에 / 눈앞에 떠오르는 / 모란꽃” 등등. ‘로버이’는 1, 2, 4행은 각운이 같고, 3행의 각운만 자유로운 시입니다. 페르시아어를 전혀 몰라 각운을 느낄 수 없어 아쉽습니다만 이 책에 표기해 놓은 페르시아어를 눈으로 보며 각운을 확인해 봅니다. ‘로버이여트’의 저자 오마르 하이염도 무척이나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옮긴 이의 소개에 따르면, 그는 셀주크 왕조시대 사람으로 ‘그레고리력’보다 더 정확한 ‘잘럴리력’을 만든 당대 최고의 수학자요 천문학자입니다.
그의 시들을 읽어봅니다. 조금은 종교적인 내용이 많으리라 기대하고 읽었는데, ‘술 마시라’는 권면이 너무 많이 나와 살짝 당황했습니다. 첫 시 “포도주나 한 동이 함께 마십시다”(p. 9)로 시작해 “달빛 아래서 술 마셔라”(p. 10), “술잔에는 빙 둘러 적힌 구절 있으니”(p. 11), “술 안 마시려거든 취객들 비웃지 말라”(p. 12), “영혼과 마음, 술잔과 탁한 술 가득 주병 있네”(p. 15), “술 마셔라, 세월은 교활한 적(敵) / 세월을 이해하기란 참 어렵구나”(p. 18), “하이염이여 술에 취했다면 즐기거라”(p. 98), “하프 소리 들으며 수정 술잔에 술 마셔라”(p. 101), “노래 한 곡 불러 주오 술을 내어 주오”(p. 147), 등등. 마지막까지 계속 술타령입니다.
저자에게 ‘술을 마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마시고 즐긴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입니다. 시인은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인생이기에 지금 현재를 붙잡고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지금을 붙잡으라는 것이죠. 시인은 순식간에 지나는 삶의 덧없음을 깊이 느낀 듯합니다. “술 드시오 꽃을 따시오, 눈 깜짝할 사이 / 꽃은 흙이 되고 새싹은 티끌이 되고 만다오”(p. 39). 찰나 같은 인생, 기쁨과 행복만 있으면 좋으련만, 암울한 역경으로 가득합니다. “나의 인생 암울하고 일마저 안 풀리네 / 고난은 온통 늘어났고 안락은 줄어 버렸네”(p.40). 그러기에 고통이 있는 ‘지금’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오마르 하이염은 덧없는 인생을 직시하지만 염세주의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오히려 삶이 유한하기에 지금이 더 소중하고 빛나는 것은 아닐까요? 136번의 시가 이 모든 삶의 교훈을 잘 표현했습니다. “어제는 지나갔으니 결코 되새기지 말라 / 내일은 오지 않았으니 괴로워 말라 / 오지 않은 것과 가버린 것에 연연하지 말라 / 지금을 즐기되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p. 117).
성공을 경험했던 오마르 하이염은 4행시를 통해 세상 성공에 연연하지 말고, 오늘 마음 편히 즐겁게 살라고 독자를 토닥입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즐거운 시(詩) 읽기였습니다. 마음 답답하고 염려와 근심이 가득할 때 읽어볼 만한 시집입니다.